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욕의 역사로 남을 헌재의 진보당 해산

등록 2014.12.31 21:26수정 2014.12.31 21:26
0
원고료로 응원
헌법재판소(헌재)가 국민이 만들고 지지해 온 정당을 해산시켰다. 헌재는 민주화를 위해 피와 땀을 바쳐 온 국민의 노력을 져버렸다.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국민이 주인되는 정치 질서다. 대한민국 주인인 국민의 정치적 지향과 행동을 표현하는 수단인 정당 활동은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정당이 해산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엄격한 법 규정을 적용해야 민주국가라 할 수 있다.

헌재도 정당해산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헌법 제8조 제4항은 애당초 정당해산을 어렵게 해 정당을 보호하려는 목적의 조항이라고 보았다. 이승만 정권이 조봉암의 진보당을 행정처분으로 해산시켜 버린 것을 교훈 삼아 정권의 전횡으로부터 정당을 보호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정당해산 사유로 규정되고 있는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는 그 요건이 매우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추측과 논리적 비약의 헌법재판소 결정문

a


하지만 실제 헌재의 판결문(다수의견)을 보면 구체적 증거제시 없이 추측과 단정으로 판결했다.

헌재는 통합진보당(진보당) 강령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최종 목표가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이라고 판단했다. 진보당의 공식목표인 '진보적 민주주의'의 적법한 의미를 모두 부정한 채 진보당의 어떤 공식적 자료에도 나오지 않는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이 진보당의 "숨겨진 목적"이라며 추정해 판결을 내렸다.

나아가 헌재는 '진보적 민주주의' 도입 등을 이끈 '주도세력'의 성향이 이석기 의원 등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이라서 진보당은 북한식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헌재는 과연 자신의 주장에 맞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가. 어처구니없게도 몇 몇 당원들의 발언과 과거 행적을 제외하곤 어떠한 설득력 있는 증거도 내지 못한다. 그것도 10여 년도 더 지난 국가보안법 위반 판결이나, 1999년 이후 진보당의 특정 구성원들과 아무런 접촉이 없었던 김영환 등 변벌자들의 증언에 기초해 진보당 성원들의 사상과 신념을 판단하였다.

헌재가 이야기 하고 있는 '주도세력'도 문제점이 많다. 법학자들에 따르면 '주도세력'이라는 개념은 너무 자의적이어서 법률용어가 아니라고 한다. '주도세력'이 당의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세력이라면 이들이 당의 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 대의원회 등을 실제 주도했는지를 밝혀야 함에도 헌재는 이를 밝히지 못했다.

당 주도세력이 어떻게 전체 당원들에게 영향을 줬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도 없다. 이석기 의원과 2013년 5월 회동을 한 130여 명의 사람들이 이석기 전 의원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헌재는 설명하지 못한다. 나아가 이들 130여 명이 아니라 10만 당원들의 생각과 활동을 이석기 전 의원의 활동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은 논리적 비약일 뿐이다.

헌재는 북한을 추종하는 '주도세력'이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진보당 강령에 도입한 것을 문제 삼고 있다. 하지만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진보당에 가입한 당원들에 의해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구체화 될 수 있다. 헌재는 일반 당원들의 생각을 재단하고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자질은 관심법?

또 중요한 문제는 진보당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을 지녔느냐 여부다. 정당해산 문제는 엄격한 해석이 필요하므로 헌재 스스로도 단순한 위반과 저촉이 아니라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이 입증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구체적 위험성'은 '추상적 위험성'과 대비되는 법률적 용어로 고도의 입증책임이 요구된다. 즉, 민주적 기본 질서에 대한 실질적 피해가 발생할 위험성이 현실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해산은 추상적인 목적이나 의도가 기준이 아니라 현재의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위험성이 중요한 것이다. 설령 정당의 강령이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에 반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실현하려는 현재의 실천적 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정당을 해산해선 안 된다.

하지만 헌재는 '구체적 위험성'을 제대로 따지지도 않았다. 헌재가 이야기 한 것은 진보당 주도세력에 속하는 몇 몇 인사들의 발언 속에서 그들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추정 말곤 없다. 단순히 '북한추종' 이라는 말이 '구체적 위험성'이라는 엄격한 기준을 충족시킬 수는 없다.

이석기 의원 등이 참석한 2013년 5월 12일 회동 때 나온 발언만으로 폭동이나 정부전복의 위험을 현실로서 발생시킨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결국 헌재는 '이석기 의원 등이 얼마나 위험한가'란 질문에 끝까지 구체적인 답을 내놓지 않았다. 단지 몇 몇 재판관이 보충의견에서 "아주 작은 싹을 보고도 사태의 흐름을 알고, 실마리를 보고, 그 결과를 알아야 한다(見微以知萌 見端以知末)"는 고사를 인용했을 뿐이다. 이제부터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자질은 '관심법'이 있느냐 없느냐가 되고 말았다.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를 부정한 헌재

헌재는 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리면서 진보당 소속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을 지역구, 비례대표 가리지 않고 박탈했다. 이는 헌재의 월권행위다.

헌법, 헌법재판소법, 정당법에는 정당해산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지만, 당 해산 결정시 소속 국회의원의 자격이 상실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실제로 1962년에 제정된 제3공화국 헌법 제38조는 위헌정당 선언을 받은 정당의 소속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하지만 그 규정은 제4공화국 헌법 이래 삭제되어 지금껏 유지되고 있다. 필요에 의해 삭제한 규정을 헌재가 자의적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법률적 근거 없이 결정을 내렸다. 이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만든 법률에 입각해 판결을 해야 하는 법치주의 원리에 위배된다. 나아가 헌재의 결정은 소속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인 국회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며, 입법권을 입법부에 부여한 삼권분립의 원칙에도 반하는 것이다.

더욱 모순적인 것은 헌재가 진보당 국회의원직을 박탈했지만 광역의회 의원, 기초의회 의원에 대해서는 아무런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이는 헌법 제11조의 평등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헌재의 결정이 있은 후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비례대표로 뽑힌 광역비례 의원들에 대해 의원직을 박탈했다. 그러나 이 역시 선관위의 월권행위다. 광역의회 의원이나 기초의회 의원들도 정당이 해산되면 의원직을 상실한다는 법 규정은 없다. 더군다나 헌법재판소 판결문 어디에도 이와 관련한 내용은 없다. 헌재도 박탈하지 못한 자격을 행정기관에 불과한 선관위가 근거 법령도 없이 행정처분으로 지방의회 의원직을 박탈한 것이다.

대통령이 임명한 헌법재판소장이 운영하는 헌재와 국가의 한 부처라고 할 수 있는 선관위가 국민들이 직접 뽑은 정치인의 자격을 박탈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국민주권의 원리를 표방한 대한민국 민주주의 질서를 완전히 거부한 것이다.

냉전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 헌재 결정문

헌재는 진보당 해산을 결정하며 '분단 상황', '냉전'이라는 '한국적 특수성'을 이야기하며 정당해산과 관련된 보편적이고 국제적인 기준들을 한국에는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고 했다.

헌법원리가 남북대치를 이유로 무력화 될 수 있다면 권력집단이 헌법위에서 전횡을 부릴 수 있다. 군부독재와 10월 유신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보편적이고 국제적인 기준을 따를 수 없다면 왜, 어느 정도 따를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이유가 제시되어야 한다. 하지만 헌재는 이에 대해서도 설명이 없다. 결국 헌재가 자의적인 해석을 남발한 것으로, 헌재가 헌법정신을 부정하고 국민위에 군림한 꼴이다.

헌재는 진보당이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방어적 성격의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으며, 북한인권 문제 등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문제 삼고 있다.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은 일심회 관련자를 당내에서 이중처벌하지 않은 것도 지적했다.

하지만 북한의 핵개발이 방어적 수단이란 이야기는 미국의 1999년 '페리보고서'에도 등장하는 내용이다. 북한 인권문제 역시 북한이 극도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사안인 만큼 남북간 대화를 추구하는 입장에서 상황에 따라 어떤 입장을 표명할지는 판단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일심회 관련자들의 처벌 문제는 진보당이 국가보안법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만큼 제명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헌재는 정부의 마음에 흡족하게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북한을 추종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헌재가 나서서 '십자가 밟기'를 종용하는 꼴이다.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틀린 헌재 결정문

문제점투성이의 결정문인 것도 모자라 헌재는 사실관계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헌재는 한호석씨를 두고 당 주최 회의에 참석해 각종 발언을 했다고 결정문을 작성했지만 정작 한호석씨는 국내에 입국한 적이 없었다. 헌재가 당원교육위원회 위원이라고 언급한 이의엽, 방석수, 안동섭씨는 교육위원이 아니라 초빙강사이거나 초빙 예정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헌재가 2013년 5월12일 회동에 참석했다고 밝힌 인천시당 위원장 신창현씨는 당시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정훈씨가 북한으로부터 노력훈장을 받았다는 헌재 결정문의 경우 정작 이정훈 씨의 결정문에는 빠져있는 내용이다. 이정훈 씨는 간첩죄 혐의관련 무죄판결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진보당에 적대적인 증인들의 말만을 가지고 사실인 양 단정 짓는 대목이 상당수다.

헌법재판관들이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당해산을 청구한 법무부 주장을 공소장에 그대로 베껴 쓴 것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번 진보당 해산과 관련한 헌재의 결정문은 우리 사회 민주주의가 완전히 사망하였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종북'논리 앞에선 자유도 민주주의도 없다. 국민주권의 시대에 맞게 무너진 민주주의를 반드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원고는 <우리사회연구소>에 함께 실리는 글입니다.
#통진당 #진보당 #이정희 #박근혜 #종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