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4.09.09 17:20수정 2014.09.09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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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줍기에 열중인 아내의 손에 밤이 가득하다
오문수
종산에 모신 부모님 산소를 찾아 성묘를 마치고, 묘지 위에 심은 밤나무에 밤이 익었을까 궁금해 밤나무 밑으로 갔다.
올 추석은 다른 해보다 빨라 곡식과 열매가 익지 않았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밤나무 꼭대기를 보니 밤송이가 벌어진 게 여러 송이 보였다. 땅 바닥을 보니 사방에 밤들이 떨어져 있었다.
이 밤나무는 아버지와 나, 형이 40년 전에 심은 나무다. 가난했지만, 부지런했던 아버지는 7남매의 뒷바라지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바쁘셨다. 농촌이라 논농사와 밭농사 외에 특별한 소득이 없던 아버지는 내가 대학에 합격하고 결혼할 나이가 된 형을 위해 단감과 밤을 심자고 해 셋이서 감과 밤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군입대를 앞둔 나와 아버지와 형은 한 달여간 산비탈을 파 거름을 뿌리고 어린 묘목을 사 심었다.
군입대를 앞두고 산비탈을 파 밤나무 심어

▲ 장대로 밤을 따는 아내의 모습
오문수

▲ 밤줍기에 열중인 아내
오문수

▲ 한 시간에 만에 다섯 되 정도의 밤을 주웠다
오문수
내가 군에 간 사이에 형은 아예 산으로 들어와 젖소를 키우고 단감과 밤을 재배하며 버섯도 재배했다. 가난을 벗어난 형은 이제 읍내에 훌륭한 집을 짓고 넓은 땅을 사 분재용 나무를 재배한다.
우리 형제간들이야 어떻게 감나무와 밤나무 농장을 일궜는지 잘 알지만, 결혼해 들어와 새식구가 된 여자들이나 매형 매제는 이 농장으로 가는 길을 얼마나 힘들게 만들고 키워왔는지 모른다. 다만 추석에 성묘와 돌아갈 때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에서 감을 따고 밤을 주어가는 게 시골에 오는 기쁨 중 하나다.
읍내에 있는 형한테 밤을 줍겠다고 전화했더니 "독사가 있으니 조심해라"고 한다. 아내와 나는 형이 살던 집으로 돌아와 장화를 꺼내 신었다. 며칠 전 "나이 들수록 좋은 옷을 입어야지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니면 초라하게 보인다"며 좋은 옷을 사준 아내가 잔소리다.
"여보! 옷 버리니까 밤 줍지 말고 그냥 사먹을까?""뭐라고? 내가 심은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하고 시장에서 산 밤이 같아? 그리고 옷이 더러워지면 빨면 되지 뭘 그래. 여기까지 왔으니 밤도 줍고 저녁에 김 서방 오면 장인이 심은 밤이라며 싸 주면 훨씬 더 의미 있지 않아?" 내 강력한 주장에 아내는 수긍하고 따라왔다. 밤 까는 칼과 밤 담을 자루를 가지고 여기저기 떨어진 밤을 줍기 시작하자. 금방 한 자루가 찼다. 아내는 땀이 많다. 밤 줍는 재미에 빠진 아내 얼굴에 땀이 비오듯하고 나도 땀이 많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고향집으로 향하는 차 속 온도계가 30도가 넘었었다.
"여보! 땀이 너무 많이 나서 안 되겠네. 이제 그만 줍고 집에 가자!""에이! 조금만 참아 내가 집 앞에 가서 시원한 물에 등물 해줄게" "알았어! 이제 몇 개만 더 줍고 가는 거야!"라고 다짐한 아내가 발을 돌려 장대를 들고 가려는 순간에 등 뒤에서 밤이 후두둑 떨어진다. 바람도 없는데 계속 떨어진다. 그 많던 다람쥐는 다 어딜갔을까? 이렇게 맛있는 밤이 넘치는 데도 말이다. 내가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아버님이 자식들에게 선물을 한 것 같아"

▲ 집 앞에 심어놓은 단감은 아직 제철이 되지 않아 익지 않았다
오문수

▲ 형이 살았던 집. 뒷편에 부모님 산소가 보인다.
오문수
"여보! 힘들지만 이렇게 좋은 밤을 주우니 좋지?""응! 그래. 생각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밤 줍다 생각했는데 아버님이 자식들에게 선물을 한 것 같아. 추석이면 해마다 찾아와 밤도 따고 감도 따가라고""한 시간 만에 다섯 되쯤 주었으니 오지지?""그래서 당신은 나한테 시집 잘 온거야. 내 고향이 곡성군 오곡면 오지리니까"아내가 "허 허!"하며 웃으며 "그래 맞다. 맞아!"라며 실소를 했다. "서울에서 내려올 김 서방 주고도 남을 정도로 많이 주웠으니 이제 정말로 집에 가는 거야"며 발길을 돌리던 아내가 "여기도 사방에 널려있네"라며 또 다시 밤을 줍는다.
아내가 한마디했다.
"아이고! 밤이 내 발목을 잡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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