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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누구를 위해 김일성이 되려 했나

[리뷰] 영화 <나의 독재자>

14.11.06 20:11최종업데이트14.11.0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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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영화의 주요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의 독재자> 포스터 ⓒ 반짝반짝영화사


영화 <나의 독재자> 속 아버지 성근(설경구)은 이기적인 사람이다. 아들은 아버지가 위대한 연기자가 되길 바란 적이 없다. 아들(박해일)은 아버지가 그저 곁에 있어주길 바랐다. 비 오는 날 마룻바닥에 왕관을 그리며 기다릴 때에도, 정신 놓은 아버지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 "이 인간 또 사라졌어"를 외칠 때에도, 월북하려던 아버지를 원망하는 회상 장면에서도, 아들은 그저 곁에 없던 아버지를 원망했다. 아버지는 누구를 위해 연기했던 것일까? 각하? "위대한 국가"? 아들을 위해서? 정말 아들을 위해서 그랬던 걸까?

필자는 아버지와 유년시절 낮에 대화한 기억이 거의 없다. 아버지는 남들 퇴근하는 시간에 출근하고, 출근하는 시간에 퇴근하는 일을 하셨다. 일이 고되셨는지 늘 술에 취해 들어오거나, 다른 가족들이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에 밥상에서 술을 드시곤 했다. 특히 싫었던 건 아버지 본인이 고생하는 건 다 가족들을 위해서고 자신의 삶은 포기했다고 푸념하시는 것이었다.

담백한 연출, 압권은 연기

<나의 독재자>는 제목 그대로 독재자에 관한 영화다. 독재자는 국민에게 의사를 묻지 않는다. 아버지 성근도 마찬가지다. 아들에게 멋진 아버지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의 진정성만큼은 공감이 된다. 아들 태식(박해일)이 보는 앞에서 연극단장에게 혼났던 경험은 평생에 걸친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기적이었다. 아들이 원한 건 위대한 리어왕을 연기하는 주인공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냥 곁에 있어 주는 아버지였다. 위대한 배역을 맡은 배우가 되고 싶던 건 아버지 본인이었다(성근은 중앙정보부에서 고문 끝에 가족을 내팽개치고 연기에만 몰두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기도 한다).

영화적인 전개는 최대한 신파적인 울림을 자제한 흔적이 보인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이야기의 전개 순서다. 보통의 한국영화였다면, 극 중반부에 있던 정신 놓은 아버지와 아들의 소동을 처음에 배치했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실은 이래서 아버지는 미치신 거랍니다'라고 플래시백 장면이 들어가고 관객의 눈물을 자아냈을 것이다. 이러한 유혹을 뿌리치고 영화는 아들의 내레이션과 함께 시간 순서로 흘러간다.(아들이 아버지의 월북 시도를 회상하는 장면은 예외).

몰입도가 가장 높은 부분은 대통령과의 실제 정상회담 리허설을 하는 장면이다. 설경구는 '대통령 앞에서 식은땀 흘리면서도 대담하게 김일성을 연기하는 연기자'를 연기한다. 정말 연기를 잘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영화속 성근이라는 배우가 긴장한 채 연기를 한다는 느낌을 주는 연기였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러는데"

다시 필자의 유년시절을 돌이켜 보면, 가장 추억도 많고 미소 짓게 되는 시절은 반지하 쪽방에서 온 가족이 살던 6개월이다. 신도시로 이주하기 전 공백이 생겨 살게 된 방 한 칸짜리 집이었다. 아버지의 직장도 가까워서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바퀴벌레도 많고 화장실도 더러웠다. 그래도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필자는 문 바로 앞에 놀이터도 있고, 가끔씩 아버지 트럭을 타고 드라이브도 하고, 온 가족이 (방이 하나라 어쩔 수 없이) 모여서 수다도 떨던 그 집이 좋았다.

야근하고 주말에도 일하는 이 시대 부모들은 자식과 가정을 위해 내가 이렇게 고생한다고 호소한다. <나의 독재자> 속 성근도 칭얼대는 아들의 뺨을 때리며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러는데!"를 외친다. 물론 우리에겐 현실적인 장벽들이 많다. 대부분 우리는 야근이 많다고 당장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고, <아빠! 어디가?>의 아빠들처럼 매주 여행을 다닐 여력도 안 된다. '슈퍼맨' 아빠처럼 하루종일 아이를 돌보기엔 너무 피곤하고 내 행동을 강제하는 카메라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자신의 모든 고생들이 '자식을 위해서'라고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러한 태도는 결코 자식을 위한 것은 아니다. 될 수 있는 한 직장에서는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고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을 늘리려 노력했으면 좋겠다. 자식들은 부모에게 돈을 많이 벌어오라고 한 적이 없다. 영화 속 아들은 연기를 못하는 아버지에게 잠깐 실망은 했지만, 아버지를 싫어한 게 아니다.

<나의 독재자>는 평생을 (실제와 다른) 서로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고생하고 싸우는 이 시대 부모 자식들이 함께 보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러분의 돈과 시간을 내어 보기에 아깝지 않은 재밌는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단순히 "연기 잘해", "아버지 사랑해요"를 느끼기 보다 '우리 가족은 저렇게 살지 말자'를 다짐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는 영화이길 바란다.

영화에서 가족이 가장 행복해 보이는 장면은 다같이 통닭을 먹는 장면이었다. 아들 태식은 아버지가 "국가와 민족을 위한 위대한 연극의 주인공"이 아니라 자기 인생의 행복한 주인공이 되길 바랐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조대근 시민기자의 오마이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나의 독재자 영화 아버지 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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