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연기 귀신처럼 보여... 형은 무엇으로 버티나요?

[굴뚝편지①] 쌍용차 이창근이 스타케미칼 차광호에게

등록 2014.12.31 20:35수정 2014.12.31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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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평택 공장 내 70미터 굴뚝에서 농성중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 이창근 정책기획실장. ⓒ 이창근


형, 차광호에게

안부 묻기도 죄송하다는 말, 하루에도 몇 번씩 듣습니다. 힘내라는 이야기도 하기 어렵다는 말씀도 자주 하십니다. 굴뚝 아래서 한참 이곳을 지켜보다 말 없이 돌아서는 분들의 어깨를 봅니다. 그 마음이 높은 이곳까지 닿더군요. 참 신기한 일입니다. 이렇게 쓰려고 한 건 아닌데 말의 시작이 이렇게 돼버렸군요.

차광호 동지, 아니 광호 형, 어떻게 지내요. 매일 페이스북을 통해 하루 일과와 형 모습 보고 있어요. 땅에 닿을 듯한 수염과 나이 들어 보이는 내복을 보고선 코디라도 좀 해주고 싶더군요. "좀 젊게 생활해!"라는 말과 함께. 긴 시간이 흘렀고 흐르고 또 흘러가는군요. 높은 굴뚝에 올라보니 알겠습니다. (고공 농성) 200일을 넘긴 형 마음의 갈래 말이에요. 아니 또 모르죠. 그 갈래가 제 마음의 갈래인지도요.

이곳 쌍용차 굴뚝은 매일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눈이 따갑고 머리까지 띵해요. 그 연기 피해 다니느라 '생쇼'를 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형 생각이 나더군요. 형이 올라 있는 굴뚝에선 연기를 보지 못했거든요. 멈춰서버린 공장의 그 아득함과 서늘함을 생각해봤어요. 피어나지 않는 그 어떤 가능성도 떠올려봤어요.

그래도 쌍용차 굴뚝은 연기 나고 공장 돌아간다는 것으로 위안 삼으려던 찰나. 아차차, 이 놈의 연기가 밤에 보면 꼭 귀신이 손짓하는 것 같거든요. 낮엔 뭔가 태운 하얀 뼛가루 날리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러다 돌아가신 26명의 동료가 생각나고 하얀 굴뚝 기둥처럼 우두커니 서 있을 그들의 가족이 생각납디다. 이건 뭐 누가 더 불행한가 시합하는 것도 아니고, 세밑에 이런 말로 편지 채우기엔 우리 남은 인생이 길잖아요? 좀 다른 얘기 해볼까요?

굴뚝에 오를 때, 형은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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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농성 중인 쌍용차 해고노동자 "승리하고 내려가겠다" 15일 오전 경기도 평택공장 내 70m 굴뚝 위에서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3일째 고공농성 중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이 공장 밖 동료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 유성호


굴뚝에 오를 때 어떤 맘이었을까 미뤄 짐작해보았어요. '굴뚝 19일차(12월 31일 기준)'가 벌써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좀 우습죠? 속으론 '니도 한 100일 지나봐라'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제 오지랖이 이 모양인 걸 ㅋㅋㅋ. 저는 지난 11월 13일 대법원 판결을 듣고 앞이 아득합디다. 깜깜한 곳에 혼자 남은 것 같아 무섭기까지 했어요. 이제는 어떻게 하나, 뭘 해야 하나, 맥이 탁 풀렸어요.


그런데 형은 어땠어요? 한국합섬이 파산하고 주 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상대로 '파산기업 공기업화'를 요구했었잖아요. 당시 조합원 800명이 조금 넘었었죠? 자료를 찾아보니 체불임금과 퇴직금 해결, 고용⁃노조⁃단체협약 3승계를 전제로 일괄매각을 요구했더군요. 그 뒤 인수협상이 몇 차례 깨지고 2010년 산업은행이 스타플렉스에게 339억 원이라는 '똥값'으로 공장을 매각했더군요.

그래도 짧은 봄이 찾아온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언론기사 찾아 보니 당시에 스타플렉스는 지회를 제 발로 찾아와 공장정상화에 합의했더라구요. 이때만 해도 새로운 자본을 만나 미래가 좀 밝았던 게 아닌가 싶어요. 당시 스타플렉스는 충북 음성공장을 언급하며 노조 없이도 잘 돌아간다는 말을 했는데, 노조가 이렇게까지 질기게 투쟁을 이어갈지 그땐 몰랐던게 아닌가 싶어요.

노조 없이 고용만 승계하자고 버티던 스타플렉스 자본이었지만, 형네들이 '(노조) 전면 수용 없다면 인수 무효 투쟁하겠다'고 분명하게 입장를 세우자 결국 최종 합의를 했잖아요. 그땐 엄청 감동이었어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와 드디어 구미 한국합섬 동지들이 공장으로 돌아가는구나' 했었죠. 당시 저희 홍보물에 제가 직접 썼던 기억도 있어요.

형들이 전문가지만 화섬산업이란 게 장치산업이잖아요. 정상적 운영을 위해 다른 업종에 비해 장기적(3년 정도) 투자가 필요한 산업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사측은 인수 당시 합의대로 전체 공장을 가동하지 않고 20개 라인 가운데 절반만 가동했다죠? 그러다 2013년 돌연 폐업을 했죠. 딱 3년도 걸리지 않았더군요. 

'재가동 이후 스타플렉스에서 사용하는 원사를 스타케미칼에서 생산하였는데, 이에 대한 내부거래를 불분명하게 진행한 것. 공장 가동 중단 직전인 2012년 상당수 생산물량이 스타플렉스로 빠져 나간 것. 폐업한다는 공장이 지분 확보에 나선 점. 일부 언론 보도에서 스타플렉스의 스타케미칼 출자금 사용처 의혹 제기 등이 제기된 점 등. 애초부터 '먹튀 자본'이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음.' -2014년 12월 9일, 스타케미칼 해복투 기자회견문

이런 사정을 보니 굴뚝에 오를 수밖에 없었겠다 싶어요. 쌍용차도 비슷하죠.

형, 우리 건강해야 해요

어제는 쌍용차 동지들도 목동 스타케미칼 농성장 집회에 갔어요. 조금이라도 힘 보태고자 노력합니다. 할 일 많은 스타케미칼 동지들인데 자주 이곳 굴뚝으로 옵니니다. 오늘 아침에도 전화를 하고 손을 흔들었어요. 굴뚝에 있는 형이랑 땅 위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우리 스타케미칼 동지들도 반짝 웃음 말고, 길게 여유롭게 웃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형이랑 우리랑 굴뚝에서 보낸 시간이 딱 200일 차이가 나요. 형이 굴뚝 200일 되는 날(12월 13일) 우리가 이곳에 올랐으니까요. 적어도 곰 두 마리는 사람이 될 시간이네요.

참혹하다는 말과 비참하다는 호소도 이젠 그렇게 감흥이 없어요. 더 이상 비참이 있을 수 있나 싶고 더 아픈 고통이 존재하기는 하는가 싶기도 하답니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문제도 심각하지만 노동자들의 요구가 이 사회에서 그렇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일까 매일 생각합니다. 굴뚝으로 오르고 송전탑에 붙어 있고 땅 바닥을 배로 밀어가는 노동자들을 더 이상 이렇게 두는 사회가, 정치가, 권력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다 기륭 동지들 오체투지 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지렁이가 생각나더라고요. 땅속을 기어 나가는 건강한 지렁이말입니다. 굳은 땅에 공기를 넣어주는 땅의 농부 지렁이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으로 딱딱해져버린 한국사회 노동의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구실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건강은 어떠신가요. 저도 이런 질문이 제일 피곤해요. 아프다 말해야 할지 잘 버틴다 말해줘야 할지,아리송할 때가 종종 있더군요. 그러나 우리 건강해야 해요. 몸이 병기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니까요. 아침 저녁으로 '병기 수입' 잘 하시고요. 밤이면 튼튼한 쌍용차 굴뚝을 다리 삼아 쿵쿵대며 구미까지 놀러가는 상상을 합니다.

제가 조금 더 높은 굴뚝이니 허리를 조금 숙여 형의 안부를 묻는 생각도 해보고요. 모두가 잠든 사이 몰래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상상을 하면 즐겁다가도 우울해지고 뭐 그런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하네요.

형은 어떨까 싶어요. 하고 싶은 얘기 많이 하고요. 들어주지 않는다고 중단하지 마시고요. 투쟁 잘 마무리하고 이겨서 기쁘게 내려가길 바라요. 고용을 승계하고 민주노조를 지키는 형의 모습 꼭 보고 싶습니다. 저도, 함께 있는 김정욱 동지도 그럴게요.

아프지 마요. 광호형, 사랑합니다.

2014년 12월 31일 쌍용차 굴뚝에서
#이창근 #쌍용차 굴뚝농성 #차광호 #스타케미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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