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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 수준 낮다? 이 정도입니다

[주장] 옥석 골라내며 국제적 위상 높이는 데 첨병 역할을 하는 영화제의 큰 자산

14.09.26 16:38최종업데이트14.09.2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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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산영화제 개폐막작과 거장 감독들의 작품 ⓒ 부산국제영화제


25일 오전부터 시작된 부산국제영화제 일반상영작 예매에서 상당수 작품들이 예매 시작과 함께 매진됐다. 몰리는 관객들을 감당하지 못해 초반 서버가 다운 될 만큼 관객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화제작들은 대부분 예매표가 일찍 소진돼 표를 못 구한 관객들은 부산영화제 공식 SNS 등에 항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국내에 영화제들이 많지만 특히 부산영화제에 대한 안팎의 관심은 이렇듯 특별하다. 예매를 전쟁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국내 영화제에서는 부산영화제만 해당될 정도다. 처음 시작될 때부터의 관심이 줄곧 이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올해로 19회까지 개최되면서 흔들림 없이 기본 가치를 지켜온 것도 관객들이 부산영화제에 신뢰를 보내는 바탕이다.

녹록치 않은 환경에서 시작된 영화제였지만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며 검열이나 각종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이 부산영화제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그만큼 수준 높은 작품들이 관객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켰기에 가능한 부분이기도 했다.

영화제에서 작품은 기본적이면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영화제의 질은 영화의 수준이 결정한다. 어떤 영화를 가져오느냐에 따라 영화제의 위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거장들의 작품이나 화제작, 거센 논쟁이 될 수 있는 작품들은 영화제에 대한 관심을 배가시킨다. 세월호 참사를 담은 <다이빙벨>의 상영작 선정이 논란이 되는 등 아직 공개되지 않은 다큐멘터리 한 편이 세간 관심을 높이는 것도 부산영화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가장 첨병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프로그래머다. 수많은 영화들을 고르고 골라 관객들에게 내놓는 가장 핵심 역할을 이들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제는 프로그래머가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제 작품 선정의 첨병 역할 프로그래머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 ⓒ 부산국제영화제


국내 여러 영화제 중 부산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은 프로그래머 진용이 탄탄하다는 것이다. 일단 인적 변동이 크게 없고 다들 국제적으로 탄탄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 사실 프로그래머는 해외 인맥들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만나기 어려운 유명 감독 배우들이 영화제에 온다거나 섭외가 어려울 뻔한 작품이 영화제에 올 수 있는 것은 이런 네트워크가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영화제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환경도 많이 변화됐다. 영화제 초기엔 '제발 영화를 보내달라'고 사정하던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프리미어 상영(제작 후 해외 첫 상영)이 아니면 부산에 초청받기 어려울 정도다. 전세가 역전된 것이다.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는 아시아 영화계의 핵심 실세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가 해외 출장에 나설 때마다 수많은 제작사와 감독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한번 봐 달라고 스크리너를 전달한다. 어떻게든 부산에 초청받아 국제적인 인정을 받고 싶은 열망이 담겨 있는 것이다. 김 프로그래머는 그 많은 영화들을 일일이 보고 그 중에서 옥석을 가려낸다.

2012년 17회 영화제 폐막작이었던 방글라데시 영화 <텔레비전>은 프로그래머의 선택에 감독의 운명이 바뀐 대표적인 경우다. 영화 후진국인 방글라데시 작품이 부산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면서 자국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해외 영화계도 부산의 선택을 주목했다. 이후 영화를 연출한 모스토파 파루키 감독은 아시아의 주목받는 감독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는 올해 부산영화제의 지원을 받아 완성한 신작 <개미 이야기>로 영화제를 찾는다. 프로그래머의 안목이 한 국가의 영화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것이다.

최근 칸이나 베니스영화제 등에서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굳이 아시아 영화를 찾아보지 않는다. 아시아의 세일즈사나 제작사 관계자들이 막 완성된 신작들의 스크리너를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김 프로그래머는 "하루 일정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 그 스크리너들을 열심히 보고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다음날 바로 초청의사를 전달한다"고 말했다. 영화제 위상이 커지면서 생겨난 변화다.

유럽 지역에서의 배려도 특별하다. 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 같은 영화기관들이 사전에 주요 작품을 볼 수 있게 프라이빗 스크리닝을 제공한다. 프라이빗 스크리닝은 해당 국가의 영화기관들이 자국 영화를 선별해 따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경우 프로그래머가 방문해 시사실에서 하루 종일 나홀로 시사를 한다. 국내에서는 부산영화제와 전주영화제 정도가 이런 대접을 받고 있다.

부산영화제 이수원 프로그래머는 "일반적으로 이름 있는 영화제들에게 배려해 주는 건데, 유럽의 경우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는 부산영화제에 대한 배려가 특별한 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매해 프라이빗 스크리닝을 위해 유럽지역에 장기간 머무른다.

까다로운 작품 선정. 국내외 권위 인정받는 바탕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들 ⓒ 부산국제영화제


이들 프로그래머들의 손길이 인정받는 순간은 골라온 작품들이 관객들의 호응을 받는 때와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을 때다. 지난해 선댄스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지슬>은 2012년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작품이었다. 지난해 부산에서 소개돼 로테르담영화제 최고상을 수상한 <한공주>도 마찬가지다. <한공주>는 마라케시영화제나 프리부르영화제에서도 수상하며 크게 주목받았다. 영화를 처음 고른 프로그래머의 선택이 빛을 발한 순간 이었다.

와이드앵글을 맡고 있는 홍효숙 프로그래머는 김동호 명예 집행위원장이 외부에 인사시킬 때 '국내 독립영화의 대모'로 소개할 만큼 초기부터 부산영화제 성장에 기여해 왔다. 한국의 독립다큐가 성장하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데는 그의 역할이 컸다. 지난해에는 칸, 베니스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을 맡았고,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과 자문 역을 맡으며 국제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홍 프로그래머는 한국 독립영화뿐만 아니라 해외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에도 도움을 주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고,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의 감독 데뷔작 <주리>의 프로듀서를 맡기도 했다. 그간 부산영화제에 의미 있는 작품들이 많이 나올 수 있던 것은 그의 노력 덕분이었다.

부산영화제의 프로그램 선정은 초기부터 상당히 엄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영화제 초창기 정치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았던 한 다큐멘터리 감독은 몇 해 지나 후속작을 만들었으나 영화제에서 틀지 못했다. 영화제 측이 전작에 비해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최종 선정과정에서 제외한 것이다.

정치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고 처음 작품이 크게 주목받았기에 당연히 초청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영화제의 상영작 심사는 까다로웠다. 지금 부산영화제가 세계적인 위상을 인정받고 있는 것도 이런 엄격한 기준 덕분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해외의 좋은 작품들이 주로 부산만 찾으려해 국내 영화제들 간에 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나의 작품을 상영하고 싶은 영화제들이 많다보니 벌어지는 현상인데, 번번이 부산에 밀리는 상황이 되자, 일부 영화제는 아예 판권을 구입하고 있다. 직접 수입과 배급을 맡아 작품을 확보하는 것이다.

부천·환경영화제 일군 프로그래머 인재 새롭게 영입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들 ⓒ 부산국제영화제


올해 부산영화제는 좋은 프로그래머들을 독식한다는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올해 여름 프로그래머들의 '이적 시장'이 잠시 열렸는데, 국내 영화제에서 A급 인력으로 평가받던 인재들을 부산에서 영입했기 때문이다.

부산영화제는 부천영화제를 총괄했던 박진형 프로그래머와 서울환경영화제 김영우 프로그래머를 새롭게 충원했다. 이들은 국제영화계에서 오랜 인맥을 다져놓고 있는 풍부한 경험의 프로그래머들로 역량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박진형 프로그래머는 부천영화제가 2004년 부천시장의 정치적 개입으로 크게 망가진 이후, 최근까지 6년 간 부천영화제에서 일하며 이를 회복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환경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역임했고, 평론가로도 활동하는 등 다재다능한 인물로 꼽힌다. 박 프로그래머는 올해부터 월드프로그래머로 합류해 주로 남미영화 선정을 맡고 있다.

김영우 프로그래머는 서울환경영화제의 1만 관객 신화를 이뤄낸 인물로 알려져 있다. 환경영화제는 특정한 주제로 열리는 영화제기에 관객이 많지 않았으나 그가 프로그래머를 맡으면서 2배 이상 성장했다. 일반 스태프와 함께 호흡하며 꼼꼼하게 현안을 챙긴 게 밑거름이었다. 지난해 최열 집행위원장의 공백 상태에서도 영화제를 안정적으로 치러내 주목받았다. 올해부터 김지석 프로그래머를 도와 아시아 영화를 맡게 됐다. 주로 인도영화를 선정했다.

최근 <다이빙벨> 상영을 두고 일부에서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의 수준을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산영화제가 지금처럼 경험 많고 경륜 있는 인재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위에 언급한 것처럼 그 수준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편이다. 그만큼 흔들리지 않고 부산영화제를 꾸려온 프로그래머는 영화제의 큰 자산이자 부러움의 대상이다.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 김지석 이수원 남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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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주요 영화제, 정책 등등)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각종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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