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락에 영향이 없다는 생각에 교사들 스스로 추천서의 비중을 얕본 탓일까. 아이들 중에는 자기소개서가 아닌, 교사추천서를 자기가 직접 써오겠다는 경우도 더러 있다.
freeimages
하긴 대학이 고등학교의 학교생활기록부의 내용을 믿지 않는다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아이들마다 내용이 천편일률적인 데다 '과대포장'이 돼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계량화되어 서열이 매겨진 성적이 기댈 만한 '유일하다시피 한' 잣대이며, 나머지 비교과 영역은 그것을 돋보이게 만들어 줄 '옷에 그려진 무늬' 정도라고 인식한다.
대학에서는 고등학교 교사들이 온갖 미사여구로 '떡잎'을 감추고 있다고 불평하고, 고등학교에서는 대학이 애초 '될 성 부른 나무'를 알아보고 키워낼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이렇듯 불신이 켜켜이 쌓여있으니, 거의 해마다 새로운 대학입시안이 나와도 결국엔 돌고 돌아 계량화된 점수에 우선 의존하게 된다. 그것도 '공정하고 객관적이다'는 이름으로.
당락에 영향이 없다는 생각에 교사들 스스로 추천서의 비중을 얕본 탓일까. 아이들 중에는 자기소개서가 아닌, 교사추천서를 자기가 직접 써오겠다는 경우도 더러 있다. 말이야 '입시 상담에 시달리는 선생님의 수고로움을 덜어드리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글의 내용을 차치하고라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곧, 교사의 명의를 빌려 달라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조차 '자기'가 잘 드러나지 않으니 그런 추천서만 나무랄 일은 아니다. 진학하려는 학과와 대학은 달라도 아이들의 자기소개서는 무슨 공식에 대입해 쓴 것처럼 천편일률적이다. 학업에 관한 건 어김없이 책의 감동이나 선생님의 '결정적' 조언이 등장하고, 새로 조직했다거나 회장으로 일했다는 동아리 활동은 '약방의 감초'다. 왕따를 당하는 친구나 장애인을 도왔다는 이야기는 훈훈하기는커녕 식상할 정도다.
더욱이 첨삭 지도의 과정을 수차례 거치면 내용은 물론, 문장의 형식조차 비슷해진다. 읽다 보면 마치 남의 것을 그대로 복사해 가져다 붙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이 자기소개서를 통해 아이들의 잠재성을 파악하기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여러 장의 자기소개서를 뒤섞어 놓으면, 낳고 키운 부모조차 자기 자녀의 것을 못 찾아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추천서든, 자기소개서든, 대학 입시에서 어차피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세간의 지적이 타당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던가. 처음 도입할 때야 이러지 않았겠지만 또 하나의 '관행'으로 굳어, 때 되면 으레 대학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 같은 게 됐다. 고등학교의 입장에서야 아이들을 어떻게든 대학엘 보내자면 수시고 정시고 가릴 처지가 못 되니, 그들의 요구대로 뭐라도 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교사로서 이게 뭐하자는 건가 싶을 때가 있다.
한숨 쉬어가며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인 아이들의 자기소개서를 눈이 빠져라 읽고 있는데, 한 고3 아이가 고생하신다며 넉살 좋게 말을 걸었다. 그는 여느 친구들과는 달리 고1때부터 가고 싶어 한 대학 단 한 곳에만 수시 원서를 넣었다면서, 여기저기 원서를 쓰는 건 시간 낭비, 돈 낭비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수시 원서를 복권에 비유하며 이렇게 비판했다.
"친구들끼리 수시원서를 '로또'라고 불러요. 하나같이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배짱 지원이니까요. 정시로 갈 수 있는 대학에 굳이 수시원서를 낼 리 없잖아요. 붙으면 '대박'이지만, 수시에 떨어졌다고 충격 받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요행을 바란 셈이니 떨어져도 덤덤한 거죠. 대학 6곳에 수시원서를 내는 건 마치 6장의 '로또'를 사는 것과 비슷한 셈이죠. 그래선지 친구들 사이에서는 수시모집이 대학들 좋아라고 만든 제도 아니냐는 의심을 하기도 해요. 듣자니까 서울 소재의 웬만한 대학들은 수시원서 수익만 수십억 원이라면서요. 그들이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아도 수요가 넘쳐나는, 말하자면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잖아요. 우리와 선생님들은 '호갱님'이고, 대학은 '슈퍼 갑'인 거죠."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7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공유하기
교사추천서도 '대필'... 수시모집, 그 적나라한 실상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