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4.11.30 17:53수정 2014.11.3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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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민. 어쩌면 우리에게 탈북자라는 단어로 더 익숙한 이름의 사람들.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북한 국민으로 남한에 들어온 이후, 그들은 법적으로 대한민국 국민과 같은 권리를 보장받는다(*새터민들은 남한에 입국한 다음 국정원으로 부터 조사를 받은 뒤, '하나원'같은 정착지원시설에서 일정기간 보호를 받게되며 동일 기간, 남한 생활에 대비한 교육도 받게 된다. 이후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게 된다).
그러나 어쩐지 그들은 여전히 우리와 별개의 존재로 '구분'된다. 같은 국민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고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와 그들 사이에는 이름 모를 경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 어울리지 못하는 새터민
결국, 해결되지 않는 새터민에 대한 차별 환경을 근거로 그들을 위한 차별방지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조금씩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07년 장애인들의 차별을 방지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장애인차별방지법'이 제정되어 존재하듯, 법적으로 '새터민차별방지법'을 제정하여 이들의 정착생활에 도움을 주자는 차원이다. 법이 제정된다는 것은 '마땅히' 해야할 것을 국민이 하지 않을 때 국가가 최소한으로 정해놓는 '마지노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국 이러한 논의는 다시 한번 새터민에 대한 한국인의 부정적인 시선이 해소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 나에게 새터민이란?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새터민이란 존재는 없었다. 한번도 만나보지 않았으며 당연히 그들과 이야기 나눈 적도 없다. 내가 그들을 바라보았던 것은 단순한 TV화면, 라디오 방송에서가 전부다(그 결과 지금부터 하는 내 말은 다분히 탁상공론일 수 있으며 허울 좋은 유토피아적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새터민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자면, 그들은 한국에 왔는데도(공간의 이동) '우리 북한에서는~'이라는 말과 함께 한국의 문화를 배우려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정신적 이동의 부재). 뿐만 아니라 이 작고 작은 땅에서 우리들은 지역을 기준으로, 종교, 성별, 수입을 기준으로 네 편, 내 편 가르기를 하는데 그들이 과연 이 사회에서 어울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남한에 와서도 여전히 '북한 문화'를 가지는 사람들과 '다름' 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의 만남. 서로 맞지 않을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며 한줄기 혈통이란 단어 역시 무색해질 만큼 이미 60년이나 지났는데 우리가 새터민을 챙겨주고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굳이?
서로 맞지 않는 만남에는 당연히 물질적, 시간적, 정신적 희생은 불가피하다. 같이 이야기 나누는 시간, 이해하는 시간, 갈등을 해결하는 시간, 같이 살기 위해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시간 등등. 이를 효율이란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당연히 만나지 않음이 옳은 것이고 이 둘이 한자리에 있는 것을 피함이 해답이다. 그러나 이 세계를 바라보고, 움직이는 관점에 경제적인 시선만으론 불충분하다. 그것이 사람의 이야기라면 더더욱이나.
# 언니와 나, 남한사람과 새터민
나에게는 두살터울 언니가 있는데 그 언니란 사람은 나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혀 다르다. 성격도, 취향도, 말투도 심지어 생김새도. 중고등학교 시절, 언니는 집에서 다소 거리가 있는 학교에 다녔기에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산 것만 6년에다 대학 진학도 경기권으로 간 언니는 하숙을 했기에 도합 8년 정도를 데면데면 지내 왔다.
물론 다.컸.다.고 할 만큼 나이를 먹은 우리기에(26,24) 지난 날의 과거만큼 서로 너죽네 나죽네 살며 싸우진 않지만 여전히 크고 작은 트러블이 있다. 심지어 오늘 날에도 서로의 생활패턴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며, 고백하건대 여전히 형제만 아니면 인연 끊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의 관계를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결국, 서로 남남처럼 신경쓰고 사는 편이 가장 옳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신적 스트레스와 심적 고생을 견디며 함께 살아가는 이유는 1) 함께 살지 않으면 누군가 하나는 집을 나가야 하는데 그 때 나간 자가 맞딱드려야 할 어려움, 고생이 눈에 선하기에 2)밖에 나가서 살면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에 3)그건 또 불쌍하다고 느껴지기에라고 압축할 수 있다.
아주 완벽한 비유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바로 언니와 나의 관계가 한국인과 새터민과 같은 관계가 아닐까 싶다. 있으면 온갖 신경을 건드리고, 내 일을 방해하는 것 같다고 느껴지지만 또 없으면 안 될 것만 같은 희한한 존재의 사람들 말이다.
# 무엇이 비정상적인가
저 먼 아프리카 고아들도 돕겠다고 매달 일정의 돈을 정기적으로 후원하면서, 가장 빛난다고 일컫는 인생의 시간을 '봉사활동'이란 목적하에 개도국으로 떠나면서, 정작 '비정상이 정상인 나라'에서 도망친 사람들을, 적응하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해내는 것은 그거야말로 정말 비정상적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청소 습관부터 말하는 습관까지 이미 그렇게 해왔던 것을 바꾸려고 한다면 '어마무시'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 사소한 일상의 습관도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을, 태어날 때부터 주입받아온 사상과 생활 태도는 하물며 무엇하랴. 1~2년의 하나원 생활은 결코 충분한 것이 아니다.
결국은 시간과 노력만이 답이다. 바뀌는 것이 어렵기에 '너는 그 나라에서 그대로 있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우면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은 '사람'이라는 시선으로 조금만 더 너그러워지자. 조금 느리더라도 '같이 걷자'라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하라고 존재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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