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문건' 원점... 누가 납득할까

[분석] 조응천 전 비서관 구속영장 기각... '국기문란' 이렇게 처리해도 되나

등록 2014.12.31 21:42수정 2014.12.3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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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 문건... 법원 설득하기 어렵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판사 출신이 새정치연합의 박범계 의원이 영장집행판사를 언급하며 '정윤회 문건' 수사가 법원을 설득하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 트위터갈무리


엄상필 부장판사, 함께 일했던 경험으로 묵직한 성품이 돋보인다. 그가 조응천 영장 기각을 했다는 것은 비선실세 국정농단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 한 어떠한 지록위마도 법원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의원 트위터

청와대에서 직접 고소한 건이다. 언론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생중계까지 해서 검찰이 받은 압박은 다른 건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을 것이다. 피의자에 대한 유죄 입증의 책임을 지는 검찰도 신중했을 것이다. 더욱이 '정윤회 문건'은 세월호 참사 속에서도 오뚝이 지지율을 자랑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을 일순간 폭락시킨 사안이다.

그러나 법원은 이번에도 신중했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을 상대로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엄상필 영장전담부장판사는 31일 오전 "범죄혐의사실의 내용, 수사 진행경과 등을 종합해 볼 때 구속수사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검찰에서 청구한 사전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판사 출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박범계 의원은 조 전 비서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직후 트위터를 통해 "비선실세 국정농단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 한 어떠한 지록위마도 법원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며 엄 판사의 영장기각에 의미를 부여했다.

엄 판사는 지난 12일 청와대에서 반출된 문건을 '2차 유포'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최아무개, 한아무개 경위에 대해서도 "현재까지의 범죄혐의 소명 정도 등에 비춰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한 바 있다. 그는 박 대통령이 '가이드라인' 논란을 일으키면서까지 직접 언급한 이 사건에 대해 두 차례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정윤회를 세상에 등장시켰고, 정치권에서 떠돌던 '문고리 권력'을 대중에 노출시켰고, 대통령의 동생이 2번씩이나 검찰에 출석하도록 만들었던 '정윤회 문건'은 엄 판사의 영장기각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 사건의 총 기획자여야 할 조 전 비서관 혐의는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 두 경위 역시 문건 유포자로서 그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다.

두 경위 및 조응천 전 비서관에 대한 영장기각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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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응천 구속영장 기각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청와대 문건 유출 개입 혐의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이 기각돼 청사를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형사소송법 70조에 의하면 구속 사유는 세 가지다. 범죄의 상당성, 증거인멸 우려, 도주 우려가 바로 그것이다. 엄 판사의 영장기각은 조 전 비서관의 혐의가 위 세 가지 중 어느 하나에도 해당하지 않음을 반증한다. '구속수사 필요성과 상당성이 없다'고 한 엄 판사의 기각 사유가 청와대와 검찰에 아프게 다가왔을 것이다. 

조 전 비서관이 받은 혐의는 대통령기록물법 위반과 공무상 비밀누설 두 가지다. 박관천 경정이 청와대에서 반출한 문건을 '지시 내지 묵인했다'는 것이고, 유출된 문건을 박지만 씨에게 알려주었는지를 조사했다. 검찰은 또 조 전 비서관이 박 경정이 작성한 '정윤회 문건' 등의 작성 과정에도 개입한 혐의점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검찰은 언론을 통해 조 전 비서관에 대한 혐의입증에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러나 영장집행판사의 생각은 달랐다. 지난 26일, 조 전 비서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 하는 과정에서 검찰은 조 전 비서관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도 전격적으로 진행했다. 증거인멸의 우려 등을 주장하기 위함으로 해석되나 이 역시 법원에서 인정되지 않았다.

두 경위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도 마찬가지다. 지난 11일, 엄 판사는 "법리 적용이 명확하지 않고 범죄 혐의 소명이 덜 됐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공무상 비밀누설혐의'를 적용했지만, 법원은 이들에 의해 유출된 문건이 '비밀'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들이 청와대 문건을 직접 가지고 나오지 않은 점도 고려됐다는 분석이다.

이제 원점에서 다시 물어야 하는 대목은 이것이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무슨 범죄에 대한 '피의자'인가? 그가 주동자인 것처럼 청와대 감찰 내용 및 검찰 수사가 진행됐지만, 법원에 의해 인정되지 않았다. 보름 전에 체포돼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던 두 경위에 대한 혐의는 이제 사라진 것인가?

누가, 대통령에게 '국기문란'이라고 보고했는가

국기문란을 방치하고 있나? 11월 28일 '정윤회 문건'이 공개된 직후인 12월 1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기문란'이라고 거세게 질타했다. 청와대 감찰과 검찰 수사는 국기문란범의 실체와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채 한달의 시간을 보냈다. ⓒ 중앙일보pdf


이번 사건은 보면 볼수록 특이하다. 같은 사건에 대해 두 차례나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도 대단히 의외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두 경위 중 최아무개 경위는 숨진 채 발견됐고, 한아무개 경위는 거처가 불분명한 상태인 점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지휘한 것으로 보도된 조 전 비서관은 체포도, 구속도 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는 뚜렷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12월 1일,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해 처음으로 '정윤회 문건'에 대해 언급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최근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며 "(청와대 문건 유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행위"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이어 "이런 공직기강의 문란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적폐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을 보면 대통령의 인식이 잘못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 전 비서관, 두 경위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구속도 못 시키는 국기문란이 있는가. 그런데 무슨 연유로 박 대통령은 초기부터 '국기문란'이라고 명쾌하게 규정하게 됐는가. 박 대통령에게 '국기문란'이라고 보고한 그 누군가가 대통령이 언급했던 '적폐' 대상이 아니겠는가.

분명 청와대에서 작성된 문건이 유출됐다. 그 문건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이 최종 확인해 상부라인(민정수석 – 비서실장)에 보고한 자료다. 그 문건을 청와대 외부로 유출한 사람(박관천 경정)은 구속됐다. 법원은 그 선까지 책임을 묻고 있다. 검찰에서 수사를 다시해 구속영장에 명시될 증거를 추가하지 않는다면 법원의 판단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특검 등 거센 후폭풍 예상... 내부 감찰한 청와대 일대 개혁 요구돼

조 전 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야당을 비롯한 언론에서 '국기문란'이라고 언급했던 박 대통령의 인식 문제를 정조준할 것이다. 그리고 내용 확인과 유출 과정 전반을 조사하기 위한 국정조사와 특별검사를 요구하고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박 경정만 구속기소한 채 '정윤회 문건' 사건이 종결된다면 과연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청와대는 문건 유출에 대한 내부 감찰을 시행했다. '정윤회 문건'은 조응천을 비롯한 '7인회'에 의해 조직적으로 기획된 것이 청와대의 내부감찰 결과였다. 최고 권력기구의 감찰 수준이 이 정도라면 공직기강과 청와대 자체 기강은 도대체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는가. 청와대의 일대 개혁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12월 31일 오전 0시 45분께 구속영장이 기각돼 풀려난 조 전 비서관은 심경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지금 많이 피곤하다"고 답했다. 이 사건을 지켜보는 국민들도 많이 피곤하다. 이 사안을 '국기문란'으로 몰고 가는 대통령과 청와대를 바라보는 시선도 전에 없이 싸늘함을 청와대는 직시해야 한다.
#조응천 #정윤회 #국기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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