▲보리스 비앙 (1920~1959) 소설가·엔지니어·발명가·시인·작사가·가수·재즈음악가이자 평론가·트럼펫 연주자였던 보리스 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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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허약한 탓에 징병검사에서 떨어져 군 복무 경험은 없었지만, 비앙은 이 노래에서 전쟁의 부조리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1920년생인 비앙이 이 곡을 쓸 때가 30대 중반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탈주병에 등장하는 '나'는 아마도 2차대전에 참전했다 포로가 된 경험이 있는 예비군입니다. 노래 속에 등장하는 그의 아버지는 1차대전에서 목숨을 잃었고, 형제들 역시 전쟁터로 끌려갔습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비앙 세대의 프랑스 국민들에게 결코 낯선 일이 아니었습니다.
프랑스는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모두 165만 명의 전사자를 냈습니다. 얼추 이 숫자의 3배 쯤 되는 군인들이 신체에 영구적 장애를 입었습니다. 특히 840만 명의 프랑스 참전군인 중 140만 명이 전사하고, 426만 명이 부상을 입었던 1차 대전은 그야말로 한 세대 자체가 사라져 버린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간접 체험이 비앙으로 하여금 반전가요 '탈주병'을 만들었을 겁니다.
비앙의 노래가 아이러니한 이유 더욱이 인도차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던 전쟁의 이유가 낡은 식민지 질서의 재구축이었다는 점도 비앙을 분개하게 했습니다. 조국의 독립이라는 분명한 명분을 가지고 있던 베트민군과는 달리 인도차이나의 프랑스군은 대부분이 현지 부역자와 독일, 네덜란드, 세네갈, 모로코, 알제리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근대적 징병제도가 출현한 곳이 다름 아닌 프랑스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비앙의 노래는 대단한 아이러니를 담고 있습니다.
대혁명의 영향이 자기 나라로 파급될 것을 우려한 유럽의 군주들이 군대를 동원해 프랑스를 노릴 때, 풍전등화의 프랑스를 구해낸 것은 바로 혁명정부가 선포한 '국민총동원령'이었습니다.
'국민 모두가 싸운다. 나이 든 남자는 무기와 마차를 만들고 여자는 병원에서 일한다. 공무원은 자리를 지키고 미혼 남자들은 맨 앞에서 싸운다'는 동원령으로 역사상 최초로 80만명의 국민군(國民軍)이 조직되었던 것이죠.
자유·평등·박애를 기치로 내걸었던 프랑스 대혁명의 징병제는 모든 시민이 숭고하고 아름다운 국방의 의무를 균등하게 짐으로써 전제군주의 억압과 봉건제의 굴레를 타파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수의 직업군인이나 왕에게 고용된 용병이 아니라,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군대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징병제였던 셈입니다.
이때부터는 사지 멀쩡한 남성은 잠재적 군인으로 취급되었습니다. 19세기 들어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평시에도 일정 연령대의 젊은이들에게 1~3년의 병역을 부과하고, 유사시 예비 병력을 소집하여 단기간에 대규모 군대를 동원하는 제도를 채택하게 됩니다. 1차대전이 터질 때까지 유럽에서 징병제를 채택하지 않은 국가는 섬나라 영국 정도였죠.
산업화와 결합한 징병제는 전쟁을 총력전(總力戰) 양상으로 바꾸어 놓았고, 이는 순식간에 수 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소모전을 가능케 했습니다. 1916년 7월 1일 시작된 솜 전투에서 영국군이 전투 첫날 입은 인명피해는 전사자와 부상자를 합쳐 5만7470명이나 됐죠. 기관총과 철조망, 참호와 독가스로 상징되는 1차대전은 모든 참전국 국민들에게 커다란 생채기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런 끔찍한 경험은 반전운동이 대중운동으로 뿌리 내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32년 8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는 앙리 바르뷔스와 로맹 롤랑의 제창으로 국제반전대회(國際反戰大會)가 열렸습니다. 이 대회에는 정당과 사상, 신념의 차이를 초월하여 각국에서 2000명이 넘는 반전주의자들이 결집했습니다. 비록 이들이 전쟁을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그 경험과 성과는 전후 국제 평화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비앙의 '탈주병'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입니다.
1954년 5월 7일, 배우이자 샹송가수 마르셀 물루지(Marcel Mouloudji, 1922~1994)는 올렝피아 극장에서 리사이틀을 열고 친구 비앙으로부터 받은 '탈주병'을 불러 관중들로부터 갈채를 받았습니다. 마침 그날은 위태롭게 버티던 디엔비엔푸 요새가 베트민군에게 함락된 날이었죠.
비앙은 원곡의 "당신이 절 쫓겠다면 헌병들에게 알려주십시오. 나는 무기를 갖고 가고 쏠 줄 안다고"란 가사를 물루지의 충고에 따라 "당신이 절 쫓겠다면 헌병들에게 알려주십시오. 나에겐 저항할 무기도 없고, 마음대로 절 쏠 수 있다는 것을"로 고친 터였지만, 당국의 검열을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이 노래는 방송금지 목록에 올랐고, 레코드도 회수되어 파기되었습니다.
결국 프랑스 사람들이 이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8년이 흐른 후인 1962년의 일이었습니다. 프랑스가 인도차이나에 이어 알제리에서 벌어졌던 독립전쟁에서 패배하고 알제리 독립을 승인한 후였습니다. 그 3년 전 비앙이 39세의 나이로 요절했습니다. 지금도 프랑스 사람들이 자주 부르는 애창가요인 탈주병은 이후 영어와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네덜란드어, 스웨덴어로 번역되었으며, 베트남 전쟁기간 중에는 반전운동에 참여했던 조안 바에즈가 부르기도 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는 대체복무제 지난 1963년 프랑스는 종교적·철학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적 거부자를 법적으로 인정하여, 병역을 면제받는 대신 복무기간의 2배에 해당하는 기간을 비전투부대나 문관으로 복무하도록 규정했습니다. 2001년 6월 27일 프랑스 대통령궁과 총리실은 "외부 위협이 줄고 모병제가 성공을 거둬 징병제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며 징병제 폐지를 공표했습니다. 이는 1793년 유럽 최초로 근대적 징병제를 도입한 프랑스가 모병제로 최종 전환했음을 알리는 역사적인 선언이었습니다.
지난해 한 시사주간지에는 프랑스에서 난민으로 살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이예다씨의 사연이 실렸습니다. 이씨는 프랑스 난민·무국적자보호사무국(OFPRA)에 제출한 난민신청서에서 "중학교 때, 불교에 대해 배우면서 어떤 생명도 죽이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강제적 징병제도는 사람을 죽이도록 훈련하는 일이며, 이는 제 신념과 모순되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권력과 체제의 입맛에 맞지 않는 신념이라 할지라도 이를 지킬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입니다. 대한민국이 정말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부합하는 나라라고 한다면, 집총과 병역을 거부할 권리를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문제를 좀 더 고민해야 하는 건 아닌지 비앙의 노래를 들으며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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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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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바쳐야한다면 대통령 당신의 피나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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