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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가 나이 먹으면 '덕이'처럼 될까

[리뷰] 영화 <마담뺑덕>이 보여주는 현대판 욕망의 소용돌이

14.10.06 16:42최종업데이트14.10.0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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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담뺑덕>은 충분히 파격적이다. 소재부터 연출, 연기, 그리고 이야기까지. '현대판 심청전'을 표방하고 있는 <마담뺑덕>은 정우성의 노출연기나 자극적인 영상미가 핵심이 아니다. 영화는 현대 사회에서 갈등이 어떻게 봉합되고 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강한 일침을 날리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학규(정우성 분)가 덕이(이솜 분)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현대판 숙명을 드러낸다.

▲ 영화 포스터. 마담뺑덕은 충분히 파격적이다. ⓒ CJ엔터테인먼트


욕망과 돈, 소유와 결핍, 도시와 시골,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들리는 이와 들리지 않는 이, 사랑하는 이와 더 사랑하는 이 등 영화는 현대 사회에 중첩된 온갖 병리를 드러낸다.

특히 청이 엄마(윤세아 분)의 자살을 목격하는 청이(박소영 분)를 바라보는 관객은 시선은 이제 애처로움을 넘어 자연스럽다고까지 말해야 할 정도이다. 영화에선 왜 청이 엄마가 우울증에 걸렸는지 자세하게 나오지 않는다.

물론 학규의 욕망 때문에 불안해하는 모습을 띠고 집착하지만, 분명 그게 다는 아니다.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청이 엄마는 왜 우울증에 걸려 자살에 이르렀을까. 아내의 우울증 때문에 학규가 더욱 외도했는지도 모르겠다.

현대 사회의 온갖 병리 드러내... 처연함 속에 행복이 깃들다

덕이의 트라우마는 더욱 강렬하다. 곧 철거될 놀이공원 매표소에서 일하는 덕이는 늘 이탈을 꿈꾼다. 이탈은 단순히 타락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동네를 벋어나 자유를 갈망하는 것이다. 모든 현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런 덕이에게 양복을 입은 학규가 처음부터 눈에 띈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에다가 훤칠한 훈남을 보자마자 덕이는 관심을 갖는다. 특히 '서울'로 상징되는 중심의 환상은 주변에 머물러 있던 덕이를 끌어들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학규 역시 온갖 고독과 결핍에 휩싸여 있는 인물이다. 학규는 본인이 행하지 않은 일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나 시골까지 왔다. 그는 노인들 앞에서 젊은 정신을 갖지 못하면 소설을 쓸 수 없다고 규정한다. "소설이란 무엇인가"라고 강의해야 하는 자신이 애처로웠을 것이다.

과연, 정말 소설이란 무엇인가. 영화는 소설의 한 문장이 완성되기 위해 학규가 눈이 멀고, 딸 청이를 잃고 나서야 주옥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암시한다. 과연 소설이 중요한가, 인간성의 회복이 중요한 것인가. 학규는 마지막에 이르러 이 둘을 모두 깨닫는다.

사랑의 강도는 처음에 덕이 > 학규에서, 덕이 < 학규로 변모한다. 사랑하는 이는 더 사랑하는 이보다 강자이다. 강자와 약자의 대립구도가 어떻게 전복될 수 있는지 영화는 똑똑히 보여주었다. 그 순간은 덕이가 체념하고 더 큰 사랑에 눈을 뜰 때 비로소 찾아온다. 눈을 잃고 학규 옆에 앉아 햇살을 어루만지는 덕이의 모습은 한없이 슬퍼보이지만, 그 처연함 속에 행복이 똬리를 틀고 있다.

담뱃재를 털어넣고, 음식물 쓰레기를 김치찌개에 넣으면서 덕이는 학규를 증오한다. 하지만 그 증오란 애증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덕이는 알고 있을까. 학규는 나중에 덕이의 존재를 깨닫지만, 그 이전부터 덕이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욕실에서 덕이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자 학규는 절규하는 덕이를 껴안는다. 그리고 영화는 정점이 이른다.

은교와 덕이, 덕이와 은교

영화 <은교>는 <마담뺑덕>과 비교된다. 영화 속 두 주인공들은 순수함 그 자체였다. 은교는 영화 안에서 소설 <은교>의 저작자가 누구인지 모른다. 덕이는 영화 안에서 나중에 완성될 작품의 소재가 본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소설이 완성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어내야 하는지 은교는 모르지만 덕이는 알고 있다.

은교는 이적요의 마음을 끝내 얻지 못했지만, 덕이는 학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은교는 이적요의 제자로부터 처녀성을 잃고, 덕이는 학규에게 처녀성을 상실했다. 덕이에 비해 은교가 좀더 자유롭다. 덕이에게 처녀성은 모든 것이었지만, 은교에겐 스쳐지나가는 바람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러기에 은교보다 덕이가 더욱 처연하다. 육체적 욕망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결핍의 영혼이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덕이는 사랑을 잃고 운명을 얻었다. 은교는 젊음을 잃고 사랑을 깨달았다.

은교와 덕이는 소녀의 성장통을 겪었다는 측면에서 무척이나 닮아 있다. 덕이는 집요하다. 은교는 복수의 대상이 있기보단 깨달음과 경건의 물화로서 이적요를 마주한다. 돌아누워 눈물을 흘리는 이적요를 두고 은교는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은교에게 이적요는 이제 사랑의 대상이기보단 존경의 대상이다. 덕이에겐 사랑의 대상이 소유하는 관계로 발전한다. 학규와 덕이는 혼연일체가 된 것이다. 은교가 성장통을 지나서 어른이 되면 덕이가 되어 있을까. 둘은 매우 닮아 있다. 덕이에게서 순수한 은교의 모습이 투영되고, 은교에게서 악착스런 덕이의 그림자가 비친다.

<마담뺑덕>은 후반부에 욕망의 소용돌이로 치닫는다. 청이는 살아남아 또 다른 덕이가 된다. 심청전에 대한 감독의 재해석이자 반전이다. 덕이는 초연한 듯 눈을 감고 영화는 끝난다. 학규는 사랑을 깨닫고 소설을 완성한다,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멜로/로맨스, 한국 111분, 2014.10.02 개봉.
마담뺑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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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문화,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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