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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올 것 같다는 그 불안 <테이크쉘터>

[19살 검정고시생의 객기 넘치는 리뷰2] 카프카의 <굴>을 잇는 21세기의 불안

14.06.08 13:58최종업데이트14.06.08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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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테이크 쉘터>의 한 장면. ⓒ 소니 픽쳐스 클래식스


* 이 기사엔 영화 <테이크 쉘터>의 결말 부분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통제하지 못하는 공포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면 우린 뭘 할 수 있을까? 영화 <테이크 쉘터>는 미래의 불확실성과 삶 자체에 젖어있을 수밖에 없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탁월하게 그려냈다.

영화 <테이크 쉘터>의 한 장면. 하늘에서 내리는 기름비. 커티스의 첫 번째 꿈이다. ⓒ 소니 픽처스 크래식스


영화의 주인공인 커티스는 건설현장에서 일한다. 그에게는 아내와 청각장애를 가진 딸이 있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왔다. 물론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는 그렇게 살았을 것 같다는 얘기다. 영화는 도입부부터 불길한 정서로 점철되어 있고 첫 장면에서 관객은 이 영화의 톤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의 시작은 정체모를 장면으로 시작한다. 비가 오고 있고, 커티스가 집 앞에 서 있다. 이윽고 화면은 그가 손바닥을 들어 빗방울이 그의 손에 떨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비가 아닌 기름이다. 이 믿을 수 없는 장면은 관객이 나중에 알게 되는 그의 꿈속이다. 이 장면이 암울한 미래를 암시하는 우중중한 사운드와 영상으로 관객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영화 <테이크 쉘터>의 한 장면. 폭풍 대피소를 수리하려고 결심하는 커티스 ⓒ 소니 픽쳐스 클래식스


아무런 문제없던 커티스의 가족은 점점 변질된다. 커티스는 언젠가부터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 위에 소개했던 기름 비가 내리는 장면이 악몽의 첫 시작을 연다. 이어 두 번째 꿈에서도 비가 내리고, 커티스는 자신이 키우는 개에 의해 다리를 다친다. 헌데 꿈이 너무나 생생하다. 꿈속에서 다리를 다친 그는 현실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의아해하며 자신이 키우던 개를 격리하기에 이른다.

두 번째 악몽에는 낯선 사람이 등장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목을 조르고 딸을 데려간다. 이 장면 역시 비가 내리고 있으며, 이어지는 나머지 꿈속에서도 항상 폭풍이 몰아친다. 이 후 커티스는 밀려드는 불안감에 태풍 대피소를 만들기 시작하고 덕분에 미국 중산층인 그의 집과 차가 담보로 잡히면서 아내와의 다툼이 잦아진다. 세 번째 악몽 속에는 자신의 직장 동료가 꿈속에 나타난다. 이쯤 되면 커티스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환청과 환각에까지 시달리던 그의 네 번째 꿈속에 자신의 아내가 나타난다.

영화 <테이크 쉘터>의 한 장면. 꿈속의 아내 ⓒ 소니 픽쳐스 클래식스


영화에서 커티스의 아내로 분한 제시카 차스테인의 연기가 돋보인다. 그녀는 남편의 일을 알게 된 후 끝까지 그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영화의 중반쯤에 정말로 거대한 폭풍이 들어 닥치고, 커티스의 가족들이 태풍 대피소에 숨게 되는데, 태풍이 지나간 후 문을 열지 못하겠다는 남편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일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딸과, 남편을 모두 포용하는, 아주 강인한 아내를 보여준다.

커티스의 꿈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개 - 낯선 사람 - 직장 동료 - 아내 순이다. 잘 살펴보면 공포의 대상이 순차적으로 그와 가까워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부의 적이라는 말이 잘 어울릴 것 같다. 믿음이 서서히 깨지며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되는 상황 속에서 커티스의 불안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영화 속에서 커티스의 광기가 절정에 닿았을 때, 그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소리친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거대한 폭풍이 올 거야!"

영화에서 내포하는 불안의 개념은 비단 커티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인의 심리 저면에 자리 잡은 공포를 상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커티스가 소리쳤던 "폭풍"은 불안의 인식을 의미할 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다보면 대체 불안해서 악몽을 꾸게 된 것인지 악몽을 꾸게 되면서 불안한 것인지 헷갈릴 수 있을 것이다. 난 프로이트가 한 유명한 얘기처럼 무의식속에 잠식해 있던 불안이 꿈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고 추측한다. 그러니 둘은 굳이 나눌 필요가 없다. 영화의 끝으로 갈수록 '불안'의 개념은 점점 모두에게 보편화되는데, 이 과정에서 영화가 던지는 정서는 '불안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불안'이다.

재밌는 부분이 있다. 실제로 밤새 폭풍이 몰아쳐 자신의 아내와 딸을 데리고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는 커티스는 영화에서 처음으로 평온함을 느끼는 것 같이 보인다. 그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공포의 대상 자체가 아닌 불안한 심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테이크 쉘터>의 한 장면. 태풍 대피소에서의 세 사람. 커티스의 요구로 방독면까지 쓰고 있다. ⓒ 소니 픽쳐스 클래식스


결국 커티스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대피소의 문을 열고나올 수 있게 되었고, 이후 아내와 함께 정신과 의사를 찾아간다. 의사는 커티스를 입원시키라고 했고, 그도 동의하여 그들은 입원 전의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이제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 같던 찰나에 큰 반전이 닥친다. 해변에서 커티스와 놀던 해나는 몰려오는 폭풍을 본다. 커티스 역시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순간 방갈로 안에 있던 그의 아내가 나와 역시 폭풍을 보게 된다. 곧이어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이번엔 아내가 손바닥을 올려 빗방울을 본다. 기름이 내리고 있다.

이 장면에서 관객들이 느끼는 충격은 실로 엄청나다. '그럼 이 장면은 대체 꿈이야, 아니야'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내가 느끼는 바로는 이 마지막 장면은 커티스의 꿈이 아니다. 이전 꿈과는 다르게 그의 내면을 중요하게 찍은 것이 아니라, 그의 아내의 내면을 중요하게 찍었다. 이전 장면들이 점점 고조되어 그를 공격해왔다면 마지막 장면은 마치 무언가의 시작처럼 느껴진다. 그럼 혹시 아내가 꾸는 꿈인가. 가능성은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난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일단 딸 해나가 폭풍을 먼저 발견하고 수화로 그녀의 아빠에게 말한다. 이 수화는 그녀가 영화 초반에 현실 속에서 배운 것이다. 또한 다른 꿈 장면들이 폭풍을 직접적으로 보여줬는데 반해, 마지막 장면에서는 인물들이 폭풍을 보고 있는 모습들만 비추다가 가장 마지막 쇼트에 이러서 아내의 뒷모습과 저 편의 폭풍을 보여준다. 그 전까지 우리는 유리창에 비친 폭풍을 본다. 이 마지막 장면을 가지고 단순한 불안의 전염으로 해석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유리창에 비친 폭풍은 실체가 없다. 실체 없는 폭풍을 관객인 우리도 보게 되는 것이다.

영화 <테이크 쉘터>의 마지막 장면. 유리창으로 관객들에게 보이는 폭풍과 커티스의 아내. ⓒ 소니 픽쳐스 클래식스


굳이 끼워 맞출 필요가 있겠냐마는, 마지막 장면이 현실이라면 아내의 손에 떨어지는 기름은 뭔가, 또한 유리창에 비춰서 실체 없는 폭풍이라면 우리가 마지막 쇼트에 보게 되는 실체 폭풍은 뭔가 라고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개인이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전제 하에 내 의견을 말하자면, 영화가 던지는 은유라고 생각한다. 결국 모두가 벗어나지 못하는 불안의 상황에 대해 말하기 위해 그의 딸도, 아내도 환각을 보게 된 것이다. 기름 비도 마찬가지이며, 유리창에 비친 폭풍을 보던 관객이 결국 아무것도 경유하지 않은 채 폭풍을 본다는 것도 결국 우리도 현실 속에서 불안이 찾아 올 것이라는 메시지를 함유한다.

감독은 금융위기와 함께 찾아온 미래에 대한 공포 속에서 영화의 소재를 얻었다고 했다. 하지만 불안이라는 관념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굴>을 비롯해서 꽤 오래 전부터 작가들이 작품에 담고 싶어 해왔다. 삶의 고질적인 문제인 불안. 불안이 주는 공포는 대상에 대한 "정보 없음"이다. 영화에서는 불안의 그러한 특성들을 꿈속 인물들을 통해 보여주고, 그의 딸이 청각장애라는 설정을 통해 은연중에 심어냈다. 여타 가족들과 달리 그녀의 딸은 영화 속에서 비명을 제외하곤 단 한 번도 소리를 낸 적도 없다. 침묵에서부터 오는 불안감을 이 설정을 통해 잘 녹여내고 있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누군가가 이 불안이라는 감정을 타인의 것으로 밀쳐내 버린다면 영화는 곧 재미가 반감될 것이다. 인류의 보편적인 감정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것을 아주 효과적인 방법으로 전달했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니 한 번 찾아보는 것을 권한다.

영화 <테이크 쉘터>의 마지막 장면이자 마지막 쇼트. ⓒ 소니 픽쳐스 클래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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