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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의 반란'이 만든 슈틸리케호 첫 승리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서 2-0 완승... 슈틸리케 감독은 무엇을 보여줬나

14.10.11 08:55최종업데이트14.10.11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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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 축구 사령탑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은 10일 천안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서 2-0 완승을 거뒀다. 일단 첫 경기에서 승리를 거뒀다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결과보다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슈틸리케 감독의 실험과 전술 그리고 경기의 내용이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슈틸리케호의 첫 선발 명단은 파격 그 자체였다. 간판 공격수 이동국과 손흥민은 물론이고 아시안게임에서 주목을 받은 김승대, 브라질월드컵에서 활약한 김영권과 김승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두 차례나 밟은 차두리 등 주전으로 예상됐던 선수들이 대거 벤치에 앉았다.

반면 조영철, 김민우, 홍철, 남태희, 김진현 등 그동안 대표팀에서 주로 교체 카드로 나서며 '비주류'에 머물렀던 선수들이 선발로 기용됐다. 기존의 축구대표팀과 비교하면 사실상 1.5군이었다.

특히 이들은 'A매치 신인'이나 다름없다. 최전방 공격수 임무를 부여받은 조영철은 8경기, 남태희 13경기, 김민우 7경기, 홍철 5경기가 A매치 경력의 전부다. 더구나 골키퍼 김진현은 3경기에 불과하다. 슈틸리케 감독이 엄청난 기대와 부담이 걸린 데뷔전에서 과감한 도박을 시도한 것이다.

슈틸리케호 데뷔전은 조연들의 '재발견' 

슈틸리케 감독의 도박은 결과와 내용 모두 성공했다. 비주류 선수들은 새로운 사령탑이 선사한 기회를 소중하고 절박하게 활용했다. 김민우와 남태희는 나란히 골을 터뜨렸고, 조영철은 공격수와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동시에 하며 상대 수비진을 몰고 다녔다.

골키퍼 김진현도 눈부셨다. 파라과이의 결정적인 슈팅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연거푸 막아내며 공격수보다 더 화려한 활약을 펼쳤다.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오늘 경기는 6-3으로 끝났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충분히 골로 연결될 수 있는 좋은 슈팅들을 김진현이 모조리 막아냈다는 칭찬이었다.

물론 이들의 활약 뒤에는 그동안 주인공으로 활약하다 이날만큼은 조연이 되어 헌신한 기성용과 이청용의 존재가 있었다. 주장으로 나선 기성용은 안정된 수비로 한국의 1차 저지선 역할을 하고, 역습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며 자칫 조금만 방심해도 흔들릴 수 있는 경기의 흐름을 끝까지 잘 지켜냈다. 한국은 기성용이 있었기에 마음 놓고 공격하고, 한결 쉽게 수비할 수 있었다.

이청용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한동안 대표팀에서 부진하던 이청용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측면 공격수로 나서자 물을 만난 고기처럼 그라운드를 휘저으며 공격의 나침반 역할을 했다. 직접 해결사로 나서는 대신에 다른 공격수들에게 끊임없이 양질의 패스를 제공하며 숱한 찬스를 만들어냈다. 거친 돌파나 몸 싸움을 싫어하고, 때로는 직접 해결사로 나서야 했던 이청용은 이날만큼은 무거웠던 부담을 벗고 축구를 즐겼다.

보여줄 것이 더 많은 슈틸리케호, 기대된다

첫 경기만을 놓고 슈틸리케 감독의 축구를 다 들여다볼 수는 없다. 하지만 큰 물줄기의 흐름은 알 수 있다. 선수들의 개인기가 취약한 기존의 한국 축구는 수비수나 중앙 미드필더가 직접 최전방 공격수를 향해 롱패스를 날려 한 방을 노리는, 비교적 단순한 공격으로 어렵게 버텨왔다.

이 전술은 수비수가 굳이 전방으로 올라갈 필요가 없어 상대의 역습에 잘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최전방 공격수가 고립되거나 골 결정력이 부진할 경우 아주 답답하고 무기력한 경기가 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수비가 탄탄하지만 결국 공 점유율을 빼앗겨 어려운 경기를 할 수밖에 없다.

반면 슈틸리케 감독의 대표팀은 절대 무리한 롱패스를 하지 않았다. 최대한 드리블이나 돌파를 통해 수비진을 무너뜨리거나, 이마저 여의치 않을 경우 차라리 후방으로 공을 돌려 다시 공격을 풀어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다소 소극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정교하고 확률 높은 공격으로 골을 뽑아내겠다는 뜻이다. 발재간이 좋은 이청용, 남태희, 김민우 등이 선발로 나선 이유다.

한국 공격진은 쉴 새 없이 공을 주고받으며 상대의 빈틈을 노렸고, 크로스도 머리보다는 발을 겨냥해 낮게 깔리는 것이 훨씬 더 많았다. 롱패스는 공간이 확보되거나 약속된 순간에만 제한적으로 시도했고, 그 결과 주로 롱패스를 담당하던 기성용은 경기 조율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후반전이 되자 이동국, 손흥민도 교체 투입해 기량을 점검했다. 전방에서 홀로 움직이며 직접 슈팅 찬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공격수가 나서자 전술의 폭이 넓어진 공격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비록 골은 터지지 않았지만 결정적인 슈팅은 전반보다 더 많이 나왔다.

물론 이제 첫 경기에 불과하다. 앞으로 실험해야 할 선수와 전술이 가득하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슈틸리케 감독이 그동안 선택받지 못 했던 선수들을 앞세워 색다른 축구를 만들어냈고, 승리까지 거뒀다는 점이다. 오는 14일 열리는 코스타리카와의 경기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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