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이긴다, 그것이 역사다"

영화 <제보자>를 보고... 기억과 질문이 검열과 봉쇄 이길 수 있다

등록 2014.11.03 12:09수정 2014.11.0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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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개봉한 영화 <제보자>를 보았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과 관련한 거짓을 밝히는 그 험난한 과정을 다루는 영화였다. 상대적으로 민주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던 정부에서도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여러 유형의 압력이 동원되었다는 것, 그래서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힘든 노릇인가 하는 점을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절감하게 되었다.

황우석 박사의 연구진에서 이탈해서 줄기세포는 없다는 진실을 밝히려했던 양심 있는 연구원은 동종 업계에서 냉대를 받았고, 그것은 곧바로 생계의 벼랑으로 내몰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역시 진실을 밝히기 위한 방송국 PD들의 사투는 국익이라는 맹신에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는 데 기여했으나 해고되거나 혹은 담당 부서가 해체되면서 지속적인 탄압을 감내해야만 했다.

아주 최근에는 그들을 방송 제작과는 무관한 부서로 발령을 내는 보복인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감춰진 진실을 밝히는 일은 자칫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만 가능한 일이기에 그만큼 고통스럽고, 따라서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베일 속에 감춰진 진실들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그 단적인 사례가 세월호 침몰과 관련된 진실이 과연 무엇이냐 하는 것이겠다.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가 했던 질문들 곧,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왜 일어났는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는 세월호와 관련한 진실을 묻는 데도 유효한 질문이라고 본다.

여야의 관련 특별법 합의가 진실규명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나는 회의적이다. 그것은 어쨌거나 300여 명이 한꺼번에 죽어간 사건과 관련한 진실의 전모가 공개되기를 거부당하고 있는 여러 정황에서 기인한다. 관련 특별법 협상 과정도 그러하고, 시정 연설을 위해 국회에 나온 대통령이 울부짖는 유가족들을 외면하는 데서 그러한 심증은 거의 확신에 이르게 된다. 대체 감추고자 하는 진실이란 무엇일까?
 
영화 <제보자>에서 인상 깊은 대화-결국 이 영화의 주제의식이기도 할 것인데-는 가령 이런 것이다. 그것은 진실이 우선인가, 국익이 우선인가? 하는 질문이다. 답은 그 질문을 주고  받는 PD들의 입을 통해 명확하게 제시된다. '진실이 바로 국익'이라는 것이다.
 
사실 천안함과 관련해서도, 유병언의 죽음과 관련해서도 세간의 의혹은 명쾌하게 밝혀진 게 없다. 정부는 그 모든 합리적 의심과 비판에 대해서조차 국익이라는 방패를 내세워 여전히 침묵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침묵의 강요와 탄압은 일시적으로는 성공할 지 몰라도 길게 보면 가장 어리석은 통치방식이었다는 교훈은 무수하게 발견된다.

현대 역사상 가장 억압적인 체제라고 비난받는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도 문제는, 과연 그것만이 옳은 방법인가고 묻는 질문들에 대해서 반체제적이라고 규정하고 감시와 탄압과 처벌로 대응한 점에 있었다. 다 알다시피 스탈린 헌법의 기본 성격은 '계급 소멸과 인간의 해방'으로 선전되었다.

나는 지금 그것의 실현 여부를 문제 삼는 게 아니다. 내부의 위기(레닌 사망 이후의 권력 쟁탈전)와 동시적으로 진행된 외부의 위기(서구권 국가의 소련에 대한 봉쇄 등)를 극복하기 위해 스탈린은 정부와 정부의 지도에 반대하는 행위를 소비에트 국가와 인민에 대한 적으로 규정하고, 그 적들(사실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인사들-질문자들을)에 대한 탄압과 처형을 전 인민의 이름으로 정당화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상적 감시와 검열이 인민들에 대한 통제의 수단이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 국가적 총력 동원 체제는 필연적으로 정권의 독재로 귀결되고 만다. 그 점 역시 멀리 다른 나라의 사례를 들먹일 것도 없이 박정희 유신정권의 기억만으로도 충분하다. 유신이 혹은 독재가 왜 나쁘냐고 묻는 우매한 종류의 인간들이 더러 없는 건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나만이 옳다는 저 중세시대 교황의 무류성 (papal infallibility)과도 닮아서 결국 나와 생각이 다름을 용인하지 않는 독선과 독단으로 치닫게 되고 종내 자기 파괴적 결과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무엇보다 인간의 가치가, 인간의 존엄이 설 자리를 잃고 마침내 무수한 생명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생명보다 우선할 수 있는 가치란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인류의 보편적 이념으로 자리한 지 오래다.
 
오늘, 국가와 결혼했다는 대통령의 말이 저 스탈린 시대의 공포정치를 연상시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대체 세월호 침몰과 관련하여 감추어야하는 진실이 무엇이기에 국민들의 일상적 소통 수단인 이메일과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를, 그리고 페이스 북과 같은 SNS를 감청하고 압수 수색했다는(그리고 앞으로도 그리 한다니까) 것일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까닭을 이해할 수가 없다.
 
역사상 존재했던 독재체제의 공통점은 그 사회 구성원들(특히 질문하는 자들)에 대한 집요한 감시와 탄압과 처벌로 이어지는 악순환 끝에 결국은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는 점에 있다. 왜냐하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옛 이야기가 말해 주듯이, 감추고자 하는 비밀일수록 종내 드러나고 마는 것이 그 비밀이라는 것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대저 사람들의 생각과 말을 그 무슨 재간으로 검열하고 처벌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우리 사회는 분단체제를 악용해서 그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곧잘 빨갱이라는 딱지붙이기를 통해 너무나도 손쉽게(하물며 증거를 조작해가면서) 진실을 은폐하려는 시도가 많았다. 그것은 안타깝게도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그러나 진실을 감추고자 할수록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은 깊어지고 그 사회적 비용은 수치로 환원되지 않는, 치유하기 힘든 상흔으로 남게 된다. 세월호의 진실에 관해 질문하고, 그 참극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 것은, 질문에 대한 봉쇄가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 말해주고 있다. 진실의 은폐가 국익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익을 훼손한다는 사실을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깨닫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여전히 난망하다.
 
그래서 우리는 거듭해서 기억하려 하고, 또 질문하려 한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 바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왜 일어났는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 지금 우리 사회는 이 질문을 계속하려는 이들과 이 질문을 막으려는 자들과의 싸움이 진행 중이라고 본다.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한다는 저 오래된 레토릭을 다시 인용할 것 없이, 종내에는 진실이 이기게 되어있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값비싼 교훈이다.
#세월호 #검열 #질문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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