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험생들은 종료 10분 전을 알리는 방송이 나와도, 시험지를 막 받은 때처럼 모두가 진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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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은 후 치르게 되는 3교시 영어 시험은 어쩌면 집중력과의 싸움이다. 포만감에 순간 나른해지기 십상인 탓이다. 3교시는 '하품 한 번에 오답 하나'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더욱이 본령이 울리지 않고, 곧장 20분간의 듣기평가가 시작되니 감독관과 수험생 모두 바짝 긴장해야 한다. 적어도 감독관에게는 미동도 허락지 않는 고통의 시간이기도 하다.
웬걸, 영어가 우리말처럼 익숙하게 들린다. 영어 공부를 접은 지 십 년이 넘었는데도, 문제지를 보지 않고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다. 수험생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답안지에 마킹하는 펜 놀림조차 가볍고 경쾌하다. 이러다 그들 입에서 무심결에 흥얼거리는 소리가 나오면 어쩌나 하는 괜한 걱정까지 했다. 1교시 국어 시험 때의 침울했던 분위기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엎드려 자는 수험생도 거의 없다. 나이 지긋해 보이는 늦깎이 수험생 한 둘만 빼면, 모두가 '영어 삼매경'에 빠져있다. 그런데도 불현듯 걱정이 앞선다. 틀림없이 변별력을 잃었다며, 입시 지도가 어려워졌다며, 눈치작전이 극심해질 거라며, 수능에 십자포화를 퍼부을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변별력은 수능의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이며, 거칠게 말해서,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늘 그래왔듯, 수능은 쉬워도 안 되고, 어려워도 안 되는 시험이다. 출제된 문제가 고3 교과서의 수준에 부합하는지는 아예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일렬로 줄을 세웠을 때, 동점자 수 없이 한 가닥 매끈한 실처럼 '보기 좋게' 정렬될 때라야 비로소 수능 출제자들이 욕먹지 않게 된다. 수능은, 고등학교 3년간의 학업성취도를 평가하는 시험도 아니고, 이름 따온 대로 대학에서 공부할 능력이 있는가 여부를 파악하는 시험도 아니다. 유일한 목적은 '순위를 매기는 것'이다.
국영수의 '부록'처럼 여겨지는 4교시 탐구영역4교시 탐구영역 시험은 국영수의 '부록'처럼 여겨진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네 과목이나 치러야 해서 네 영역 중 시간이 가장 길었는데, 지금은 달랑 두 과목만 치르니 한 시간이면 끝난다. 수능에서의 비중도, 아이들의 집중도도 짧아진 시험시간만큼이나 시나브로 낮아졌다. 3교시만 끝나면 대개 긴장이 풀린 듯, 기지개를 켜거나 손가락으로 연신 볼펜을 돌리는 등 앞 시간엔 하지 않던 '여유로운' 동작을 보이곤 한다.
100분짜리 수학시험도 풀었는데 고작 30분짜리 탐구과목 시험은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일찌감치 끝내고 엎드려 자는 아이들이 속속 눈에 띈다. 한국사 교사로서, 그들이 주로 선택한 과목이 무엇인지 궁금해 돌아보았다. 안타깝게도 28명 중 한국사를 선택한 경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윤리와 사상, 생활과 윤리가 태반이고, 이따금 한국지리와 동아시아사가 보였다. 선택 과목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은 매우 '윤리적'인 나라다.
수능에 학교 교육과정이 철저히 종속돼 있다 보니 생기는, 일종의 '교과목 편식'이다. 공부하기 비교적 수월하고, 점수 따기도 무난한 과목으로의 편중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곧, 수능 필수과목이 되는 한국사를 아이들이 얼마나 부담스러워하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내년에 수능에 응시하는 아이들이 스스로 재수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윽고 종료령이 울렸고, 올 수능은 끝났다. 대개는 감독관이 있어도 함성을 지르며 홀가분함을 드러내는데, 이번엔 전혀 달랐다. 수거해 간 스마트폰을 돌려받을 때까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그대로 앉아있었다. 모르긴 해도, 1교시 국어시험의 여파인 것 같았다. 되레 들뜬 곳은 교문 주변이다. 수험생들을 기다리는 부모와 그들이 타고 온 차들로 이미 발 디딜 틈조차 없다.
답안지 이상 유무가 완전히 확인될 때까지, 수험생도 감독관도 30분여를 교실에서 대기해야 한다. 정말 데면데면한 시간이다. 시험이 끝났는데도, 시작할 때보다 더 움츠리고 있는 그들에게 격려가 필요해보였다. 그러나 쉽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격려한답시고 꺼낸 말이 자칫 그들에게 상처를 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저 눈으로 말했다. '여러분 모두의 건투를 빌어요.'
다음 날 아침, 출근하기 무섭게 한 아이가 찾아왔다. 그도 이번에 수능을 치렀다. 가채점 결과 그 어려웠다는 국어 시험을 다 맞혔다며 들떠 있었다. 평소 모의고사 성적을 훨씬 뛰어넘는, 말 그대로, '대박'인 셈이다. 그러면서 수시모집에 합격할 것을 되레 아쉬워했다. 물론, '수능 대박'이면 '정시 올인'인 게, 학교든, 학원이든 입시지도의 ABC다.
여느 수험생들처럼 수능이 삶의 전부라고 여기는 그는 이번 수능 결과를 통해 인생은 역시 '한 방'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셈이 됐다. 그것도 아주 기분 좋게. 수십 만 수험생들과 학부모에게, 또 그들을 가르친 학교와 교사에게, 어쩌면 이게 곧 '수능'이고, '교육'이다. 학교생활을 아무리 잘 했어도, 공부를 아무리 충실히 했어도 소용없다. 오로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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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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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국어 만점 맞았단 제자, 근데 왜 씁쓸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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