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바닥에 얼어붙은 몸... 얼마나 울었는지

[희망편지 이어쓰기①] 하늘에 매달린 노동자들에게 띄우는 글월

등록 2014.12.31 11:04수정 2014.12.3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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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7일 45미터 굴뚝에 올라 계절이 세 번 바뀌는 동안 농성 중인 구미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 차광호, 5년의 투쟁 끝에 2014년 12월 13일 평택공장 70미터 굴뚝에 오른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창근·김정욱. ‘희망편지 이어쓰기’는 그들에게 힘을 주기 위한 각계각층 시민들의 응원가입니다. 그들을 잊지 않고 함께하겠다는 시민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하늘의 노동자'들에게 부치는 편지를 보내주세요.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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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할매각 저지와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45m 굴뚝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 차광호씨가 8월 24일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 조정훈


대뜸 갈겨쓰려고 붓을 덥석 쥐었건만 웬일인지 영 나가지질 않습니다. 구미 스타케미칼 노동자 차광호 큰뜻(동지)은 그 높은 곳에 올라간 지가 어느덧 215일째라지요(12월 27일 기준). 쌍용차 김정욱·이창근 큰뜻들도 그 높은 공장 굴뚝에 올라간 지가 보름이 되었다고 하고.

가슴이 찡합니다. 하지만 이 매서운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갈라치고 있는 여러분들의 그 굳센 뚤커(용기)와 배짱, 이참엔 반드시 이기고야 말겠다는 그 어기찬 다짐에 너무나 감격한 탓인지 영 붓이 나가지질 않습니다. 거기다가 지난날의 내 어리석음까지 겹쳐 붓이 떨리기만 하니 이를 어쩐다지요. 언젠가 끌려가 모진 닦달(고문)을 견디다 못해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딴죽을 걸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야 임마, 사람을 갖다가서 이렇게 뜨거운 화롯불에 군밤처럼 볶아댈 수가 있어? 그러질 말고 차라리 나하고 딱 단 둘이서 맞짱을 한번 떠보는 게 어때? 딱 10초면 된다고. 그래서 네가 이길 것이면 나를 아주 때려죽여도 좋다. 하지만 내가 이길 것이면 나를 이렇게 꽁꽁 묶어놓고 때려죽여 미안하다는 그 말 한마디면 된다 그 말이다. 어떠냐?"

그렇게 말을 건넸다가 그만 주릿대를 주워맞고 정신을 잃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너무나 그 모진 매질에 어지러운 나머지 이 매질은 그 망나니 놈의 그 무지무지한 만용으로만 돌렸던 겁니다. 그 매질이야말로 미국의 한반도 분할지배 정책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 분단군사 독재의 체제적 범죄의 만용이라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던 탓에 나만 덤터기를 썼던 것이지요.

그런데 바로 어제(12월 26일)는 그때보다 더 소름끼치는 일을 겪고 말았습니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청와대를 겨냥해 이 추운 겨울 맨바닥을 배밀이(오체투지)로 가는데 경찰들이 가로막는 겁니다. 맨바닥에 배를 댄 노동자들의 몸이 얼붙었다, 길을 비키라고 해도 막무가내.

마침내 몸의 따슨 끼를 몽땅 빼앗겨 태맹이쳐진 개구리처럼 바들바들 떠는데 그래도 막무가내. 여든이 넘은 내가 맨 앞에서 눈깔을 똑바로 뜨고 비키라고 하는데도 경찰의 방패는 철옹벽. 발가락이 꽁꽁 얼고, 종아리·배알까지 얼어 마구 저리고 아파 주저앉으며 나는 더듬었습니다.

'서 있는 내가 이렇게 추운데 배를 세면(시멘트)바닥에 깔고 누워 있는 저 노동자들은 얼마나 괴롭겠는가.'


그래서 노동자들을 보고 한축(일단)은 일어났다가 다시 배밀이를 하자고 해도, 도리어 노동자들이 "저희들은 여기서 얼어 죽을 때까지 이렇게 맨으로 배밀이를 하겠다"고 해 울컥해진 나는 나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울고 또 울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살곳'을 위해 씨를 뿌리자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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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법 철폐를 위해 오체투지를 벌이고 있는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과 연대단체 참석자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경찰의 저지로 막히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소장이 울분을 삼키고 있다. ⓒ 유성호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이런 만행을 마구잡이로 밀어붙이는 박근혜 독재의 제깔(모습)은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간단합니다. 이 정권은 사람의 피눈물까지 자근자근 짓이기는 독재다. 아니 사람의 목숨인 사람의 따슨 끼, 왜 거 정이라는 거 있잖아요. 그것까지 알린알린 빼앗아 사뭇 얼음덩어리처럼 된 사람 몸까지 아삭아삭 밟아대는 '얼음장독재'로구나, 그런 생각이 소스라쳐와 그 덕으로 이 붓을 달리게 되었음을 털어놓습니다.

그렇구나, 저 높은 곳에 올라 있는 노동자들에게 반드시 해야 할 말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첫째, 노동자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문득 덮쳐오는 외로움이라는 것을 슬기롭게 다스리시라는 겁니다. 무슨 말이냐. 여러분들은 이참(지금) 하루하루 외로운 지경으로 몰리고 있는 것 같아도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참 이물입니다. 맨 앞에서 달려가는 전위, 앞장 말입니다.

때문에 날이 갈수록 홀로 남은 것 같아도 전혀 아닙니다. 까마득히 앞서 가노라면 몰아쳐오는 바람을 갈라치고 있을뿐더러, 앞장서 길을 내야 하는 보람과 영광의 알매(주인공)인 것입니다. 그것을 뭐라고 하는 줄 아시는지요. 역사, 그 창조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을 일러 까마득히 앞서 달려가는 이물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와 함께 가는 것을 뜻하는 것이요, 그것은 여러분들이야말로 이 몹쓸 독점자본주의의 피해를 받고 있는 엄청난 민중, 비정규직과 함께 있고, 그들을 뒷배로 하고 있는 것이니 어찌 외로움이라는 세속적 낱말이 낑겨들 수가 있겠어요.

그렇습니다. 외로움이란 쓸쓸하다, 기댈 데가 없다, 또는 힘이 없다는 말하고는 다릅니다. 진짜 외로움이란 앞서가는 이의 거룩함이요, 위대함을 이르는 창조의 세계에 올라 있다는 것, 그래서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그 말입니다.

둘째, 여러분들은 이참 저 높은 꼭대기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 같아도 알로는(사실은) 이 거대한 독점자본주의의 치명적 암흑과 맞서 참된 사람의 꿈 '바랄(이상)'을 잉태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우리들 눈앞의 현실적 변혁으로 "해고는 살인이다, 그러니 원직복직 이루어내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한해서만큼은 단 한 치도 물러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늘의 자본축적구조의 기본적 개혁인 돈이 주인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인 세상, 돈벌이의 무제한 자유가 아니라 사람과 자연의 생존의 전면적 자유라는 과제의 한 가닥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가 없는 얄곳은 갈아엎고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가 있는 살곳을 위해서 씨를 뿌리자는 꿈, 이를테면 '바랄'을 잉태하고 있는 것과 다를 수가 없으니 여러분들의 오늘의 이 아픔은 무엇이냐 이 말입니다. 인류의 보편적 염원을 낳고자 하는 아픔입니다. 그 아픔의 진통이 이참 저 하늘 높은 공장 굴뚝, 그 비좁은 곳에서 한바탕 배앓이를 하고 있는 겁니다. 비록 바사지는 것처럼 힘들긴 하지만 오죽 눈물겹습니까. 자랑스럽게 눈물겨운 것입니다.

'왱왱 찌꿍 찌꿍' 노래를 하염없이 불러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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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이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70m 굴뚝 위에서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하지만 여러분들의 싸움은 짧지가 않고 어찌 보면 지루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겪은 이야기 두 가지만 적어보겠습니다. 그것은 딴 게 아닙니다. 지난날 내 몸에서 40킬로그램이 빠져나가는 아픔을 견디느라 입으로 주절댄 것입니다.

하나를 세고 둘을 세고 백을 세고
만을 세고 천만번 거퍼 세도
아, 한평생 얼어붙는 분단의 사슬
군바리 독재

그래도 또 세자 세다가 일생을
마치는 한이 있어도 하나부터 다시 세자
얽은 천장, 틈새마다
별 이름을 매겨주어도 아직도 먼동은
멀었는가

그래도 또 세자
지금 나의 싸움은 바보처럼 세는 거다

악독한 살인마 네놈들의
죄상을 토막토막 질근질근
이를 갈며 끝간데까지
세고 또 세는 거다

- 시 <하나부터 다시 세자>

또 하나는 내가 아주 어릴적 방아 찧는 남의 집 머슴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그 할머니는 늘 눈을 감고 '왱 왱 찌꿍' 하고 흥얼대시는 겁니다.

"할머니, '왱 왱 찌꿍'이 뭐야?"
"응 그거, 방아를 찧는 소리지."

어느 여름날 사과밭에서 닭 잡아먹는 내음이 코를 찔렀지만 그 할머니한테는 국물도 없자 할머니 콧노래 소리가 달라졌습니다. '왱~ 왱~ 찌꿍, 왱~ 왱~ 찌꿍'이 아니라 '왱왱 찌꿍찌꿍, 왱왱 찌꿍찌꿍'. 그래서 물었지요.

"할머니, 왜 그렇게 빨리 불러?"
"응 그거, 이눔의 세상, 이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박박 갈고 왱왱 찧자는 거지."

나는 그때 그 할머니의 말뜻을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달구름(세월)은 흘러 내가 모진 닦달로 다 죽게 됐을 때 문득 내 어릴적 그때가 떠올라 '왱왱 찌꿍 찌꿍'을 부르며 나를 일으키던 생각이 납니다.

젊은 노동자 여러분, 어떻습니까. 그때 그 이름도 성도 없고 눈곱이 뭉개 붙어 비록 앞은 못 보지만 그 맛있는 닭국 냄새를 물리치느라 부르던 머슴 할머니의 그 '왱왱 찌꿍, 왱왱 찌꿍' 노래를 부르되, 또 부르고 또 부르고 하염없이 불러보면 어떨까요. 문득 두 주먹이 떨리다가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소리를 이 글월 속에 함께 띄워봅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통일문제연구소장입니다.
#고공농성 #굴뚝농성 #쌍용자동차 #스타케미칼 #씨앤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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