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에서 200일, 당신들이 있어 내가 삽니다

[굴뚝편지②] 스타케미칼 차광호가 쌍용차 이창근에게

등록 2014.12.31 20:35수정 2014.12.31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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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공단 45미터 굴뚝에 올라간 스타케미칼 차광호씨. ⓒ 차광호


동병상련으로 투쟁에 임하고 있는 동지들께

노동자로서 서로 웃고 도움을 주면서 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아픔을 나누는 것이 헛된 시간은 아니겠지요.

동지들이 굴뚝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2009년 회사의 일방적인 정리해고에 맞서 77일간의 옥쇄파업으로 항거할 때가 생각납니다. 저희 스타케미칼(구 한국합섬)도 공장 파견으로 투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쌍용차 투쟁을 같이 하면서 저희 조합원 3명이 구속돼 평택교도소와 수원교도소를 면회 다닌 기억이 생생합니다.

2013년 4월 대한문 분향소를 철거하기 위해 서울 중구청이 화단을 설치할 때에도 같이 투쟁하면서 유치장 신세를 진 일도 생각이 납니다. 그때 서영섭 신부님과 유치장 같은 방을 썼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연대는 더욱 단단해졌나 봅니다. 페북에 올라오는 소식과 가끔 안부 통화를 할 때마다 들리는 쌍용차 사측의 악랄함에, 구미 굴뚝에서도 몸서리가 쳐집니다.

구미 굴뚝에서도 몸서리가 쳐집니다

저는 지난 5월 27일 새벽 3시에 스타케미칼(구 한국합섬) 분할 매각 중단과 공장 가동을 요구하며 굴뚝에 올랐습니다. 폴리에스테르 원사 제조업체인 스타케미칼은 모기업인 스타플렉스의 흑자에도 2013년 1월 일방적인 폐업에 들어가고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했습니다. 자산가치 900억 원에 달하던 한국합섬 공장을 399억 원에 인수해 재가동한 지 2년 만입니다. 저와 해고된 동지들은 '먹튀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200일 넘게 농성하는 동안 지원받는 물품이라도 있어서 견딥니다. 하지만 맨몸으로 굴뚝에 오른 동지들에게 사측은 하루에 식사는 한 차례만 올리고, 다른 물품 반입을 막으니 저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조금씩 안정을 찾으니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머리 감는 모습을 보면서 동지들의 애절함을 느낍니다. 이 추운 날씨에 찬물로 머리를 감고 공장 내 동료들을 맞으려는 그 마음은 굴뚝 위에서 할 수 있는 동지애의 표현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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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4일, 분할매각 저지와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45m 굴뚝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 차광호씨가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 조정훈


성탄절 저녁에는 부모님과 통화하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부모님의 자식 걱정은 이해되지만,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서러웠습니다. 하지만 전국에서 관심과 응원으로 우리를 지켜주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모든 분들의 힘을 받아 굴뚝 고공농성도 평온을 찾아갑니다.

200일 넘게 굴뚝에서 홀로 농성하고 있지만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굴뚝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을 이기고 노동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려는 그 마음이 중요하겠지요. 저는 김정욱, 이창근 동지가 지난 6년간 투쟁해온 시간들을 지켜보았고 땅에서 투쟁하는 쌍용차 동지들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공장으로 돌아가는 날이 꼭 오리라 믿습니다.

강력해 보이는 회사도 우리 노동자들이 일하지 않으면 돌아기지 못하지요. 노동자가 하나되는 그날을 위해 힘내서 갑시다.

굴뚝에 올라 농성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굴뚝에 오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우리들이 희망을 찾아야 합니다.

여건과 환경이 힘들지만 같이 하는 김정욱, 이창근 동지를 생각하며 또 힘을 냅니다. 쌍용차 동지들의 굴뚝 농성 시작으로 여기 구미 굴뚝 위도 바빠졌네요. 지금까지 관심이 뜸했던 언론에서도 적극적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터뷰와 기고글을 쓰면서 하루를 빠르게 보냅니다. 같이 투쟁하는 동지들 덕분입니다. 힘들지만 노동자들의 '깡다구'로 견디어 갑시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 웃는 날이 오겠지요. 우리들의 웃는 그날을 위해...

김정욱, 이창근 동지 사랑합니다.

2014. 12. 28.
#차광호 #스타케미칼 고공농성 #이창근 #김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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