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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빈에 의한, 김우빈을 위한 영화

[리뷰] <기술자들>, 탄탄한 조연진에도 부족한 짜임새

15.01.02 20:57최종업데이트15.01.02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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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 멀티플렉스 앞에서 기웃거리다 한 영화의 포스터에서 배우 고창석이 보였다. 그 옆에 있는 사람은 잘 모른다. 고창석의 무한 변신에 가까운 필모그래피에 반했기 때문이다. 고릴라만한 덩치에서 나오는 아우라는 물론 순박한 덥수룩한 수염 사이로 보이는 아기 미소는 나를 무장해제 시키고 만다.

▲ 영화 <기술자들> 김우빈에 의한, 김우빈을 위한 영화 ⓒ 롯데 엔터테인먼트

'케이퍼 무비'에서 필수불가결한 스토리의 짜임새와 지능 싸움, 반전과 액션은 스릴러와 심리극을 좋아하는 내게 상당히 끌리는 영화다. 게다가 고창석이 나온다니 1초의 고민도 없이 선택했다. 그런데 잘 모르는 배우가 나왔다. '김우빈'이라는... 잘 모르겠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인데...

생각이 났다! 언제부턴가 모 건설회사의 CF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였다. 커다란 키에 잘생긴 얼굴, 쭉 빠진 몸매, 그리고 천사 미소. 대역을 안 쓴다는 그의 대사처럼 정말 이 영화에서 대역을 쓰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지난 주 토요일에 본 영화는 김홍선 감독의 <기술자들>이다. 앞선 영화 <친구2>에서 주목할 만한 배우로 이름을 날렸던 배우 김우빈을 정면에 내세우고 김영철, 고창석, 조윤희, 임주환 같은 개성이 톡톡 튀는 배우들로 채워졌다. 김우빈을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의 파워만으로도 영화 한 편은 너끈히 만들 텐데 왜 굳이 김우빈을 떡하니 주인공으로 내세웠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말쑥한 옷차림에 흐트러지지 않는 머릿결은 CF의 모습에 가려져 캐릭터에 집중하는 데 상당히 힘들었다. 영화 종반 인천 세관에서 총을 맞고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까지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김우빈이라는 배우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영화의 짜임새와 무게감은 조연으로부터

<기술자들>과 유사한 영화 두 편만 꼽자면 전지현과 김혜수, 김수현, 이윤석, 이정재 등이 출연했던 <도둑들>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코믹 무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언급할 수 있다. <도둑들>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동원 관객을 놓고 비교할 수 없는 영화지만 탄탄한 스토리와 조연의 캐릭터를 제대로 구현하고 이를 연출해 낸 감독의 역량은 높이 평가한다. 게다가 주연급 배우들의 캐릭터에 녹아드는 연기의 밀도가 상당히 깊어 이 두 영화는 조연, 시나리오, 연출의 완벽한 삼박자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도둑들>의 도둑들은 제각기 장기를 가진 여러 명의 캐릭터들이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었다. 특히 전지현과 오달수는 제 옷을 입은 것처럼 완벽한 얼치기의 입체감을 톡톡히 살렸을 뿐만 아니라 홍콩 배우 임달화가 보여준 홍콩 느와르의 그림자는 김해숙과의 짤막한 애정 신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케이퍼 무비에서 보여줄 수 있는 그 이상을 보여준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 영화 <도둑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 <기술자들>과 어느 정도 비교분석을 해 볼만한 케이퍼 무비로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과 김주호 감독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NEW, 쇼박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역시 차태현을 중심으로 한 성동일, 신정근, 고창석, 코믹 라인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이 조화는 갖가지 에피소드가 본래의 의도를 벗어나지 않게 어느정도 가볍게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흘러간다. 여기에 오지호의 주군을 향한 충성심과 여배우 민효린의 어느 정도 치명적 인어 공주 역할은 촘촘한 재미를 주었다.

이에 비해 <기술자들>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조연의 적절한 배치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의 부조화가 커다란 단점으로 작용한다. 내게는 보석 같은 배우 '고창석'이 김우빈을 위한 너무나 평면적인 역에 그쳤다. 뿐만 아니라 출연 자체만으로도 영화의 가치를 더 해주는 배우 김영철은 과거 이병헌과 함께 출연했던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처럼 무자비하고 용서를 모르는 냉혈한을 연기하고자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출연 비중에 비해 그만이 표현할 수 있는 위압감과 굵직한 연기의 스펙트럼을 발휘하지 못하고 연기처럼 사라진다.

게다가 이 영화의 조연 중 유일한 여성인 '조윤희'는 포스터와 같은 치명적인 매력을 주지 못하고, 남심의 감정에 휘둘리며 수동적인 캐릭터로 연출된다. 왜 감독은 조윤희의 캐릭터를 이토록 단순화 시켰을까? 충분히 자기만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영화의 흐름에 다양한 스토리라인을 구축할 수 있는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단선적인 인물에 머무르게 했나 참 궁금하다.

그래도 볼 만하다

한국판 <오션스 일레븐>을 보는 것 같은 내러티브는 그래도 초반의 어색함과 산만함을 이겨내고 나름대로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전진한다. 중반 이후 CF를 연상시키는 김우빈의 연기가 조금씩 익숙해지며 나름 재미를 선사했다.

관상 자체가 사람 뒤통수친다는 종배 역의 이현우, 차가운 킬러 임주환, 그리고 조달환의 깨알 같은 연기는 이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형사반장 역의 신승환은 지난 2006년에 개봉한 고소영 주연의 <아파트>에서 형사로 나온 강성진처럼 '캐스팅 미스'라고 생각했다. 출연작마다 악역 내지 단출한 코믹 역에 불과했던 그가 휘하의 형사들을 진두지휘하며 <기술자들>을 잡기 위해 나대는 모습은 도저히 보기 힘들었다.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달다고 했던가? 너무 평범한 얼굴에 항상 당하기만 하던 그의 캐릭터가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자리 잡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나의 배역에 몰입하기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연습하고 또 노력했을까! 인천세관에 침입한 <기술자들>의 뒤를 쫓는 그의 진지함은 그만이 가질 수 있는 캐릭터를 구현해 낸 것 같다.
  

▲ 영화 <기술자들> 왼쪽부터 고창석, 이현우, 조윤희, 김영철 ⓒ 롯데 엔터테인먼트


뛰어난 금고털이 기술자이며 설계 역까지 도맡아 하는 김우빈, 정치인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돈줄을 쥐고 있는 김영철, 천재 해커 이현우, 인천 세관을 초토화시키는 폭발물을 제조할 정도로 만능 손을 가진 고창석. 이들이 벌이는 와이어 액션이나 치밀한 자동차 추격신, 그리고 나름 고민하며 내던진 반전은 얼추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낸 것으로 보인다. 조금만 힘을 빼고 느긋하게 감상한다면 킬링타임용으로는 적격이지 않을까?

금고털이! 김혜수와 김우빈이 붙는다면?

김우빈의 금고털이 기술은 가히 따라올 자가 없다. 아무리 최첨단 기술로 제작된 금고라도 그의 천부적인 감각아래에서는 늘 열려있는 은행 금고에 불과하다.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냉철함도 그의 기술을 높이 평가하는 대목이다.

그러면 <도둑들>의 김혜수와 <기술자들>의 김우빈이 금고털이를 시작했다면 누가 먼저 그 문을 열 수 있을까? 금고를 뚫어 청진기를 대고 손잡이를 돌리며 잠금장치의 그 미세한 소리를 해석해 내는 능력은 누가 탁월할까? 영화에서 만난 적이 없으니 알 수 없다만 상상은 해 볼 수 있다.

▲ 영화 <도둑들>, <기술자들> 금고털이에 관한 한 최고의 기술자이며 도둑인 김혜수와 김우빈이 붙는다면? ⓒ 롯데 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난 김우빈에게 한 표 건넨다. 김혜수는 감정에 휘둘리며 일을 그르칠 수 있는 단점이 노출된다. 금고 털기는 기술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 팀워크와 그 팀워크 간에 풍기는 미묘한 감정까지 읽어내며 그것을 숨길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김우빈은 철저히 자신을 숨길 줄 안다. 그리고 그 자신은 김영철이 만들어 놓은 설계에 동참한 것이지만, 결론은 그 설계 또한 김우빈이 수 년에 걸쳐 치밀하게 계산한 설계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것이 이 영화의 반전이며 김우빈만의 능력이다.

기술자들 도둑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김혜수 김우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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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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