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브라질 월드컵 16강, '마의 시간대'를 주목하라

[브라질 월드컵-16강] 벨기에 2-1 미국

14.07.02 10:44최종업데이트14.07.02 10:44
원고료로 응원
11미터 지점에서 공으로 차는 '룰렛 게임'이라 불리는 승부차기만큼이나 30분 이상의 시간을 더 뛰어야 하는 연장전도 선수들에게는 죽을 노릇이다. 근육 경련이 일어나지 않고 걸어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체력이다.

그런데 보는 이들에게는 이것만한 재미가 없을 정도다. 마치 일부러 축구팬들을 위해 질펀한 뒤풀이를 준비한 것처럼 그들은 놀라운 뒷심을 발휘하며 뛰고 또 뛴다. 그리고 좀처럼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이 진한 색깔의 골들을 쏟아낸다.

마크 빌모츠 감독이 이끌고 있는 벨기에 축구대표팀이 우리 시각으로 2일 새벽 5시 브라질 사우바도르에 있는 아레나 폰테 노바에서 열린 2014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브라질 16강 토너먼트 미국과의 맞대결에서 연장전에 터진 두 골을 잘 지켜내며 2-1로 이겨 8강에서 남아메리카의 강팀 아르헨티나를 만나게 되었다.

빌모츠 감독, 이번에도 '신의 한 수'

경기 시작 1분 만에 벨기에의 새내기 골잡이 오리지가 놀라운 순발력을 자랑하며 빠져들어가 오른발 대각선 슛으로 이 뜨거운 명승부를 알렸다. 비록 미국 문지기 팀 하워드의 슈퍼 세이브에 골이 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시작 분위기로는 골 잔치가 여느 집 못지 않게 펼쳐질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MOM(맨 오브 더 매치)에 미국 문지기 팀 하워드가 선정될 정도로 골이 터지지 않았다. 마치 일부러 연장전까지 끌고 가서 더 보여주고 싶은 선수들처럼 아슬아슬한 장면들을 쏟아낸 것이다.

56분에는 벨기에가 골대 불운을 겪었다. 골잡이 오리지가 오른쪽 띄워주기를 받아 이마로 돌려 골을 노렸지만 크로스바 상단을 때리며 아찔하게 넘어갔다. 사실 벨기에 선수들은 골대보다 미국 문지기 팀 하워드가 더 부담스러웠다.

76분, 후반전 교체 선수 미랄라스에게 결정적인 득점 기회가 찾아왔다. 동료의 멋진 찔러주기를 받아 오프 사이드 함정을 완벽하게 무너뜨리고 달려들어가 왼발로 골문 구석을 노렸다. 하지만 각도를 충분히 좁히며 달려나온 문지기 하워드는 발끝을 내뻗어 기적같은 슈퍼 세이브 신공을 보여주었다. 경기 결과를 떠나 왜 하워드가 MOM인지를 말해주는 가장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이처럼 상대 문지기의 놀라운 방어 능력을 쳐다보며 선수들의 기운이 빠지자 감독은 결정적인 선수 교체를 통해 한 수 위의 뒷심을 발휘했다. 벨기에 빌모츠 감독은 연장전 시작과 동시에 골잡이 로멜루 루카쿠를 들여보냈다.

한국도 포함된 H그룹 조별리그 세 경기에서 제 기량을 맘껏 펼치지 못했던 로멜루 루카쿠는 거짓말처럼 두 골을 만들어내며 벨기에를 당당히 8강 반열에 올려놓았다. 빌모츠 감독의 신의 한 수가 보기 좋게 들어맞은 것이다.

연장전 3분 만에 동료 미드필더 데 브루잉의 오른발 선취골 순간에는 부드러우면서도 상대에게 치명적인 드리블 실력을 자랑하며 미국의 측면 수비를 초토화시켰고 연장전 전반 종료 직전에는 데 브루잉의 찔러주기를 받아 왼발로 아름다운 결승골을 직접 터뜨렸다.

마의 시간대와 교체 선수들을 주목하라

벨기에는 비록 연장전 후반전 초반에 미국의 새내기 골잡이 그린에게 오른 발 발리슛 만회골(107분)을 내주며 흔들렸지만 든든한 문지기 티보 쿠르투아가 113분에 미국 골잡이 뎀프시의 결정적인 왼발 슛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승리를 지킬 수 있었다.

이로써 벨기에는 오는 6일 새벽 1시(한국 시각) 브라질리아에 있는 에스타디우 나시오날에서 아르헨티나와 준결승 진출권을 놓고 명승부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것처럼 각 그룹 1위로 16강에 올라온 팀들이 단 한 경기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이겼다. 그런데 16강 토너먼트 여덟 경기를 놓고 살펴보면 연장전까지 이어진 경기가 무려 다섯 경기나 된다. 잔혹한 11미터 룰렛 게임이라 불리는 승부차기는 두 번 있었지만 이것도 이번 브라질 월드컵의 특징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앞으로 남은 8경기에서도 어디까지 보여줄지 흥미진진하다.

여기서 더 놀라운 것은 조별리그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난 것처럼 필드 플레이어의 집중력이 급격히 흐려지는 마의 시간대(76분 이후)에 더 많은 골들이 터져나왔다는 것이다.

16강전 여덟 경기에서 나온 골은 모두 18골이다. 경기당 2.25골(승부차기 제외)이 만들어졌으니 손에 땀을 쥔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그 중에서 마의 시간대에 터진 골이 무려 12골(66.7%)이나 되니 한국 축구팬들 입장에서는 아침 출근 시간이 더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여느 대회에서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수치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감독들의 선수 보는 눈이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든 경기가 많았다. 비록 독일에게 연장전에서 무릎을 꿇었지만 알제리 선수들을 경기 때마다 팔색조로 변신시켜 준 할릴호지치(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감독의 혜안부터 떠오른다.

그리고 벤치에서 킥 오프 휘슬 소리를 들어야 하는 후보 선수들에 대한 시선도 특별했다. 네덜란드를 벼랑 끝에서 구한 훈텔라르가 반 할 감독의 믿음에 보답한 것을 필두로 쉬를레(독일)와 로멜루 루카쿠(벨기에)가 슈퍼 서브의 존재 가치를 충분히 입증한 것이다. 후보 선수라고 놀렸다가는 정말 축구장에서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프랑스 vs. 독일'(5일 새벽 1시), '브라질 vs. 콜롬비아'(5일 새벽 5시), '아르헨티나 vs. 벨기에'(6일 새벽 1시), '네덜란드 vs. 코스타리카'(6일 새벽 5시)로 짜여진 8강 대진표만 봐도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다. 기말고사에 얽매여 있는 중고생들에게는 많이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그나마 토요일과 일요일 새벽에 열리는 것이라 한국의 일반인 축구팬들은 숨 돌릴 틈이라도 생겨 다행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덧붙이는 글 ※ 2014 FIFA 월드컵 16강 결과(2일 새벽 5시, 아레나 폰테 노바-사우바도르)

★ 벨기에 2-1 미국 [득점 : 데 브루잉(93분), 로멜루 루카쿠(105분,도움-데 브루잉) / 그린(107분,도움-브래들리)]

◎ 벨기에 선수들
FW : 디보크 오리지(91분↔루카쿠)
AMF : 에당 아자르(111분↔샤들리), 케빈 데 브루잉, 드리에스 메르텐스(60분↔미랄라스)
DMF : 마루앙 펠라이니, 악셀 비첼
DF : 얀 베르통엔, 뱅상 콤파니, 다니엘 판 부이턴, 토비 알더베이렐드
GK : 티보 쿠르투아

◎ 미국 선수들
FW : 알레얀드로 베도야(105+2분↔그린), 클린트 뎀프시, 파비안 존슨(32분↔예들린)
MF : 미첼 브래들리, 저메인 존스, 그레이엄 주시(72분↔원더로프스키)
DF : 다마르쿠스 비슬리, 매트 베슬러, 오마르 곤잘레스, 지오프 카메론
GK : 팀 하워드

- 관중 : 51,227명 / 주심 : 자멜 하이모우디(알제리)
- 경고 : 카메론(18분), 콤파니(42분)

◇ 8강 대진표
☆ 프랑스 - 독일(7월 5일 새벽 1시, 마라카냥-리우 데 자니에루)
☆ 브라질 - 콜롬비아(7월 5일 새벽 5시, 에스타디우 카스텔랑-포르탈레자)
☆ 아르헨티나 - 벨기에(7월 6일 새벽 1시, 에스타디우 나시오날-브라질리아)
☆ 네덜란드 - 코스타리카(7월 6일 새벽 5시, 아레나 폰테 노바-사우바도르)
축구 월드컵 벨기에 로멜루 루카쿠 팀 하워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