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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제대로 된 남자영화

[김성호의 영화만세 26] <좋은 친구들>

14.07.16 16:13최종업데이트14.07.16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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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영화의 주요 줄거리가 노출돼 있습니다.

▲ 좋은 친구들 메인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2013년을 강타한 <신세계> 이후 꽤나 긴 시간 동안 느와르라 불리는 제대로 된 남자영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곽경택 감독의 <친구 2>와 배우 이태임의 노출이 화제를 모았던 <황제를 위하여> 같은 영화가 간헐적으로 등장하긴 했다. 하지만 <신세계>의 아성에 도전하기는커녕 무차별적 혹평 속에 스러져 갔으니 느와르물의 팬으로서는 지난 1년여가 기나 긴 목마름의 계절과도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목마름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충무로의 젊은 연출자 이도윤 감독의 연출작으로 지성, 주지훈, 이광수를 내세워 세 친구의 엇갈린 우정을 그려낸 영화 <좋은 친구들>이 지난 10일 개봉했다. 개봉 후 지금까지의 흥행성적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과 톱스타 정우성을 전면에 내세운 <신의 한수> 등에 밀려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주연을 맡은 세 배우의 출중한 연기력과 짜임새 있는 시나리오가 비교적 괜찮은 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마틴 스콜세지의 저 유명한 작품 <좋은 친구들(Good Fellas)>과 같은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우정을 이어온 세 친구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어린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였던 현태, 인철, 민수의 초등학교 졸업 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초등학교 교무실에서 압수된 워크맨과 각자의 졸업장을 훔쳐 나온 세 친구는 각자의 졸업을 기념하여 산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기로 한다. 하지만 그렇게 오른 산 정상에서 민수가 발을 헛디뎌 크게 다치고 그를 챙겨 내려오던 현태와 인철마저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조난을 당한다. 세차게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세 친구는 외딴 오두막 안으로 몸을 피하고 인철은 현태와 민수를 남겨둔 채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홀로 산을 내려간다.

그로부터 십수 년 후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남자로 성장한 현태는 소방관으로 일하며 청각장애를 지닌 아내와 귀여운 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장이 되어 있다. 인철과 민수 역시 현태의 곁에서 절친한 친구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들의 모습은 어린 시절과는 전혀 다르다.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인철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현태와는 달리 보험금을 노린 거짓 사고로 자신이 속한 회사에 피해를 입히는 불성실한 인간이다. 민수는 알코올에 의존하며 무기력한 삶을 살아간다. 오프닝 직후 이런 친구들의 모습에서 결말의 파국을 읽을 수 있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작은 의리는 어떻게 파멸해 가는가?

영화는 우정과 의리에 대한 이야기다. 불완전한 우정과 집단 내의 작은 의리가 어떻게 파멸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느와르물이다. 문제는 집단의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에겐 피해 주지 않으면서도 울타리 안의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인철의 제안으로부터 불거진다. 화재보험금을 타기 위해 불법 성인오락실을 운영하는 현태의 어머니와 짜고 인철과 민수가 오락실을 불 태운다는 계획, 이 계획이 어긋나며 이들의 평온해 보였던 삶이 그야말로 절망스럽게 변해간다.

현태의 어머니와 인철의 공모는 인철의 말 그대로 모두가 이득을 보는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다. 적어도 친구집단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하지만 그 울타리를 넘어서 사건을 보면 인철의 계획은 자신이 속한 보험회사에게 고의적으로 피해를 입히려는 보험사기에 불과했고 이는 엄연한 불법행위였다.

때문에 인철의 계획이 틀어져 되돌릴 수 없게 되었을 때 인철과 민수는 현태에게 자신들의 잘못을 털어놓지 못하고 속으로 괴로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울타리 너머의 큰 의리를 보지 못하고 눈앞의 작은 의리에만 충실했던 인철은 그래서 위태로웠고 마침내 실패한다.

▲ 좋은 친구들 어깨동무를 하고 다정하게 셀카를 찍는 인철(주지훈), 현태(지성), 민수(이광수).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가 가장 공들여 연출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여기다.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제 딴엔 모두가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계산에서 출발한 일이었는데 그 결과로 되돌릴 수 없는 문제를 만들어낸 인철과 민수의 아이러니한 상황. 가장 믿었던 친구를 의심하게 되며 혼란스러워 하는 현태의 고뇌.

영화는 각기 다른 상황에서 치열한 내적 갈등을 겪는 세 인물의 모습을 비추고 이들이 빚어내는 심리적 긴장관계에 힘입어 영화를 이끌어간다. 의도치 않았던 사건으로 절친했던 세 친구의 관계가 파국을 맞이하고 그런 상황 속에서 각자의 목적을 향해 내달리는 인철과 현태의 모습이 밀도 있는 내용전개와 어우러져 극적 긴장감을 더한다.

세 배우의 돋보이는 연기

화려한 삶을 동경하다 잘못된 선택을 거듭하는 인철은 이 영화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선택으로 모든 것이 잘못되어 버린 상황에서 우정을 지키고 상황을 수습하려는 그의 고군분투는 너무 절망적인 나머지 애처롭기까지 하다. 이러한 인철의 모습은 배우 주지훈의 물오른 연기를 통해 현실적으로 표현되었다. 급격한 내적 심리변화를 정적으로 풀어내야 했던 지성과 더없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민수의 모습을 적절히 연기해낸 이광수까지 세 배우의 연기야말로 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만든 결정적인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결말을 통해 오프닝에서 사라졌던 워크맨의 행방을 비추며 작은 의리를 완전히 지켜냈던 인철과 그를 온전히 믿지 못했던 현태의 불완전한 우정을 폭로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멋이다. 이 장면을 통해 오프닝이 비로소 영화 전체를 꿰뚫는 의미를 획득했고 결말과 시작이 서로 응답하는 수미상관의 형식미까지 얻었기 때문이다.

이런 장면 외에도 사려깊은 장면장면에서 시나리오단계에서부터 많은 준비를 한 흔적이 역력하게 느껴졌고 덕분에 모처럼 잘 만들어진 영화를 감상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칼질과 노출, 겉멋과 허세로 점철된 천박한 느와르물 사이에서 적절하면서도 절제된 선택이 빛난 흔치 않은 남자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좋은 친구들 이도윤 주지훈 지성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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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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