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넘게 실현되지 못한 두보의 소원은?

[중국어에 문화 링크 걸기 100] 住

등록 2014.12.31 10:19수정 2014.12.31 10:19
0
원고료로 응원
a

살 주(住)는 의미부인 사람 인(人)과 소리부인 주인 주(主)가 결합된 형태로 사람이 주인으로 살다는 의미다. ⓒ 漢典


세찬 바람에 초가지붕이 날아가자, 동네 아이들이 힘없는 노인네를 얕잡아 보고, 지붕을 주워간다. 입이 말라 소리도 못 지르고 있는데 장대비가 내린다. 비가 새어 방안에 마른자리는 없고, 비에 흠뻑 젖어 무슨 수로 밤을 지새울지 걱정한다.

1200년 전쯤, 나이 쉰이 되어서야 힘들게 마련한 초당(草堂)을 이렇게 허무하게 날려버리고 시인은 깊은 시름에 잠긴다. <초가집을 가을바람에 날리고 부르는 노래(茅屋爲秋風所破歌)>라는 시를 남긴 이 사람은 바로 시성(詩聖) 두보(杜甫)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준다"는 문구가 거리낌 없이 회자되는 물질만능의 시대에도 초당을 짓고 아름다운 시를 남긴 두보는 여전히 위대한 시인으로 추앙받는다. 왜냐하면 그가 산 집이 그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떤 사람이었느냐가 그를 말하고, 우리에게 기억되기 때문이다.

어디에 사는 지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人住哪儿并不重要,而重要的是什么样的人)는 것을 일깨우는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어느 날, 공자가 동쪽 오랑캐(九夷) 땅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하자, 제자들이 누추한 곳이라고 걱정한다.

공자는 이에 "군자가 거하는 곳에 어찌 누추함이 있으리오(君子居之, 何陋之有)"라고 답한다. <논어>에 나오는 이 대목을 유우석은 <누실명>에서 "이곳은 비록 누추한 집이나 나의 덕으로 향기가 나리라(斯是陋室惟吾德馨)"하고 또 노래하고 있다.

살 주(住, zhù)는 의미부인 사람 인(人)과 소리부인 주인 주(主)가 결합된 형태로 사람이 주인으로 살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주(主)가 원래 나무(木) 위에 불꽃(丶)이 타는 모양을 나타낸 상형자이므로 밤이면 불을 밝히는 수많은 불빛 하나하나가 바로 우리가 사는 모습을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어에서는 생활의 기본 조건을 '의식주행(衣食住行)'으로 표현한다. 중국이 발전하며 이제 먹고 입는 문제(溫飽)는 어느 정도 해결 되었지만, 주거문제는 여전히 중국인의 삶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소로 지적된다. 대다수의 도시노동자는 그야말로 열악한 숙소에서 지낸다. 아무리 군자라 해도 향기롭기 어려울 지경이다.


새는 반년이면 둥지를 짓고, 벌도 수개월 만에 집을 완성하며, 교활한 토끼는 집을 세 개씩이나 장만한다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집값에 평생을 집의 노예로 살아가기 일쑤라는 푸념은 비단 중국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두보가 시 말미에서 자신은 얼어 죽더라도 어떻게든 천만 칸 집을 구해(安得廣廈千萬間) 천하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산처럼 끄떡없는 우람한 집을 나눠주고 싶다고 했던 그 소원이 천년 넘도록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住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