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선원 정말 미웠는데, 지금은...
대통령 만나면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리멤버 0416 ④-1] 세월호 생존학생 단독 인터뷰

등록 2014.10.17 08:53수정 2014.10.17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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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6개월째 '4월16일'에 멈춰있습니다.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유가족들은 이제 거리에서 추운 겨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세월호 참사 발생 6개월을 맞아, 유가족과 실종자가족, 생존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잊지 않기 위해서... [편집자말]
"(앞으로) 정말 좋아질 것 같아요."
"'얘네가 사고를 당한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정말 정말 잘 지내거든요."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까. 한 시간에 걸친 인터뷰 내내 '정말'이라는 단어를 여덟 번이나 썼다. 표정도 이전보다 밝고 씩씩했다. 자신들을 걱정하고 있을 많은 국민들에게 "걱정 한시름을 놓으시라"는 말도 했다. 불안, 트라우마, 원망, 혼란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앞으로 계속 좋아질 것"... 밝게 웃은 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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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침몰사고 단원고 생존학생 김현수(가명). ⓒ 이희훈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아니, 걱정이 됐다. 차가운 진도 앞바다에 250명의 친구들을 남겨두고 나와야 했던 안산 단원고 생존학생 75명. 마음의 생채기는 아물고 있을까. <오마이뉴스>는 세월호 참사 6개월을 하루 앞둔 15일 오후 사고 초기 생존학생 대표를 맡았던 김현수(18, 가명)군을 만났다. 사고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나는 동안, 생존학생의 공식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다.(이 인터뷰는 현수군 부모의 동의를 얻어 진행됐다 - 편집자주)

현수군은 사고 당시, 세월호의 '영웅'이었다. 4층 중앙 레크리에이션룸 부근에서 사고를 당한 현수군은 움직이지 말라는 선내 방송을 무시했다. 여학생 방마다 들어가 구명조끼를 전달하고 학생들의 헬기 탈출을 주도했다. (관련기사 : 4층의 영웅 남학생의 일갈 "선원들 1600년형도 부족하다")

현수군은 지난 7월, 생존 학생들의 1박 2일 도보행진 때 학생 대표로 나서서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편지를 낭독하기도 했다. 또 같은 달 세월호 선원과 기관사에 대한 증인 신문에 나와 사고 당시를 증언했다. 현수군의 재판장 증언에 대해 검사와 변호사들은 "굉장히 상황 판단이 뛰어나고 용감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생존학생들은 남녀 2개씩 4개 반으로 나눠 정규 수업을 받고 있다. 현수군과의 인터뷰는 6개월 전까지 현수군이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받던 2학년 6반 교실에서 진행됐다. 6반 학생 38명 중 13명이 살아 돌아왔다. 그중 23명이 숨졌으며 남현철·박영인군은 아직 시신조차 수습을 하지 못하고 있다. 6반 담임 남윤철 교사도 학생들을 구조하느라 미처 배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현수군은 심리 치료 덕분인지, 과거의 일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듯 보였다. 지난 7월, 법정 증언에 나온 현수군은 "선장과 선원들의 형량이 1600년도 부족하다"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날 만난 현수군은 "원망하는 마음은 남았지만 그냥 그렇다"며 "지금 미워한다고 해도 (이미) 6개월이 지난 일"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힘들었는데 지금은 예전처럼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학교에서도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고 친구들도 굉장히 밝아졌다"며 "사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앞으로 계속 좋아질 것"이라고 웃어 보였다.

"방 커튼에 친구들 명찰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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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침몰사고 단원고 생존학생 김현수(가명) 학생 교복에 박힌 단원고 로고 위에는 노란리본이 함께 달려 있다. ⓒ 이희훈


현수군 주변에 노란 리본이 여러 개 눈에 띄었다. 가슴에는 노란 리본 배지가 달려 있었고 스마트폰 뒷면에는 노란 리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또 검은색 가방에도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함께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하다. 그는 "친구들 보고 싶어서 떠올리면 슬픈거야 당연하다"면서도 "이전에는 죄의식도 있었는데 지금은 부정적인 면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과 남윤철 교사의 명찰을 방 커튼에 달아 놓았다고 했다. 그들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현수군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단식 농성을 하던 유가족들을 앞에 두고 피자와 치킨을 시켜 먹었던 일간베스트 회원들의 패륜적인 행동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께서 사람하고 동물하고 다른 점이 두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부끄러운 걸 알고 모르고의 차이, 그리고 남의 마음을 이해할 줄 아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그전에는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라면 과연 그 사람들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은 현수군과의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먼저 탈출한 선원·선장들 "정말 많이 미워했는데…"

- 지난 7월, 생존학생 1박2일 도보행진 때는 한참 더웠습니다. 그런데 벌써 바람이 차게 느껴지는 계절이 됐네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합니다.
"여름 방학 때는 학교에서 저희들의 치유를 위해서 기차 여행을 데려갔어요. 강원도 강릉 정동진으로 1박 2일 여행을 갔어요. 개학한 뒤로는 수업 듣고 여느때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교장 선생님을 비롯해 여러 선생님들이 잘 해주셔서 편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힘든 거 없이 전체적으로 편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저도 그렇지만 다른 친구들도 그래요."

- 도보행진 당시 현수군이 단원고 앞에서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 그 진실을 밝혀달라"고 편지를 낭독하기도 했습니다. 그후 3개월, 사고 후 6개월이 지났는데요. 그때의 요구는 여전히 제자리인 것 같습니다.
"뭐랄까요. 이제 진상규명과 같은 부분은 저희 학생들이 아니라 어른들이 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 지난 7월 세월호 법정 증언에서는 현수군이 세월호의 영웅이었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검사도 '상황 판단이 뛰어났다, 용감했다'고 했습니다. 친구들에게 구명조끼 입히고 헬기 탈출까지 이끌어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 었을 텐데,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요.
"저는 살고 싶어서 올라왔어요. 그 상황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분명히 저같이 했을 것 같아요. 누가 그 상황에 있었든 간에 다 그렇게 했을 것 같아요."

- 하지만 선장과 일부 선원들이 먼저 탈출했잖아요. 사고를 겪으면서 어른들에 대한 실망도 많이 했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요. 처음에는 많이 미웠는데 지금은 치료도 받고 좋아져서 그런지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어요. 사고에서 (대처 없이 탈출하는 등)그런 판단을 한 점, 책임감이 없었다는 점에 대해 정말 많이 미워했는데, 지금은 그런 기대를 안 해요. 원망하는 마음은 남았지만 그냥 그래요. 지금 미워한다고 해도 (이미) 6개월이 지난 일이잖아요."

"죄의식 있었지만 많이 줄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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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침몰사고 단원고 생존학생 김현수(가명). ⓒ 이희훈


- 함께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날텐데...
"친구들 생각이 안 날 수가 없죠. (친구들의) 빈자리가 어쩔 수 없겠지만 저는 정신적으로 치료가 많이 돼서 예전보다 좋아졌습니다. 보고 싶어서 친구들 떠올리면 슬픈거야 당연한 거잖아요. 제 감정이 무뎌졌다는 뜻이 아니라 이전에는 불편하고 죄의식도 있었는데, 그런 부정적인 면들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 친구들을 위한 현수군 만의 추모 방식 같은 게 있나요.
"제 방 창문 커튼에 친구들과 담임 남윤철 선생님의 명찰 20여 개를 꽂아 놨어요. 잘 때 커튼을 펼쳤다가 아침에 걷는데, 계속 명찰을 보게 되죠. 친구 이름을 기억하고 싶어서 주문을 했는데, 거기가 잘 보이더라고요. 커튼이 쳐 있어서 공부할 때마다 볼 수 있죠. 그리고 어떤 때는 한 번씩 친구들이 있는 안산하늘공원에도 갔다 와요."

- 지금 마음 상태는 어떤가. 외상 후 스트레스 치료는 계속 되고 있는 거죠?
"10월 말에 한 번 치료를 받긴 하는데 저는 거의 치료가 끝난 것 같아요. 회복되는 속도가 빠른 편인지,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 학업에는 지장이 없나요.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힘들었는데 지금은 예전처럼 공부하고 있습니다."

- 내년에는 3학년이 되네요. 혹시 학교 공부 외에 학원은 안 가나요?
"학원 안 가고 혼자 공부해요. 억지로 떠 주는 것을 먹는 것보다 떠 먹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을 해서 학원은 안 다닙니다."

- 장래 희망이 뭔지 궁금하네요. 혹시 사고 이후로 바뀌진 않았나요.
"사고 전에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의무를 다하지 않는데 권리를 챙기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서 그쪽 분야의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시 생각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직업을 특정한 것은 아닌데, 청소년이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졌어요."

- '생존자들이 4월 16일에 멈춰있다, 그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얘기를 하면서 걱정을 하는 분들이 많아요.
"사고 이전으로 돌아 갈 수는 없겠지만 사고 직후보다는 앞으로가 더 좋아질 것 같아요. 학교에서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다른 친구들 생활하는 것도  굉장히 밝아졌어요. 사고 이전으로 돌아갈 수야 없겠지만 앞으로 계속 좋아질 것 같아요."

- 사고 이후, 인터넷 상에서 유가족들에게 막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처가 됐을 것 같은데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을 향해서 '그만해라', '얼마나 더해줘야 되냐'는 식의 반응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안 보려고 했어요. 페이스북도 안 열어보고 인터넷 기사는 보지도 않았습니다."

- 앞으로 살아가는 데 두려운 게 있거나, 걱정되는 게 있다면 뭘까요?
"정말 저는 걱정되는 부분이 없어요. (앞으로) 정말 좋아질 것 같아요. 걸림돌 같은 게 없어서 이런저런 걱정도 없어요. 제가 단순한 사람이어서 그런지(웃음) 걱정하면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아요."

- 앞으로 어른이 되면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고 싶은지 궁금한데요.
"주어진 일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 부모님이 가르쳐주시기를,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남에게 폐 끼치지 말고 자기 책임을 다하라고 하셨어요. 이번 사고를 겪어서도 그렇고요.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사회도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 일부 대학에서 생존학생 배려 전형을 만들었습니다. 또 국회에서도 단원고 3학년과 유가족 중 학생에 대해서 특례 입학 법안을 추진한다고 하고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요. 저는 (특례입학 없이) 제 실력으로 가고 싶어요. 제가 상향 지원한 학교에 붙을 수도 있지만, 특례 입학을 하더라도 그 분류 안에서 또 경쟁을 해야 하잖아요. 특례 없이 제 실력으로 가고 싶어요. 자기 실력보다 높은 대학에 가면 가서도 적응 못할 수도 있잖아요. 제 실력대로 대학에 가고 싶습니다."

"사람하고 동물하고 다른데, 일베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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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침몰사고 단원고 생존학생 김현수(가명). ⓒ 이희훈


- 일간베스트 회원들이 유가족 농성장 앞에서 폭식 투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사고의 추모를 방해하는 분들도 있었죠. 그런 분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교장 선생님께서 사람하고 동물하고 다른 점이 두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부끄러운 걸 알고 모르고의 차이, 그리고 남의 마음을 이해할 줄 아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그전에는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라면 과연 그 사람들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 국회에서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유가족 의견은 배제 됐습니다. 어떻게 지켜봤나요?
"특별법의 목적에 진상규명도 포함돼 있지만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뜻이 담겨있잖아요. 학생 입장에서는 어찌됐든 양쪽이 잘 합의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마찰을 빚을 게 아니라 윈윈해서 합의점을 찾길 바랍니다."

- 지난 8월 말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는데, 성사가 안 됐습니다. 지금이라도 면담을 하게 된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요.
"다른 친구들은 모르겠는데, 저는 사고에 대해서 많이 무뎌졌거든요. 대통령님을 만나면 이 말만 하고 싶어요. '원인규명을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다, 또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관계 부서를 철저히 관리 해달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생존학생들을 걱정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여학생들은 잘 모르겠는데, 남학생들은 '얘네가 사고를 당한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정말 정말 잘 지내거든요. 선물도 보내주시고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예를 들면, 한 시민은 나무 한 그루를 베어서 80여 개의 필통을 만들어 주셨어요. 저희들을 걱정해주시는 것이야 정말 정말 감사한 일인데요. 저를 포함해 다른 친구들은 정말 잘 지내는 것 같아요. 학교에 와보시면 알 거예요. 걱정은 한시름 놓으셔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세월호 침몰사고 #생존학생 #안산 단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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