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3월부터 성곽의 배부름 현상이 발생하면서 붕괴가 우려되던 중 9월 14일 오전 10시 30분경 공산성(사적 제12호) 공산정 앞 높이 3m 정도의 성곽 길이 10m 가량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김종술
평소 알고 지내는 공무원에게 사정을 했지만, 옴짝달싹 못하게 양팔을 벌려서 막았다. 그냥 머리부터 밀고 들어가 사고 현장으로 뛰어 올라갔다. 한 작업자가 푸른색 대형 천막으로 무너진 성곽을 덮고 있었다.
그는 "여기 위험하니까, 나가세요"라고 말하면서 나를 막았다. 철근 파이프를 세우던 또 다른 작업자는 "말 더럽게 안 듣네!"라면서 들고 있던 작업 도구를 땅에 던졌다. 4대강 사업으로 황망하게 무너진 공산성의 생생한 모습을 찍을 상황이 아니었다. 나도 오기가 발동했다.
'그래? 까짓 거, 또 비행기 띄우면 되지.'급하게 항공 촬영 전문 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장 돈은 없었지만 항공료는 내일 지불할 테니, 비행기를 띄워 항공촬영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시각, 계속 전화벨이 울렸다. 나의 취재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타 부서 공무원을 비롯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지인들까지 짧은 시간에 약 10통의 전화를 걸어왔다.
"안 그래도 관광객이 줄어들고 있는데, 기사가 나가면 아무도 공주를 찾지 않을 거유."협박 반, 사정 반이다. 그냥 전화기를 꺼버렸다. 잠시 뒤 <오마이뉴스>에 항공사진이 담긴 이런 제목의 톱기사를 올렸다. 비싼 항공료를 지불하고 얻은 특종이었다. (관련 기사 :
결국...공산성 성곽 10m '와르르')
4대강 사업으로 금강을 준설하면 공산성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고 2009년에 경고한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다음 날 현장을 찾았다. 환경단체, 문화재청장, 안희정 충남도지사까지 달려왔다.
유명인들을 따라온 수많은 언론인들로 공산성은 북새통을 이뤘다. 평소 현장에 거의 나타나지 않던 정치인들도 앞 다투어 몰려와 무너진 성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환경단체와 시민단체들도 공산성에서 "공주의 자존심이 무너져 내렸다"고 기자회견을 했다. 이들은 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특종의 우울한 그림자] "방 빼세요"

▲ 2010년 5월 14일 충남 공주시 금강둔치 앞 하중도 준설을 위해 각종 장비들이 들어간 모습으로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김종술
하지만 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비싼 항공료를 지불하려면 은행 대출을 받아야 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난 2009년부터 10여 차례나 항공기를 띄워 강을 기록했다. 내가 생각해도 특별한 호구지책이 없던 나는 매번 후회했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또 잊어 버리고 강변을 걸었다. 나라도 좀 더 노력하면 막힌 강이 열릴 것이라 기대했다. 그렇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아니, 몇 푼이나 된다고 월세를 못 내요. 방 빼세요!" 월세가 밀렸다고 집주인은 방을 빼라고 난리다. 미납된 각종 청구서는 책상에 쌓여 갔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걸려오는 빚 독촉 전화 때문에 저장된 번호가 아니면 받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어디 이뿐인가.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 발표가 나던 그날부터 일 주일에 2~3번씩 세종시에서 서천 하굿둑까지 왕복 200km 넘는 거리를 차량으로 이동하며 모니터링을 해왔다. 3년을 사용한다는 타이어도 강변의 정비되지 않은 험한 길을 다니면서 돌부리에 찢겨서 6개월이 안 돼 갈아야 했다. 차량 유류비와 경비로 월 200만 원 넘는 돈을 강에다 쏟았다.
강변을 걷다가 말벌에 쏘여 눈 언저리가 퉁퉁 부어 안경을 쓰고 며칠을 앓아 눕기도 했다. 한 번은 풀밭에 웅크리고 있던 뱀을 밟아 발뒤꿈치를 물렸다. 독이 퍼지지 않도록 허리띠로 발목을 묶고 혼자서 절뚝이며 병원으로 향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남은 상처가 몸 곳곳에 흉터로 남았다.
[후회] 어머니가 쥐어준 돈... 하지만

▲ 2012년 6월 27일 완공된 공주보 세굴발생으로 가물막이를 설치하고 공사를 하는 모습을 찍은 항공사진.
김종술
취재 현장에서는 그리도 당당했건만 생활 현장으로 돌아오면 참 한심스러웠다. 내 처지를 아는 어머니는 28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이름으로 된 논을 팔아 "허튼 데 쓰지 말라"며 돈을 쥐어주셨다. 눈물이 핑 돌았다. 빌려 쓴 돈을 갚고 기름 값과 취재비로 사용했다. 그것도 충분하지 못해 전셋집마저 월세로 돌렸다. 강에 미친 대가로 매번 후회하고 자책하면서도 자고 나면 잊어 버리는 바보가 돼 버렸다.
요즘도 매일 저녁 같은 고민에 빠진다. 금강을 포기하고 '노가다'라도 다녀야 하는 건 아닐까? 머리가 지끈거려 두통약을 끼고 산다. 강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서 방 한쪽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밤을 지새우곤 한다. 그런데 알다가도 모를 일은, 날이 밝아오면 밤새 고민을 까맣게 잊고 가방에 카메라를 챙기고 금강을 헤집고 다닌다는 거다. 가족들 말처럼 굿이라도 한 번 해야 하는 걸까?
요즘도 나는 매일 금강에 나간다. 간혹 금강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오기도 하는데, 그들을 안내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경기도 광명 YMCA 볍씨학교 초·중생들과 선생님이 일 주일 동안 금강을 다녀갔다. 2012년 물고기 떼죽음과 녹조, 올해의 큰빗이끼벌레에 이르기까지 현장에서 취재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린 학생들은 금강에 손을 담그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그래도 난] 금강의 부활을 믿는다

▲ 명승 제21호로 지정되어 있는 고마나루는 금강변에 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솔밭`연미산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내는 곳으로 역사 문화적`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명승지로 평가되고 있다. 2008년 운하반대생명평화도보순례단이 찾았던 당시에는 준설 전 모습.
박용훈
오늘 금강을 홀로 걸으면서 그 호기심 어린 눈동자들이 문득 생각났다. 일개 시민기자가 금강에서 건져 올린 각종 특종은 온갖 욕설과 협박 속에서 나왔다. 생활고에 힘겹지만 한 사람이라도 금강을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금강에 박힌 '쇠말뚝'이 제거되지 않는 한 강은 흐르지 못하고 계속 죽어간다. 강물 냄새를 맡으면서 코를 쥐어 잡았던 그 맑은 눈동자들이 물속에 들어가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예전의 금강은 가능할까?
오늘도 난, 금강을 걷는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처럼 꽃은 피었지만 나비가 날아들지 않는, 그곳 금강의 찬란한 부활을 꿈꾸며.
☞지난 연재기사 보기 : 구더기 가득한 물고기들이...금강에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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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지 말라? 비행기 띄워 특종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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