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4.07.30 11:40수정 2014.07.3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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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을 갖게 되면 보인다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못 본/그 꽃'
수염을 기른 지 어언 한 달이 지났다. 수염을 볼 때 마다 떠오르는 고은 시인의 '그 꽃'이라는 시 전문이다. 지난번 무작정 기를 때는 못 보았던 수염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과 수염에 얽힌 많은 역사를 보게 된다. '무엇이든 관심을 가지고 관찰을 하면 관계가 형성된다.'
졸저 '부실조직에서 명품조직으로'에서 소통의 한 방법으로 말했던 '3관 리더십'에 나왔던 말이다. 수염에 대해 관심을 갖고 관찰을 하니 그동안 못 보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중에 하나는 스무 날쯤 지나면서 도드라져 보이기 시작한 흰털들이다. 흰머리가 생기듯이 흰수염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턱밑에 흰털을 보니 불현듯 나이 들어 감을 깨닫게 해 잠시 감정이 울렁거렸다. 멍하니 거울 속 나를 보며 몇 번을 망설이다가 중대 결단을 내렸다.
'족집게'가 필요하다.
'족집게: 잔털이나 눈썹, 흰머리, 수염 등을 제거하는 도구'
아내 화장대 서랍을 뒤졌다. 금방이라도 흰수염을 없애줄 것 같은 족집게가 나를 반긴다. 미용기술의 발달로 요즘에는 많이 쓰지 않지만 어릴 적 기억에 족집게는 집안에 없어서는 안 될 '맥가이버칼'과 같은 존재였다. 부모님 흰머리 뽑을 때는 물론이고, 막 콧수염이 나기 시작하는 형들의 수염 제거용으로, 어머니 화장 도구로, 개구쟁이 손과 발에 박힌 작은 가시 제거 수술용 의료기까지 기능이 다양한 만능도구였다.
이렇듯 족집게는 우리 생활 속 곳곳에 편리함을 주는 물건이었다. 이런 편리한 기능 중 족집게를 더욱 위대하게 하는 것은 바로 목표한 것을 정확하게 집어서 해결해주는 능력 때문이다. '쪽'하고 '집어' 내기 때문에 족집게라는 이름을 얻었나 싶다. '족집게 도사' '족집게 과외' '족집게 학원' '족집게 무당' 등 콕 집어 해결해 준다는 수많은 족집게들이 등장하게 된 이유도 이런 족집게의 탁월한 능력 때문이었으리라.

▲족집게 족집게 : 신혼 때부터 함께한 우리 집 족집게
전병호
족집게를 찬양한다
'
족집게'는 청량음료다.볼이나 얼굴 어느 부분에 어느 날 만져지는 털 한 개가 발견된다면 그것을 뽑기 위해 하루종일 신경 쓰였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손끝을 모아 뽑아 보려 하지만 번번이 미끄러져 안 뽑힐 때 그 느낌은 정말 '으~악'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족집게를 들고 화장실로 가 단박에 그 거추장스런 털을 족집게로 물리쳤을 때 상쾌함이란? 그 짜릿함은 땀 뻘뻘 흘리고 산정상에 올라 툭 털어 넣는 한 모금의 청량음료 맛이다.
'족집게'는 불로초다.어머니는 흰머리 한 올에 거금 '1원'을 걸었다. 동생과 나는 족집게를 들고 흰머리를 찾아 열심히 머리카락을 헤쳐 놓곤 했다. 거울 속에 삐쭉빼쭉 도드라져 보이는 지금 내 흰머리를 보니 그 때 참 젊으셨다. '우리 어머니'
'족집게는 사춘기다고만고만 8남매인 우리집 아침 풍경은 난리통이었다. 부엌 어머니는 6개의 도시락을 싸느라 정신이 없고 시골집 마당 한 켠 수돗가는 등교 준비로 바쁜 누나와 형들로 북새통이었다. 이쪽저쪽 작은 털들이 올라오기 시작한 형들은 그 낯선 털들을 뽑는다며 바쁜 탓에 거울 앞 족집게는 덩달아 쉴 새 없이 바빠야 했다.
'족집게는 명의다.놀거리가 별로 없던 시골마을 꼬마들에게 산과 들은 야생의 놀이터였다. 아침 먹고 산으로 들로 쏘다니다 보면 나뭇가지 돌기나 아카시아 가시 하나쯤 어딘가에 달고 오게 된다.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 박힌 그 놈은 집에 도착할 때쯤부터 욱신욱신 아파오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지체 없이 족집게를 찾아서 아픈 부위를 바늘로 헤집은 다음 족집게로 간단한 수술을 완료했다.
'족집게는 외출이다.'
읍내 5일장이 서는 날이면 마루에 걸터앉아 거울을 보며 열심히 이마 옆으로 파고드는 잔털을 뽑고 있는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지금은 5년째 병상에 누워만 계시지만 장날 아침 족집게를 들고 거울을 보며 한쪽 손으로 연신 분을 바르던 그 어머니가 그립다.
족집게가 필요하다이렇듯 족집게는 작지만 없어서는 안 될 집안의 보물 같은 만능 도구였다. 턱 밑 흰수염을 뽑으며 그 동안 별 생각 없이 사용하던 족집게의 위대성에 감탄하게 된다. 뭔가 불편하고 자꾸 신경 쓰이는 것들을 단번에 제거하여 시원하게 해주는 그 족집게의 위대함을 찬양한다.
세상이 영 시끄럽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니지만 요즘 들어 더욱 뉴스가 보기 싫어질 정도이다. 예전이나 현재나 속세는 원래 혼란스럽고 시끄러운 곳인가 보다. 아니면 내가 나이를 들어 세상 보는 눈이 넓어져서 그럴 수도 있다. 요즘같이 시끄럽고 혼란스런 세상을 보자니 뽑을 때 확실하게 제대로 뽑아주는 족집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세상을 혼탁하게 하여 우리를 이리 불편하고 혼란스럽게 하는 사람답지 못한 수많은 잡털들을 족집게로 확 뽑아 버리고 싶다.

▲수염 매일 자라는 수염: 좌로부터 7월1일,8일,15일, 30일
전병호
한달 기른 수염 속에 듬성듬성 나타난 흰 수염을 본다.
그냥 둘까 하다 정신적 젊음을 위하여 뽑기로 했다. 족집게를 집어 들었다. 과감하게 흰수염을 물었다. 가볍게 잡아 당겼다. '아~ 시원하다'
그 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족집게의 위대함에 나태주님의 '풀 꽃'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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