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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4' 사라진 건 재미가 아닌 윤리였다

[리뷰] 적당한 재미 추구가 삼켜버린 윤리...문제였다

14.06.28 10:42최종업데이트14.06.2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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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 사라진시대>의 포스터. ⓒ CJ E&M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재미'라고 말하고 싶다. 분명 영화는 "재미있으면 그만"이 맞다.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만원이나 주고 영화를 보면서 굳이 재미없는 영화를 보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없다.

하지만 재미란 무엇인가. 재미라는 것이 내러티브에서 파생되는 기존의 콘텐츠들과 달리 영상은, 나아가 이 영상시대는 다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그리고 이제는 3D, 4D산업까지 영상시대는 시각을 넘어 체감시대로 진화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시대에 중요해진 것은 얼마만큼 나의 욕망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가.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얼마나 허물 수 있는가가 재미가 되어버렸다.

화려한 영상 앞에 내러티브는 무너지고, 그 안에 숨은 이데올로기를 비롯한 모든 이해관계 역시 산화된다. 어느 순간 그것들을 지적하는 이는 구닥다리가 되어버리고, 대중들 역시 외면해버렸다. 비판이 사라진 시대. 아니, 다르게 생각하면 이젠 영화가 어떻게 대중을 자극하는 지를 분석해내야만 한다.

때문에 마이클 베이는 이 새로운 시대의 진정한 선구자다. 그의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아무리 욕을 먹어도 꾸준히 흥행하는 현상은 그가 이 새로운 시대가 원하는 욕망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자동차, 로봇 그리고 이제는 공룡까지! <나쁜 녀석들> <아마겟돈>을 넘어 <트랜스포머>라는 프랜차이즈는 마이클 베이의 것이 되어버렸다. 마치 "애플"하면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듯 말이다.

그럼에도 이번 <트랜스포머4>는 이전 그 어떤 작품보다도 심각한 문제작이다. 허술한 내러티브도, 구질구질한 제국 이데올로기 문제보다도 더 심각하게 이 영화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마이클 베이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은 이 감독은 자기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을까라는 점이다.

생명 윤리 저버린 캐릭터까지 안고 가는 게 문제

<트랜스포머4>의 한 장면. ⓒ CJ E&M


복제의 시대, 혹은 아우라가 사라진 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컨베이어 벨트가 잉태하는 산물을 소비하는 이 시대는 모든 것을 복제, 대량생산할 수 있다. 생명체에도 해당된다. <트랜스포머4>의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당연하게 자동차(혹은 로봇)를 대량생산 하는 행위가 생명체를 복제하는 행위로 치환된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그것이 적과 우리를 구분하는 경계가 된다. 그런데 영화는 형식적인 결말을 위해 어째서 조슈아(스탠리 투치 분)를 끌어안는 걸까.

케이드 예거(마크 월버그 분)와 조슈아의 연결고리가 '로봇공학자'라지만 엄연하게 조슈아는 '생명윤리'에 어긋나는 중범죄를 저질렀다. 그런데 조슈아는 결말에서 영웅이 되어버린다. 어차피 로봇이고 기계이기 때문에 '생명윤리'를 따지는 것이 비약일까? 그렇다면 이 <트랜스포머>의 세계관 자체를 부정해야만 한다. <트랜스포머>를 단순히 '자동차가 인간을 지키는 로봇으로 변신한다.'로 끝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범블비가 귀엽다.'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옵티머스 프라임은 어째서 영웅으로 묘사되는 걸까.

<트랜스포머>는 일본 선라이즈의 '8대 용자물'처럼 로봇과 인간의 정서교감을 빼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로봇은 하나의 인격체로 존재해야한다. <트랜스포머>의 경우는 외계인이다. 즉, 로봇을 복제하는 행위는 생명을 복제하는 행위와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그 중요한 설정이 결말에서 부정된다.

더 큰 문제는 이 윤리적인 부분을 아무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스팩타클 앞에 스토리는 순간적으로 시퀀스의 정서를 보조해주는 역할로만 전락하고 말았다. 전후 상관관계는 잘리고 표면적인 피아구분과 정서로만 구성된 스토리의 빈공간은 물량공세로 채워 넣는다. 그저 우리의 눈에는 어릴 적 TV에서 보던 로봇만화의 재현일 뿐이다. 때문에 한 시간 전까지 생명윤리 앞에 분노하던 관객들이 그 원흉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이유다.

참으로 무섭다. 이런 영화가 못 만들면 "역시..." 라고 끝나겠는데 잘 만들면 무섭다. 얼마나 잘 만든 영화인가. 164분 동안 좋아하는 자동차와 로봇 그리고 공룡까지 종합선물세트로 볼 수 있다. 하물며 공룡은 불까지 뿜지 않는가! 무난하게 가족주의를 넣어주고 고통 받는 영웅이라는 양념 쳐준다. "재미있으면 그만"이 말하는 것처럼 화려한 영상미만으로 이미 <트랜스포머4>의 가치는 증명된 셈이다. 사파리 투어에 가서 사자와 호랑이에게 연기를 요구할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윤리마저 저버려야 하는가. 영화는 가상인가 현실인가. 왜 우리는 영화를 통해 울고 웃고 욕망을 실현시키는가. 오토봇은 단순한 기계인가? 외계 생명체는 복제해도 되는 걸까? 관객은 이 수많은 질문들에 대답하길 귀찮아하고, 마이클 베이도 안다. 하지만 그 사라진 시대가 무엇을 상실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그 사라진 것이 윤리라면 말이다.

마이클베이 트랜스포머4 옵티머스 프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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