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엄마에게 연락했다고, 아빠가 핸드폰을..."

한희야,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도서실로 와

등록 2014.12.10 15:25수정 2014.12.1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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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다. 도서실 창문 너머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한희(가명)는 떨어지는 빗방울의 개수를 세는지 창밖을 응시한다. 자세히 보니 응시가 아니라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빗방울이 그의 까만 눈동자를 적시고 있다.

한희는 도서관에 매일 오는 중3 여학생이다. 중3다운 발랄함, 수다스러움 등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늘 조용히 미소 짓는 친구다. 한희는 도서관에 매일 와서 반갑게 인사했다.

"샘, 안녕하세요?"
"응. 한희 왔어?"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나와 최근에 본 책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였다.

"한희야, 이 책 읽어봤어? 플라스틱으로 만든 배를 타고 세계 여행을 했대. 이 책에는 왜 이런 일을 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들이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재미있더라. 신선했어. 플라스틱 배를 타고 다니면서 낚시도 하고, 밥도 먹고..."
"와... 선생님, 저 읽어볼래요."

한희는 그렇게 매일 만나는 친구가 되었다.

한희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그런데 오늘은 인사도 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한희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나는 조심스레 다가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장난을 건다.

"왁~악~~~~."
"......"


고전적인 장난에 반응을 하지 않는 한희의 태도에 머쓱해졌다. 장난을 거두고 진지하게 이야기해본다.

"한희야, 무슨 일 있어? 얼굴에 '걱정'이라고 쓰여 있다."
"아니오. 아무 일도 없어요."

한희는 얼굴에 근심이라고 써놓고 아무 일도 없다고 한다.

"아무 일도 없긴, 말하기 싫구나?"
"......"
"그래. 세던 빗방울 개수마저 세라. 그러다가 말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 걱정을 니 안에 가두면 큰일 난다."
"네."

그 후, 한희는 한참을 창밖을 보더니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나에게 말을 건다.

"선생님. 사실 저 고민, 아니 걱정, 아니 뭐 그런 거 있어요."
"그래. 말할 수 있어?"
"네. 사실 저 이제 핸드폰 없어요. 어제 박살났어요."

핸드폰 고민이라고 말하는 순간 조금 안도했다. 가벼운 고민이라고 생각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듣고, 대꾸한다.

"그래? 핸드폰 없어진 거야? 왜?"

"아빠가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면서 핸드폰을..."

 "네. 사실 저 이제 핸드폰 없어요. 어제 박살났어요."

"네. 사실 저 이제 핸드폰 없어요. 어제 박살났어요." ⓒ freeimages


한희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뗀다.

"뭐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사실 지금 살고 있는 엄마는 친엄마가 아니에요. 제가 다섯 살에 같이 살게 된 엄마예요. 그 후로 아빠와 엄마 사이에 태어난 제 동생도 있고요."
"음......"
"그런데 몇 달 전, 제 친엄마 연락처를 알게 됐어요. 연락처를 알고, 가끔 연락을 하게 되었어요. 정이 있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연락을 자꾸 하게 되더라고요. 몇 번 만나 밥도 같이 먹었고요. 그런데 어제 아빠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거예요."

한희는 그렇게 말을 하고 또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점심시간도 끝나가고, 조급한 마음에 한희를 재촉했다.

"그래서?"
"그래서요. 아빠가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면서 핸드폰을 반으로 부숴 버렸어요."

한희는 자기 마음이 반으로 부러진 것을 핸드폰이 부러졌다고 한 것 같다. 오랫동안 자기 마음을 내색하지 않는 버릇이 되어서인지 자기 마음 다친 것은 나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한희야, 엄마와 연락 끊길 텐데. 그건 안 아파?"

한희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엄마는 어차피 연락 안 하던 사람인 걸요. 그리고 새엄마도 저에게 잘해주시고, 아빠도 잘해주는데 제가 잘못한 것 같아요."

그런 대답을 하는 한희에게 뭐라 말을 할 수 없다. 분명 엄마가 끌릴 텐데, 현재를 걱정하며 살 수밖에 없는 한희가 안쓰럽다. 현재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사는 열여섯 한희가 걱정스럽다. 그렇다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며칠 전에 우연히 선물 받은 책 한 권이 떠오른다. 그의 손에 책 한 권을 들려 보낸다. 이금이 작가가 쓴 <청춘기담>이라는 책이다.

"한희야, 이 책 읽어봐라. 볼 만해."
"네."

종소리와 함께 등을 돌리며 도서실 문을 열고 가는 한희에게 한마디 한다.

"한희야,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와서 말하고 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들어줄 수는 있으니까. 알았지?"

뒤돌아보지 않고 '네'라는 대답만 남기고 가는 한희의 뒷모습에 한없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한희, 파이팅!"
덧붙이는 글 '청소년문화연대 킥킥'이라는 웹진에 송고한 기사입니다.
http://blog.naver.com/kickkick99
#황왕용 #그린나래 #순천남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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