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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자유 얻는 '모차르트!', 왜 매력적일까

[박정환의 뮤지컬 파라다이스] 음악 천재 모차르트의 정신적인 독립 투쟁기

14.06.24 10:27최종업데이트14.06.2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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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차르트! 를 연기하는 박효신 ⓒ EMK


2010년, 오스트리아 뮤지컬로는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된 <모차르트!>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보여주기보다는 모차르트의 '투쟁의 역사'를 보여주는 뮤지컬이다. 그렇다면 모차르트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 음악인이었을까. 음악적인 영감이 고갈되는 걸 막기 위한 음악을 위한 투쟁이라기보다는, 외부인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볼프강 모차르트와 대립각을 세우는 대표적인 인물은 콜로레도 대주교다. 그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자율적인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있기를 바라는 권력중심적인 인간이다. 주위 사람들을 속박하기를 바라는 콜로레도 대주교와 자유를 갈망하는 음악인으로서의 모차르트가 대립각을 세우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모차르트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기를 바라는 인물이 콜로레도 하나였으면 다행이었건만,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와 장모 체칠리아 베버 역시 모차르트를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걸 서슴지 않는 인물이다. 레오폴트는 하나부터 열까지 아들을 간섭하려 들고, 체칠리아 베버는 사위를 살아있는 저금통으로 생각한다.

▲ 모차르트! 의 한 장면 ⓒ EMK


모차르트가 세 사람에 대항하여 어떻게 정신적인 홀로서기를 할 것인가가 <모차르트!>의 관전 포인트다. 정신분석이 아버지의 영향력으로부터 얼마만큼 독립할 수 있는가를 판가름하는 학문이라는 면에서 보면, <모차르트!>는 아버지를 뛰어넘어야 하는 아들의 정신적인 홀로서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예찬기이기도 하다. 모차르트를 돕는 이는 가족이 아닌 발트슈테텐 남작부인.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후원자가 음악 천재의 정신적인 독립을 어떻게 도모하는지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2년 만에 한국 관객을 찾은 <모차르트!>에는 몇 가지 달라진 점을 찾아볼 수 있었다. 모차르트의 레게머리는 백발로 변해 있었으며 청바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전작에서 비중이 약했던 발트슈테텐 남작부인의 비중은 극명하게 두드러지고 있었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대변하는 아마데가 모차르트와 마지막을 함께 하는 장면 역시 예전의 피날레가 아니었다.

한국 뮤지컬 팬에게 사랑받은 비엔나 뮤지컬 삼총사, <모차르트!>와 <엘리자벳><황태자 루돌프> 세 작품의 피날레 가운데서 공통점은 '죽음'이다. 모차르트는 죽음을 통해서야 대주교와 장모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엘리자벳은 죽음을 통해서야 궁중이라는 감옥과 시어머니의 속박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루돌프 황태자 역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함으로 애정 없는 결혼 생활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모차르트와 엘리자벳, 루돌프와 같은 비엔나 주인공의 비극적인 최후가 한국 뮤지컬 팬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건 이들이 죽음을 불사할 만큼 자유를 갈망했다는 점 때문이다. 누군가의 속박에 얽매여 사는 것보다는 목숨과 맞바꿀 정도로 자유가 소중하다는 걸 보여주는 이 작품들은 그만큼 한국 사회의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는 걸 반증한다. 죽음을 통해서야 자유를 얻는 세 주인공에게서 대리만족을 얻을 만큼 정신적인 홀로서기를 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를 보여주기에 말이다.

모차르트! 뮤지컬 박효신 엘리자벳 황태자 루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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