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 여행. 노근리 채상준 할아버지.
김예지
아무 죄 없이 죽어간 민간인들이 있다. 자신이 죽어간 이유조차 몰랐다. 그저 하얀 옷을 입고 피난을 간 것이 죄라면 죄였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민간인 속에 숨어 있는 적을 죽이기 위해 민간인을 사살한 곳이 바로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쌍굴이다. 7월 25일, 인권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그곳을 방문했다. 노근리 민간인 학살 사건이 일어난 지 정확히 64년이 지난 날이었다.
쌍굴은 총탄 자국을 표시한 하얀 도형과 이 장소를 소개하는 현수막이 없었더라면 특별히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게 차와 사람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이곳에서 200여 명이 죽었다. 답사를 기획한 회원들의 설명을 들으며 쌍굴을 둘러보았다. 그때 뒤에서 가만히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왔다. 그는 왼쪽 가슴에 검은색 추모 리본을 달고 있었다. "내가 진짜 거기(노근리) 사람이여" 하며 말을 시작한 채상준(74) 할아버지는 '그날'의 기억을 되짚었다.
"갑자기 (1950년) 7월 25일 날 미군하고 경찰이 와가지고 전부 끄잡아내는 거예요. 전부 피난 가라고. 그래가지고 하천에다가 강제로 재우고. 포 소리가 진짜 무서웠어요. 우스운 일이지만 난 무서워서 어머니 치마폭에서 잤어요. 하도 무서워서." 노근리 사건을 다룬 영화 <작은 연못>에 나온 것처럼,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어머니는 철길 주변 아카시아 나무 밑에서 미숫가루를 먹으며 은신해 있었다. 그러다 포 소리에 놀란 할아버지가 어머니 손을 놓쳤다. 할아버지는 사람들 속에서 길을 잃었고, 인파에 밀려 쌍굴로 왔다. 당시 10살이던 할아버지는 총격 때문에 머리가 깨진 소녀를 생생히 기억한다. 미군은 그 소녀와 할아버지를 데려갔다.
"우리 어머니는 내 찾으려고 여기(쌍굴)에 들어왔어요. 다른 사람들이 (쌍굴에서) 많이 죽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데, 유난히 내 어머니는 날 찾으려고 막 나오다가 총알을 맞아서…."할아버지는 뒤늦게 쌍굴로 온 어머니가 숨을 거두던 순간의 이야기를 마을 사람으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했다. 너무나도 담담히 자신의 기억을 되짚던 할아버지는 말을 마치고 인사도 받지 않은 채 쌍굴 옆으로 난 길로 올라갔다. 순간적으로 성함이라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를 따라갔다. 할아버지는 이름 모를 사람들을 기리기 위한 조그만 추모비 앞에서 절을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의식이 끝날 때까지, 짧은 묵념을 하고 우두커니 기다렸다. 할아버지는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담담하게 눈물을 닦았다. 이런 눈물에 익숙할 그가, 이곳으로 오기 전에 두루마리 휴지를 둘둘 뜯어 주머니에 넣는 모습이 그려졌다.
"우리 엄마도 시체가 됐겠죠? 사람들이 (쌍굴 안에서) 시체를 가져다가 자기 살려고 총알받이로 앞에 쌓아놨대요. 그 시체를. 어머니는 이제 죽어서 (쌍굴 안에 있던) 사람들 실탄받이가 된 거지. 그래서 나중에 동네 사람이 그 송장을 가져다가 여기다 다 묻었대요. 여기다 다 묻었는데 피가 올라와가지고 (땅이) 막 질퍽질퍽하더래요." 그곳에 서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에게 노근리 사건 이후의 삶은 "진짜 기억도 하기 싫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겨우 돌아온 집에는 어머니 대신 미군이 놓고 간 실탄과 포탄이 가득했다. 할아버지는 피난을 가지 않은 두 형의 집을 전전하다가 제 발로 고아원에 들어갔다. 그 뒤로 심장병 약을 달고 살았다. 그를 서울에 있는 병원에 보내준 것은 미국인 선교사였다.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어머니의 유해조차 찾지 못했다. 국가에서 나온 보조금은 거절했다. 그는 60여 년 전의 사건을 돌이키며 몇 번이고 울먹였다. 그의 상처는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듯했다.
'일상'을 지키는 것, 그게 바로 인권 4박 5일은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그럼에도 '사건'에 가려진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발견해내기에는 충분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간부'는 우리 아빠처럼 가족이 전부인 평범한 40대 아저씨였다. 밀양의 할매들과 더불어 밀양을 사랑하는 젊은 농사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노근리학살사건 생존자'는 그저 당시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어린 소년과 여전히 다를 바 없었다.
이들을 마주하며 인권이란 거창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일상을 잃어버리는 것, 그것이 인권침해가 아닐까. 가족과 밥을 먹거나 사진을 찍을 시간을 가지는 것, 작은 땅덩어리 위에 별 탈 없이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것, 어머니와 함께한 소중한 유년시절의 기억을 간직하며 사는 것. 이것을 지키는 것이 인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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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받이' 된 엄마, 국가보조금 거절한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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