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대박"으로 시작... 대북정책 짧은 대화, 긴 반목

2014년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 평가

등록 2014.12.17 14:40수정 2014.12.1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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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통일은 대박이다" 2014년 1월 6일, 박근혜 대통령 신년 구상 발표 및 기자회견 질의응답

"통일은 대박이다" 2014년 1월 6일, 박근혜 대통령 신년 구상 발표 및 기자회견 질의응답 ⓒ 청와대


2014년 새해 벽두, 신년 기자회견 중 나온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은 온 국민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다음 달인 2월, 남북고위급회담과 이산가족상봉이 잇따랐고, 같은 달 25일에는 박 대통령이 대통령 직속의 '통일준비위원회' 발족을 제안하면서 임기 두 번째 해에는 남북관계가 풀리는 것이 아니냐는 희망 섞인 전망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2014년이 며칠 남지 않은 지금, 남북관계는 여전히 경색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초에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가 있었음에도 성과를 낼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결국은 박근혜 정부의 대결적 정책기조가 유지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글은 '짧은 대화와 긴 반목'을 초래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주요 발언과 사건으로 정리하고 있다.

"통일은 대박이다" 그러나...

'통일대박론'과 이산가족 상봉 그리고 남북고위급회담으로 조성된 대화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우선 대통령의 '통일 대박' 발언이 이뤄진 시기를 전후해 고위외교안보라인은 다음과 같이 흡수통일 및 북한붕괴를 전제로 한 대결적 언사를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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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기홍


또한 2월 5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 간 실무접촉 회의 날에 미군의 B-52 전략폭격기가 한반도에서 훈련을 하고 간 것에 대해 북측이 크게 반발했고, 이산가족 상봉이 끝나는 25일, 사상 최대 규모의 한미군사훈련이 시작되어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었다.

이산가족 상봉이 남북 간 긴장 완화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정부가 3월 말 파주에서 행해진 60만 장의 대북전단살포를 방관하면서 '상호비방중지' 합의가 한 달이 채 못 가 사문화되었다.

말이 아니라 행동이 중요하다


a 드레스덴 연설 사진 2: 2014년 3월 28일, 박근혜 대통령 드레스덴 연설 (출처-청와대 홈페이지)

드레스덴 연설 사진 2: 2014년 3월 28일, 박근혜 대통령 드레스덴 연설 (출처-청와대 홈페이지) ⓒ 청와대


3월 28일의 '드레스덴 선언' 역시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가 되지 못했다. 북한은 '흡수통일 선언'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정부는 연설 내용을 사전에는 물론 사후에도 전달하지 않았다.

실제로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4월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안보고에 참석해 드레스덴 선언 내용에 대한 북한과의 접촉 여부에 대해 "구체적으로 전달한 적 없다"고 밝혀 질타를 당했다. 정부의 이러한 행태는 2000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의 연설문이 북한에 미리 전달되었던 것에 비교되어 무책임한 행동으로 평가받았다.


더구나 드레스덴에서의 선언이 무색하게도 연설이 있던 28일, 한미 양국은 21년 만에 최대 규모로 상륙훈련(쌍용훈련)을 진행했다. 남북 간에는 오히려 긴장이 고조되었다. 또한 통일부는 식량 및 비료를 포함한 민간의 인도적 지원을 "타이밍이 아니다"라며 불허했고, 남북교류를 가로막고 있는 5·24조치의 해제를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힘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의 여지를 스스로 좁혔다. 이후 10월 4일 북한대표단의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방문이 있기 전까지 남북관계는 지속적으로 악화일로를 걸었다.

"북한은 없어져야 할 나라"

5월 12일,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은 없어져야 할 나라", "거짓말을 일삼는 나라"라는 등의 말을 쏟아냈다. 북한은 이에 대해 '전면적인 보복전'을 거론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6월 13일, '국가 대개조'를 표방한 개각이 단행되었다. 국방부 장관 김관진이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과거 연평도 포격사건 때 "쏠까말까 묻지 말고 쏘고 나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던 강경파였다. 총리로 추천된 문창극은 과거 2012년 교회 방송에서 "남북협상 한다 해서 통일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섭리로써 북한이 무너지리라고 확실히 믿는다"던 북한 붕괴론자였다.

인천아시안게임 남북실무접촉 결렬

7월 17일, 인천아시안게임을 위한 남북 실무접촉이 결렬되었다. 회담 당일 오전까지 회담장의 분위기는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다수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의 지시가 있은 오후부터 남측 협상단은 북측의 선수단과 응원단의 구성을 꼬치꼬치 캐묻는 등 태도가 돌변했고 북측이 요구하지 않은 체류비용까지 거론했다. 회담 무산 이후 통일부는 "북측이 지난 번 회담에서 먼저 결렬을 선언했으니 우리 측에서 먼저 실무접촉을 제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런 자리 아니다."

8월 7일, 통일준비위원회 첫 회의가 열렸다.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이 5·24 조치 철회를 제안하자 통일부 장관은 "통일준비위 자리는 5·24 조치 등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통일 준비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이에 위원 자격으로 참석한 한 인사는 "정부에서 정해준 얘기만 해야 하느냐"라고 항의했다.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

9월 13일과 15일, 북한 국방위가 청와대 국가안보실 앞으로 "남측이 삐라살포를 중단해야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이다"라는 요지의 전통문을 보내왔다. 국가안보실은 바로 다음날인 16일, "우리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며 단칼에 거절했다고 밝혔다. 며칠 후인 9월 21일, 파주시 통일전망대에서 또다시 대북 삐라 20만 장이 살포되었다.

삐라 바람으로 날려버린 남북 관계 개선의 골든타임

10월 4일,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북한 대표단이 참석했다. 남북은 2차 고위급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그러나 어렵게 찾아온 남북 화해 분위기는 채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냉각되었다. 남북이 2차 고위급접촉 개최에 합의한 직후, 민통선 인근에서 대북 삐라가 또 살포되었던 것이다. 총리실 및 안전행정부가 대북전단살포 단체에 2년간 6억 5천만 원의 정부 지원금을 준 사실이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삐라 살포가 지속되면서 10월 10일에는 전례 없이 북이 삐라 풍선에 사격을 했고, 남측도 대응사격을 하면서 남북관계가 다시 경색되었다. 보다 못한 연천지역 주민들이 직접 탈북자단체의 살포를 막기도 했다.

이보다 앞선 10월 7일에는 서해상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 발생했다. 해군은 북 함정을 격파하려고 했고, 격파사격을 위해 발사한 76㎜ 함포가 불발돼자 순항미사일을 발사하려고 했다. 청와대는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으려 노력한 것이 아니라 보고를 받고도 "군이 알아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10월 말~11월 초로 예정되었던 남북고위급 회담은 무산되었다.

'사랑과 평화'의 심리전

a  2012년 12월, 애기봉 점등으로 북한과 충돌이 우려되는 가운데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의 애기봉 등탑에 기독교시민단체들이 설치한 성탄절 조명이 점등되고 있다.

2012년 12월, 애기봉 점등으로 북한과 충돌이 우려되는 가운데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의 애기봉 등탑에 기독교시민단체들이 설치한 성탄절 조명이 점등되고 있다. ⓒ 연합뉴스


대북전단 살포로 인해 남북고위급회담이 무산되고 남북관계가 더욱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되기 때문에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동시에 정부는 내년 국방예산안에 K-9자주포에 들어갈 '전단탄' 개발비로 18억 원을 편성했다. 북을 자극하는 내용의 전단을 더 멀리, 더 정확하게 투하하기 위한 탄약을 정부 차원에서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 애기봉 등탑 자리에 9m 높이의 성탄트리 설치가 추진되면서 접경지역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애기봉 트리 설치를 추진하고 있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애기봉 트리는 남북 평화를 상징하는 것"이라며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고, 국방부는 민간단체의 종교 행사를 막을 이유가 없다며 트리 설치 계획을 승인했다.

그러나 애기봉 등탑(트리)의 점등은 정부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결정되어 왔다. 남북은 2004년 개최된 2차 남북장성급회담에서 군사분계선 지역의 선전활동을 중지하기로 합의했고, 이후 애기봉 등탑 점등 행사를 금지했다. 애기봉 등탑을 '선전수단'으로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이유로 국방부는 2011년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을 이유로, 또 2013년에는 "북한을 자극할 필요 없다"며 행사 자체를 불허한 바 있다.

현재 트리 설치는 북한 뿐 아니라 군사분계선 접경지역의 주민들, 특히 김포시 주민들과 김포시장이 반대의사를 밝히면서 설치가 잠정 연기된 상태이다. 이와 관련하여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사랑과 평화를 지향하는 종교가 결과적으로는 종교를 내세워 북한을 압박하고 탄압한다면 그 종교적 행위는 다시 한 번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라

최근 미국을 방문한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12월 12일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통일대박론은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다"라고 발언했다. 또 방미중인 고위당국자는 "5·24 조치 해제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크게 저촉되지 않는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러한 발언들에는 남북관계를 풀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올해 남북관계를 돌이켜봤을 때,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인식'이고 '행동'이다. 상대방을 무시하고 적대시하면 대화를 하더라도 상호간에 감정만 상할 뿐이다. 또한 대규모 군사훈련 및 다양한 방식의 심리전을 수행하는 것은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하여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정부는 말로만 '5·24조치 해제'가능성을 꺼내지 말고 실제로 5·24조치를 해제하고 동시에 금강산 관광을 재개해야 한다. 동시에 전단살포와 애기봉 트리 점등을 막아야 한다.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만 '진정성'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먼저 진정성 있는 행동을 보일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글 임기홍 기자는 정치외교학 전공 박사과정생으로 [평화통일시민행동]의 정책실장을 맡고 있다. [평화통일시민행동]은 남북 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모임이다. 홈페이지는 http://peacizen.com이다.
#평화통일시민행동 #박근혜 대북정책 #2014년 남북관계 #대북삐라 #애기봉 등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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