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소박하면서 아름다운 애니메이션 영화 <생각보다 맑은>

제2의 '신카이 마코토'와 현실 속의 선택을 고민해보는 작품

15.01.17 15:10최종업데이트15.01.1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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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보다 맑은] 포스터 ⓒ Studio Allo


<생각보다 맑은>은 네 가지 에피소드로 이뤄져 있습니다. 각 에피소드엔 무언가를 희망하거나 동경하는 캐릭터들이 존재하죠. 인물들은 희망과 현실사이를 갈등하며 바라던 길을 가거나 현실을 택하기도 합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인 <럭키 미>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대학원 진학을 택한 청년 두식의 이야기입니다. 현실은 감안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가려는 것을 보면 때론 우유부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 청년이 현 직업과 현실 사이에서 괴리하는 여배우 티티를 만나며 짝사랑에 빠집니다. 고민하는 그녀에게 마냥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충고하는 그를 보면 참 무책임하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하지요.

한때는 두식의 꿈을 이해해주었지만 아주 현실적으로 변해버린 누나도 등장합니다. 누나는 퇴근 후에도 항상 업무가 끊이질 않습니다. 이상을 좇는 두식과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티티, 그리고 아주 현실적인 누나 사이에서 이뤄지는 대화들이 관객들에게 자연스레 질문을 던져주기도 하지요.

두 번째 에피소드인 <사랑한다고 말해>는 냉담한 척 몰래 연애하는 사내 커플 김부장과 은솔의 이야기입니다. 결혼을 앞두고도 무뚝뚝해 표현을 안 하는 건지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는 김부장에게 은솔은 사랑의 표현을 들으려 하죠. 그녀는 집안에서 시집에 대한 압박을 받기도 합니다.

또한 주변에서 공개적으로 알콩달콩 연애하는 이들의 상황이 부럽기도 하고, 그들로부터 느껴지는 시선이 한편으로는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죠. 은솔의 억압돼있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이 판타지마냥 표출되며 그 정도를 지레짐작 할 수 있게 표현됩니다. 은솔은 결국 김부장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순응해야 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 [스틸컷] 갈등 중에 갑작스레 개그가 봇물 터져나오기도 한다. ⓒ Studio Allo


세 번째 에피소드인 <코피루악>은 어두운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치열한 입시제도 속에서 하고 싶은 것과 현실 사이를 고민하는 소년소녀의 갈등을 그리고 있죠.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좋은 예미는, 하와이안 음악을 좋아하지만 대학입시로 인해 기타를 내려놓은 강보를 이해할 수 없어하죠. 그리고 그 사이에 이상을 강요하는 험상궂은 외모의 선배, 전에 좋아하는 기타를 내려놓은 전적이 있는 고깃집 아저씨가 끼어들며 이상과 현실사이의 갈등을 적절하게 이어갑니다.

기타리스트 강보는 적절한 직장을 얻어 괜찮은 벌이를 벌면서 비싼 루악커피를 마셔야 한다는 갈등에 시달리죠. 예미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고깃집 아저씨가 선택했던 것처럼. 예미가 선택한 결과가 강보와 어떻게 다르며 또 그 차이점에서 오는 현실이 어떻게 다른지 지켜보며 결론을 도출할 수 있도록 하죠.

네 번째 에피소드인 <학교 가는 길>은 푸들 마로가 집안 문이 열린 틈을 타 세상 밖으로 나오며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마로는 새의 자유로움을 동경하죠. 아파트의 모든 개들이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날아가는 새를 향해 짖는 장면을 보면 충분히 유추가 가능합니다. 마로는 도시를 지나 숲으로 진입하면서 낯설고 설렌 것들과 마주하게 되죠. 날지 못하는 까마귀와 일행이 되며 여행이 계속되고, 때로는 도움을 주는 기린을 만나기도 합니다.

마로가 동경하던 자유로움은 마냥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비에 젖어 축축하고 힘들기도 하며, 마치 재규어 같은 위협적인 야생들개와 추격전을 펼치기도 하죠. 자유에는 또 다른 힘든 이면이 있음을 갑작스런 여행을 통해서 깨달아가죠. 마로는 힘든 이면이 있지만 자유로운 세상 속에 남았을까요, 아니면 다시 주인을 만나 조금 덜 자유로운 푸근한 집을 다시 찾아가게 될까요. 마로 역시 선택을 하게 됩니다.

▲ [스틸컷] 일행이 된 까마귀는 마로가 동경하던 자유를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 Studio Allo


이 네 가지 에피소드가 모두 다른 그림체로 그려지며, 마치 각각을 다른 사람이 작화한 것 같은 착각을 주기도 합니다. 각 이야기의 제작년도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오는 차이점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것이 완연 색다른 이야기를 제공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면에서 관객에게는 신선함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몰입을 위해 한 개의 에피소드 안에서 상황마다 인물의 그림체가 바뀌는 것 또한 흥미롭죠. 개그코드도 소박하면서 잔잔한 웃음을 전해주어 그 푸근함을 더합니다.

에피소드를 개별적으로 볼 경우, 마무리 되지 않은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민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상황 제시는 되는데 명확하게 교훈을 주려하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네 가지 에피소드를 따로 보지 않고 연결지어보면 관객에게 교훈을 던져주려 한 흔적이 보입니다. 각 에피소드 인물들의 선택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지요. 이상향을 선택하든, 혹은 현실적인 것을 선택하든 도출되는 결과들은 모두 극단적이지 않기 때문에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점 또한 존재하는 것은 어쩔 수 없군요. 작화스타일이 다르지만, 이야기의 전개방식이 소박하고 푸근한 느낌을 강조하려 한다는 점에서 각기 다른 이의 작품이라는 느낌을 주진 않습니다. 실제로 같은 감독의 작품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만요.

또한 모든 에피소드가 새롭거나 신선한 소재는 아닙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상 혹은 동경, 그리고 현실 사이에서의 갈등 이야기는 너무 자주 등장하는 고민거리지요. 개별적으로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고 싶은 일과 현실사이의 괴리, 사랑 표현을 듣고 싶어 하는 여자, 입시고민 속 청소년의 자아 갈등, 동물이 갑작스레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 등은 굉장히 익숙한 소재들이죠.

포스터에 나와 있는, 한국 애니메이션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뉴타입이라는 평 또한 상당히 무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여타 다른 요소를 말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평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작화 또는 스토리텔링과 관련된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기존의 애니메이션 혹은 만화 작가들에게 모욕적일 수 있겠죠. 뉴타입의 작품이라는 것을 주장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소박하면서 푸근한 재미를 선사하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사상 최연소 정식 애니메이션 개봉작 감독의 작품입니다. 미래의 '신카이 마코토'가 되길 기대해봅니다. <생각보다 맑은>, 오는 1월 22일 개봉.

생각보다 맑은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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