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번째 증인 U학생(남, 기자 주 - 발언순서에 따라 알파벳순으로 명명)은 우여곡절 끝에 탈출에 성공했다. 4월 16일 세월호가 기울었을 때, 그는 4층 좌현 중앙 출입문을 거쳐 갑판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차례가 오기 전에 배에 물이 차올라 그는 벽을 타고 우현 쪽으로 이동했다. 이때 두 번이나 물살에 휘말릴 뻔했다.
U학생은 우현 출입문으로 나온 것도 아니었다. 그는 29일 법정에서 "4층 우현 키즈룸과 출입문 사이 공간에 사람이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있었는데 그걸 잡고 바다로 뛰어내렸다"고 말했다. 그가 정확한 탈출시각을 말하진 않았지만 배가 침몰하기 직전에 겨우 겨우 빠져나왔다고 보이는 대목이다.
다음은 U학생의 증언을 정리한 것이다.
좌현 갑판으로 탈출 실패... 벽 타고 우현으로

▲세월호 생존 학생 증언 위한 법정 28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세월호 참사 생존 단원고 학생들의 증인신문이 진행된 가운데 화상장치가 연결된 법정이 공개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검찰 측 신문] "4월 16일 사고날 때엔 (B-6번방·좌현 선수 8인 쪽) 화장실에서 나오던 참이었다. 그때 배가 기울어졌다. 처음에는 살짝 기울어져서 애들하고 웃으면서 그냥 실수인 것처럼 얘기했다. 그런데 몇 초 지나서는 (배가) 확 기울어져서 왼쪽으로 넘어졌다. 화장실 안에 있던 친구는 이때 밖으로 나오려다가 손이 끼었다. 그걸 빼주려고 했는데 잘 안 됐다. 손에서 피도 났는데 나중에 빠졌다." "이후 레크리에이션룸 앞에 있던 애들이 (갑판으로) 나가서 (B-6번방 쪽) 복도에 있던 애들도 중앙홀로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좌현 갑판 출입문 근처에서 물이 찼다. 나는 (사고 당일) 맨 처음에는 (B-6번방 앞) 화장실 쪽에 있다가 레크리에이션룸 벽을 타고 중앙로비로 나갔다. 이미 실내에는 물이 차올라서 몸이 둥둥 떠 있었다. 그런데 좌현 갑판으로 나가는 문으로 바닷물이 확 들어왔다. 그래서 몸이 떴다. 그 상태로 우현 쪽으로 올라오다가 S-5번방 쪽 복도로 빨려 들어갈 뻔했다. 하지만 구명조끼가 통로 입구 모서리에 걸렸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을 힘껏 쥐어서 빨려 들어가진 않았다. 거길 나온 다음에는 벽을 한 손으로 쭉 밀면서 우현 쪽으로 올라왔다. S-6번방 쪽 복도로 한 번 더 빨려 들어갈 뻔하기도 했다. 당시에 머리까지 물에 잠겼다. 그 뒤 (선체 밖으로) 나와서 보니까 해경 배가 있었다. 내가 살려달라고 했더니 (사람들이) 건져줬다."
"복도에서 대기한 건 1시간 정도. 해경 온다고 할 때까지 대기했다. 안내방송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당시 내 옆에 남윤철 선생님(2학년 6반 담임, 사망)이 계셨는데 구명조끼를 꺼내오라고 하셔서 다른 애들이 던져줬다. 그걸 입고 있을 때에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방송이, 그 다음에는 '끈을 제대로 묶으라'는 방송이 나왔다." "나중에 좌현 갑판 쪽으로 해경이 왔고 (학생들한테) 바다로 뛰어내리라고 했다. 그래서 친구들이 그쪽으로 나갔다. 나도 검은 색깔 보트를 봤다. 레크리에이션룸과 출입문 쪽에서 대기하던 애들이 먼저 차례로 나갔고 나도 뒤따라갔다. 갑판 끝이 바다에 닿을 듯 말 듯했다. 그러다 더 기울어지면서 바닷물이 들어왔다. 내가 나가는 도중에 물이 많이 들어와서 좌현 갑판으로 나가는 출입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다가 닫혀버렸다. 그래서 S-6번방 벽면을 타고 우현 갑판으로 나왔다. 출입문으로 나간 게 아니라 그쪽에 구멍이 있었다. 사람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라서 그걸 잡고 바다로 뛰어 들었다. 해경은 우리가 바다에 뛰어내린 다음에 건져주기만 했다." "한 시간 가까이 B-6번방 쪽에서 기다리면서 상황을 알았지만 방송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또 애들이 많이 나와 있는데 혼자 개인행동을 하면 움직일 상황 안 되고 방송에서 대기하라고 하니까…(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몇 번 사고 당시 꿈을 꿨는데… 제일 친했던 친구가 못 나왔다. 그 친구 생각이 한 번도 안 난 적이 없다. 생활하는 데에는 크게 지장은 없다. 하지만 선원들은 좀 강하게 (처벌)해야 될 것 같다." "못 나온 친구, 늘 생각... 선원들 강하게 처벌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