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에 '친절종'이 생길까?

[서평] <승만경을 읽는 즐거움>

등록 2014.11.10 18:17수정 2014.11.10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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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경내에 놓여있는 커다란 수레바퀴 ⓒ 임윤수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경전은 그 수가 무려 팔만사천이나 된다고 합니다. 팔만사천이라는 숫자는 경전의 정확한 수라기 보다는 경전이 그만큼 많다는 말하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많은 경전들 대부분은 석가모니부처님을 위시한 출가수행자, 수행이 평생의 업이었던 출가수행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경전들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전은 농사꾼이 열심히 농사지어 거둬들이는 가을걷이 같은 수확처럼 수행이 본분인 출가수행자들이 수행의 결과로 낸 당연한 결과 일수도 있습니다. 


그런 불경 중에 출가수행자가 아닌 재가수행자 남긴 경도 극소수이긴 하지만 한둘 있습니다. <승만경>과 <유마경>이 그것입니다. <승만경>은 대승불교 경전으로, 정확한 명칭은 '승만사자후일승대방광방편경(勝鬘獅子吼一乘大方廣方便經)'입니다.

승만 부인은 꼬살라 왕국의 공주이자 유타국의 우칭왕과 결혼한 왕비이기도 합니다. <승만경>은 이러한 승만 부인, 재가불자인 승만 부인이 부처님의 허락을 받아 대승불교의 이상을 역설한 형식으로 되어있으며, 일승(一乘)을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아마추어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는 건 전업 작가가 받는 노벨문학상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가치 있는 결과라 생각됩니다. <승만경>은 프로 수행자들이 이룬 대다수의 경전들과는 달리 아마추어 수행자라고 할 수 있는 승만 부인이 팔만사천 큰 법 보화에 포함 될 만큼 또 다른 가치와 커다란 가르침을 전하고 있어 더더욱 빛나는 경전이라 생각됩니다.

일진 스님이 쉽고 재미있게 풀어 들려주는 <승만경을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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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만경을 읽는 즐거움> 표지 ⓒ 민족사

<승만경을 읽는 즐거움>(지은이 일진, 펴낸곳 민족사)은 우리나라 최대 비구니 사찰 중 하나인 청도 운문사 주지로 주석 중인 일진 스님이 <승만경>을 풀어서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똑 같은 이야기꺼리를 가지고도 누가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읽거나 듣는 이들에게 전달되는 느낌의 강도는 달라집니다. 배움의 강도도 달라지고 재미의 정도도 달라집니다.

이런 예가 이야기에만 적용되는 건 아닙니다. 같은 재료를 갖고 요리를 해도 누군가가 하면 억지로 먹어야 할 만큼 맛없는 음식이 되지만, 또 다른 누군가가하면 없어서 못 먹을 만큼 맛난 음식이 되기도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경전을 소재로 한 설명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라는 식으로 경전에 나오는 글자만을 충실하게 풀어서 설명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사람에겐 배우거나 얻을 게 별로 없으니 읽을 재미도 없을 거라 생각됩니다. 이런 책은 지루하게 마련입니다.

우리나라 불교 종파에는 왜 친절종이 없지?

연애 담이나 지나간 비밀이야기치고 재미없는 이야긴 별로 없을 겁니다. 어떤 연애담은 순백색으로 짜릿하고, 어떤 비밀이야기는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애잔한 아픔일 수도 있어서 그런지 그런 이야기를 곁들인 또 다른 가르침에 재미까지 더해줍니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불교 종파가 있습니다. 하지만 친절종이 있다는 소리는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위 이야기의 노스님처럼 평소 친절하게 배려하면 큰 공덕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승만경을 읽는 즐거움> 104쪽-

맞습니다. 스님들 중에도 까칠한 성정을 보이시는 분도 계시고, 군림하려는 분도 계십니다. 법적 제재를 받아 영어신세가 될 만큼 잘못 사시는 분도 계시고, '16국사'라는 말로 조롱받을 만큼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스님들도 없지 않습니다.

일진 스님이 <승만경>을 풀어 설명하는 게 마치 연애담을 들려주고 비밀이야기를 속삭여 들려주는 듯합니다. 당신께서 <승만경>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은 물론 <승만경>을 강설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 같은 실수들을 자기고백이라도 하듯이 소곤소곤 들려줍니다.

어린애에게 받은 화두, '저게 뭐야?'라는 화두는 이미 내가 경험한 순간일 수도 있고, 내가 살아가는 동안 가져도 될 좋은 화두라는 데 충분히 공감할 만큼 일상에서 흔한 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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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만경을 읽는 즐거움>의 저자 일진 스님이 주지로 계시는 운문사 전경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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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 스님께서는 운문사 은행나무에서 배운 바도 말씀하시지만 운문사를 찾는 대개의 사람들이 느낌표를 찍는 건 바로 이 소나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 임윤수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왜 괴로워하는가? 왜 불안해하는가? 왜 두려워하는가? 집착 때문입니다. 삶에 집착하기 때문에 죽음이 괴롭고 불안하고 두려운 것이고, 자식 남편에 집착하기 때문에 시시콜콜한 문제까지 마음에 걸리고 그래서 괴로운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주 사소한 것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고 집착을 는 연습을 한다면 부처님 마음에 성큼 더 다가서게 됩니다. - <승만경을 읽는 즐거움>178쪽 -

이 책을 읽다보면 하나 더하기 하나는 단지 둘이 되는 게 아니라 셋도 되고 넷도 될 수 있다는 걸 실감나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에 경만 부인의 생각이나 깨우침만 더해진 내용이라면 여느 경전들처럼 낯설고 딱딱한 느낌이 전부 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일진 스님이, 당신이 <승만경>을 공부하면서 얻은 달콤한 깨달음,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달으면서 음미한 생크림 맛 같은 에피소드까지를 섞박지처럼 넣고 버무려, 가르침의 강도는 더 강해지고 읽는 재미는 연애담이나 비밀이야기를 듣는 만큼이나 부드럽고 재밌습니다.  

참선은 생각 없애기 위해 하는 것

언제 기회가 되면 참선하시는 스님들께 여쭈어 보십시오. 무엇을 목표로 그렇게 묵묵히 앉아서 수행 정진하고 있습니까?
한마디로 생각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생각을 사그라지게 하고 없애는 훈련이 침묵이고 좌선이고 명상입니다. 생각이 없어졌을 때 우리는 매우 자유로운 경지에 들어갑니다. 그것을 부처님 여래라고 합니다. 참선參禪하려고 온 분들에게 생각을 없애려고 앉았는지 생각을 일으키려고 앉았는지 물어 보십시오. -<승만경을 읽는 즐거움> 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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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고 또 내리는 눈을 치우고 또 치우고 있는 운문사 스님들 ⓒ 임윤수


일진 스님이 들려주시는 <승만경을 읽는 즐거움>을 통해 승만 부인을 만나게 되고, 승만 부인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다 보면 감춰진 보물처럼 내 안에 들어있는 여래장이 꿈틀 대는 게 느껴집니다.

여래장이란 번뇌 중에 있어도 번뇌에 더러워짐이 없는 본성입니다. 본래부터 절대 청정하여 영원히 변함이 없는 깨달음의 본성, 곧 일체 중생이 타고난 불성(佛性), 곧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앗이 마음속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 여래장입니다.

이 책을 읽으므로 이러한 여래장이 꿈틀대는 걸 느낀다는 건 불성을 싹틔우는 물주기가 되고, 불성이 움트게 하는 거름주기, 불성을 무성하게 키워 낼 수 있는 계기의  마음 농사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덧붙이는 글 <승만경을 읽는 즐거움>(지은이 일진 / 펴낸곳 민족사 / 2014년 11월 10일 / 값 1만 5000원)

승만경을 읽는 즐거움 - 일진 스님의 행복한 승만경 이야기

일진 스님 지음,
민족사, 2014


#승만경을 읽는 즐거움 #일진 #민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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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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