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저항해 갔던 여성, 하녀

김기영의 <하녀>, 임상수의 <하녀>와 무엇이 다른가

검토 완료

한가람(rkfka4964)등록 2015.01.24 14:09

임상수 감독의 <하녀> (왼쪽)와 김기영 감독의 <하녀> (오른쪽) ⓒ 네이버 영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1960년작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김기영 감독은 유난히 팜므파탈적, 요부, 자기파괴적 여성상을 주로 다룬다. 수동적으로 '내가 사라져드릴게요.'라고 말하는 임상수의 하녀와 달리 김기영의 하녀는 뒤틀린 욕망의 소유자다.

<하녀>에선 계급 갈등에 따른 대립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중산층 가정, 하녀. 근대성과 전근대성. 가정의 유지와 계급 상승의 욕구 간의 대립을 나타내고 있는 이 영화는 미학적으로 분석해볼 이유가 충분하다. 존재하는 것들을 궁극적인 수준으로 기술한 것이 바로 미의 특징이다. 미가 없다면 전체는 해체된다. <하녀>에서의 미는 전체적 공포 서스펜스를 이끄는 여성의 '한'일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계급 문제뿐만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2층의 피아노는 이 영화의 미학적 소재를 완성시킨다. 피아노는 동식과 같은 지식층, 중산층을 상징한다. 결국 그들보다 낮은 존재인 하녀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하녀는 영화가 전개 될수록 피아노 앞에 더 가까이 다가선다. 하지만 하녀는 피아노를 연주하지 못한다. 그저 괴기스러운 소리를 창조해 낼 뿐이다. 하녀의 계급 상승에 대한 욕구가 좌절 되는 순간이다.

<하녀>의 형식적 미학 특징은 명암 조절에서 이뤄진다. 그건 아무래도 오래 전 만들어진 흑백 영화다 보니 그럴 것이다. 특히나 하녀에게서 그 특징은 여실히 드러나는데, 우리는 이 부분을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하녀의 단정히 묶였던 머리는 동식과의 육체적 관계 후엔 풀어 헤쳐진다. 또한 전에는 입지 않았던 까만 원피스를 입는 등 악녀의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한다.

언뜻 보면 <하녀>는 남녀의 성적 욕망만을 다룬 것 같다. 그러나 실은 내면엔 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갈등이 숨어있다. 영화가 만들어진 1960년대는 급격한 산업화가 일어나던 시대였다. 이런 시대적 특징은 영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장이라는 배경 설정, 스토리 전개와 상관없이 자주 등장하는 기차 등이 그렇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사회 전반적인 인식은 같았다. 여성은 조신해야 한다. 현숙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투성이. 그걸 하녀란 캐릭터는 보기 좋게 깨버린 것이다. 극 초반에서 경희가 하녀에게 천 원을 쥐어주며 동식의 집에 들어가게 하는 부분을 살펴보자.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여공은 시대를 맞춰가는 능동적인 직업 여성이다. 그에 반해 하녀는 어떤가. 하녀라는 직업은 전형적인 육체 노동의 표본이다. 변화하는 시대에서 떨어져 있는 타자. 바로 하녀인 것이다.

김기영 감독 <하녀>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영화는 끊임없는 욕망의 충돌로 전개된다. 남편과 아내의 사실을 은폐하고,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과 하녀의 신분 상승을 향한 욕망. 두 욕망이 대립되며 그 욕망을 통해 영화는 양쪽 누구에게도 완전한 승리를 주지 않은 채 몰락해버린다.

이 영화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악녀는 하녀다. 그러나 나는 그녀만이 악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계급적 지위 유지를 위해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약자를 유린하고, 희생시킨 동식과 그의 아내야 말로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진정한 악인이라는 확신이 든다. 감독의 입장 또한 나와 같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 영화에서 '쥐'와 같은 존재만이 먹는 쥐약을 동식에게도 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보며 아쉬웠던 게 하나 있다. 결말에서 동식은 카메라를 보며 말한다. '이런 일은 절대 있어선 안 되겠죠.' 이 모든 건 결국 동식 부부의 상상이었던 것이다.감독이 이러한 결말을 택한 이유는 그 시대 사상을 의식해서인 것 같다. 차라리 임상수 감독의 <하녀>가 생각났다. 우리에게 단적인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는 캐릭터가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너네 그렇게 살고 싶니?'라고 말했던 윤여정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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