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말 한마디에 춤추는 사법부...무너진 법치

[주장] 대통령이 나랏님인가... 긴급조치시대가 부활했다

등록 2014.12.31 16:49수정 2014.12.3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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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인 지난 29일 2014년 핵심 국정과제 점검회의 당시 발언하고 있는 모습. ⓒ 청와대


지난 19일,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하면서 이 땅의 법치는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이제 사법기관이 수사를 해서 재판 결론에 따라 처벌을 내리는 법치는 사라졌다. 대통령이 주요판결을 내린다. 사법기관은 이를 관철시키는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이른바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법 위에 있었던 박정희 정권 시절의 긴급조치가 부활한 듯하다.

임금 위의 제왕, 긴급조치

1972년 공표되었던 유신헌법 제53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처하거나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어 신속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때에는 내정·외교·국방·경제·재정·사법 등 국정 전반에 걸쳐 필요한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 대통령이 자기 판단에 따라 내정·외교·국방·경제·재정·사법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2항의 내용은 더욱 충격적이다.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하는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도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민의 기본권과 행정·사법권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셈이다.

특히 6항에서는 국회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긴급조치 해제를 건의할 수 있지만, 대통령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응하도록 하였다. 즉 대통령이 응하지 않으면 이 세상 그 누구도 긴급조치를 해제할 수 없는 것이다.

조선시대 임금도 조정대신들과 정사를 논할 때 정국운영의 시스템이 있었다. 대신들은 종묘사직을 거론하며 왕권의 횡포를 제어하였으며 통제가 불가능해진 제왕들을 '반정'으로 퇴출시키며 왕조의 시스템을 이어갔다.

1972년 공표된 유신헌법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조선시대 임금보다 더욱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했다. 대통령의 말을 통제할 방법이 없었다는 점에서 유신헌법은 사실상 법이라는 이름을 가지기도 민망한 '파쇼독재'의 대명사였다.


'다카키 마사오' 한 마디에 정당해산

악명 높았던 긴급조치가 진보당 해산사건으로 부활하고 있다. 15년 역사의 진보정당을 이어온 통합진보당은 왜 2014년에 해산되었을까? 2012년 총선에서 200만 표를 얻었던 통합진보당이 불과 2년 만에 한국사회에 용납될 수 없는 해산정당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는 법원에서 무죄를 받았으며 현재 내란선동혐의가 남아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이석기 의원의 내란선동 혐의는 아직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지 않아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최루탄을 터트렸다고 정당을 해산하나? 1960년대, 정치깡패라고 불리기도 했던 김두한은 국회에 똥물을 투척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정당이 해산되지는 않았다.

결국 진보당 해산 사유는 대통령을 비롯한 기득권층에게 대들어서 찍힌 꼴이다. 대표적인 예가 2012년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진보당의 이정희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창씨개명했던 이름인 "다카키 마사오"를 언급한 일이다. 이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의 노여움을 샀다는 분석도 나온다.

언론은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타협의 정치를 펼치지 않는 진보당을 비꼰 지 오래다. 진보당은 언젠가부터 사과를 하지 않고, 무언가 기분 나쁘고, 늘 머리를 꼿꼿이 들고, 늘 잘난 체 하는 정당으로 인식되지 않았는가? 그러다가 결국, 정당이 해산되고 말았다.

대통령한테 찍혔다고 정당이 해산된다면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인가? 일부 국민들이 기분 나쁘다고 해서 그 정당이 해산된다면 그것이 민주주의인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21세기에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말은 더욱 가관이다.

<YTN>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3일 국무회의에서 진보당 해산을 두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뒤흔드는 헌법 파괴와 우리 사회를 혼돈에 빠뜨리는 행위를 절대 용인할 수 없다는 헌법수호 의지를 담은 역사적 결정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울러 "이번 결정이 자유민주주의를 더욱 확고히 하고 통일시대를 열어나가는 계기로 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단다.

대한민국의 법치 체제를 뒤흔든 주체는 진보당이 아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15년 진보정당을 해산시킨 이 정부와 헌법재판소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법률과 양심에 따라 진보당을 해산시켰는가 대통령과 그들 자신의 불편한 심기에 따라 진보당을 해산시켰는가.

신은미 콘서트를 '종북'이라 규정

이미 박근혜 대통령은 본인의 2002년 방북기와 내용상 수위가 별반 다르지도 않은 신은미·황선의 통일콘서트를 "종북콘서트"라 규정하며 법적처벌의 일관성을 무너뜨렸다.

지난 15일, 박근혜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최근 소위 종북 콘서트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우려스러운 수준에 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몇 번의 북한 방문 경험이 있는 일부 인사들이 북한 주민들의 처참한 생활상이나 인권침해 등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자신들의 일부 편향된 경험을 북한의 실상인양 왜곡·과장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박 대통령은 "우리가 평화통일을 지향하면서 북한의 실상을 바로 알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지만 이 모든 행위들은 헌법적 가치와 국가의 정체성을 지킨다는 대원칙 아래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자 한다"고 말했다. 평소 안전사회를 강조하던 대통령이 지난 10일의 백색테러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채 콘서트만 문제 삼은 셈이다.

애당초 신은미·황선의 통일콘서트 내용을 종북콘서트로 규정한 것은 보수언론과 종편이었다. 이들은 이를 위해 있지도 않았던 "북한 지상낙원"과 같은 허위사실을 유포하였고 여기에 근거해 <일간베스트>를 비롯한 극우사이트들은 신은미·황선의 신상털기에 들어갔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2년 당시 단독으로 방북길에 올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독대하고 북한 김일성 주석의 만경대 생가와 평양 주체사상탑에 올랐다.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 2007년 6월 외신기자클럽 회견에서 "김 위원장은 약속을 지키는 믿을 만한 파트너"라고 하였으며 그해 7월의 <신동아> 인터뷰에서는 "대화를 하려고 마주앉아서 인권 어떻고 하면 거기서 다 끝나는 것 아니냐"고 언급했다.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을 여러 차례 가본 것도 아니고 단 한 번 다녀왔다. 그리고 방북기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두고 "우리 정치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북한사회를 놓고 "북한이 우리보다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한 듯 보였다"라고까지 썼다.

신은미씨의 통일콘서트도 북한의 가난한 농촌에 대한 이야기와 어려운 삶을 함께 이야기했다. 나름대로 균형을 갖추었다고 평가된다. 그렇기에 신은미씨의 방북기는 문체부의 우수문학도서에 선정되었으며 한국기자협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으로부터 통일언론상 특별상을 받았다.

대통령 본인의 이야기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신은미씨의 이야기를 2002년에 북한을 다녀온 대통령 자신이 "종북콘서트"라고 규정하니 국민들은 어안이 벙벙하다.

대통령의 "종북콘서트" 발언이 수사기준이 된지 모르겠지만, 익산폭탄테러 수사는 엉뚱하게 테러의 피해자인 신은미·황선씨에게 집중되고 있다. 경찰은 이미 황선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하였고 구속영장 청구를 언론에 흘리고 잇다. 신은미씨도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출국이 정지됐다. 언론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조사 중이라고 보도하며 신은미씨가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뉘앙스의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테러 피해자들은 이처럼 강도 높은 조사를 받는 반면 테러범인인 A군에 대해서는 미적지근하다. 경찰은 범인의 진술을 기정사실화해서 사건을 단독범행으로 판단했다. 범인의 자택과 회사를 압수수색하지도 않았다. 이후 재판에서 테러 증거물을 어떻게 보강하겠다는 것인지 수사의지를 알 수 없다.

이쯤되면 15일, 대통령의 "종북콘서트" 발언이 실제 수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고 볼 법하다. 경찰은 29일, 신은미씨의 콘서트에서 "북한 지상낙원"이란 표현은 없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신은미씨에 대한 국가보안법 수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 한 마디에 명예훼손 전담팀 구성

우린 이미 대통령 한 마디에 구속영장이 오고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9월 16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며 "이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고 국가의 위상 추락과 외교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는 바로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날 당시 7시간 동안 대통령이 어디 있었냐는 대통령 부재설에 대한 반발이었다. 설훈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9월 12일 "대통령이 연애했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한 데 대한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4월 16일 대통령 행처에 대한 루머는 대통령 본인이 직접 그날의 행적만 밝히면 모든 의혹은 눈 녹 듯 사라지게 되어 있다. 대통령 스스로 침묵해서 의혹이 증폭되었는데 "대통령이 연애했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며 루머를 부정한 언급에 대해서까지도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고 하니 국민들은 어리둥절하다.

문제는 대통령이 대통령 모독발언을 언급하였으니 수사당국이 이를 수사해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검찰은 대통령 발언 이틀 만에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 수사팀을 구성했다. 수사기관이 수사결과에 따라 처벌의견을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지시를 관철하기 위해 수사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누군가 1명은 구속되어야 했을까? 결국 23일, 검찰은 김현승 18대 대선 부정선거 진상규명 범국민연대모임 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했다. 김씨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최태민 목사, 정윤회씨와 불륜관계"라는 등의 22건의 악의적인 음해성 글을 올렸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에 대해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는 대통령의 발언을 수사의 근거로 언급하였다.

결국 힘없는 국민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죽고 사는 시대가 왔다.

서울 시내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2002년 방북을 풍자한 전단이 살포되자 경찰은 이 사건을 즉시 강력계에 배당하였다. 그런데 검토되는 죄목이 "유언비어 날조"나 "명예훼손"이 아니라 "건조물 침입"이다. 전단의 내용이 사실관계 그대로이기 때문에 전단의 내용으로는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의 건물에 들어가 전단지를 뿌린 죄를 과연 "강력계"에 배당될 사안인지 따져볼 일이다. 경찰이 "반드시 잡겠다"는 의지를 외부에 보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을 두고는 지나가는 발언 한 마디를 물고 늘어져 선거법 위반 혐의로 대통령을 탄핵하려 했던 자들이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는 말 한마디에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팀을 구성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금님인가? 우린 긴급조치 시대를 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우리사회연구소>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통진당 #신은미 #종북 #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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