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세종대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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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6·25 때 나온 얘기며 그동안 겪은 얘기를 했다. 그는 내 말을 듣고 고생을 많이 했다면서 빨리 가족을 찾아 행복한 생활을 하라고 격려해 주었다. 나는 낯 모르는 사람을 집에 재워주며 식사도 주는 주인께 감사 드렸다. 그는 원주로 가면 강원도 피난민이 많다고 알려 주었다.
이튿날 산을 넘어 이천읍에 갔다. 깊은 분지에 자리 잡은 이천읍은 매우 고요한 시골 마을이었다. 인구는 얼마 안 되는 자그마한 마을이었다. 잘 정리된 논 벌판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이천읍을 바라보며 동쪽의 높은 산을 쳐다봤다. '저 산을 넘어가면 강원도겠지' 나는 하루빨리 강원도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발을 재촉했다.
호주머니에는 얼마 안 되는 돈이 조금 남아 있었다. 이것으로 무엇을 사 먹으면 노잣돈이 금방 떨어질 판이었다. 얼마를 걸어가니 세종대왕릉이 보였다. 간판에 '여기는 능서면입니다'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세종대왕이 바로 여기에 잠드셨구나' 생각했다.
오후 늦게 여주에 도착했다. 여주는 평야 가운데 있는 읍이었다. 건물은 볼 것 없는 촌이나 다름없는 도시였다. 나는 거기서 '차를 타야 원주까지 갈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버스에 탔다. 주차장에 버스가 섰을 때 "껌이요, 담배요, 고구마 사세요, 떡이나 빵 사세요" 하는 처녀들의 소리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른 지역에선 기차가 역마다 서면, 역이 떠나가라 큰소리로 외치던데 여기 아가씨들은 얼마나 고운 목소리로 말하는지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간을 녹이듯 말하는 것을 보고 탄복을 했다. '과연 고운 얼굴에 고운 목소리구나' 하고 정신이 쏙 빠져 바라보았다.
여주에서 얼마 안 가 남한강을 건넜다. 강변에는 떡도 팔고, 술도 파는 곳이 있었다. 나는 돈이 없어 사 먹지 못하고 군침만 삼킨 채 눈요기만 했다. 들판의 벼는 거의 벴고 볏단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공교롭게 비가 오기 시작했다.
얼마를 가니 산들이 나오는데 비탈길을 따라 산길은 구불구불 오르막이었다. 산비탈에 구불구불 쟁반을 펼쳐놓은 계단식으로 만든 논을 보고 나는 저런 산에 어떻게 층층계단으로 만들어 논을 만들었나 생각했다. 높은 산은 아니었으나 조금은 험했다.
문막을 지나면서 논에 매어놓은 벼가 그대로 비를 맞는 것을 보면서 저 벼가 젖으니 농민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생각했다. 그날 저녁에 원주에 도착했다. 원주시는 별 볼 것이 없었고 나는 이틀 동안 피난민 수용소를 찾아 살펴보았으나 친척이나 아는 친구가 한 사람도 없었다. 나는 매우 실망해 이제는 가족을 찾는 걸 그만두고 월동 준비나 하면서 우선 내 살 길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중앙동에 방을 정하고 낮에는 시장에 나가 일을 했다. 짐을 싣기도 하고 부리기도 하며 며칠간 일했다. 그런데 들리는 말에 강원도 영월 중석 광산에 가면 돈벌이가 잘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바로 영월로 출발했다. 원주서 동으로 신림 쪽을 향하는 길은 비록 좁기는 하였지만 평지가 이어졌다.
원주시를 빠져 나가는데 미군 부대가 많이 보였고, 여러 중장비도 눈에 띄었다. 길가에는 흙을 말려 구운 벽돌로 집을 짓고 있는 것도 보였다. 나는 길이 넓게 닦여 있는 것을 보고 '이 산골에도 군대 때문에 길 만큼은 널찍하게 잘 닦았구나' 생각하며 길을 걸었다.
얼마쯤 가니 기찻길이 산자락을 돌며 똬리 모양을 한 철로가 보였다. 나는 그 고개를 넘어 저녁 때 신림에 도착했다. 신림은 계곡이 유명한 곳으로, 충북 제천군(현재 제천시)과 경계를 마주하고 있는 곳이었다.
신림에 도착하니 철도 경찰이 나를 보고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나는 "영월로 갑니다" 하고 대답하니 "뭐 하러 가냐?" 라고 재차 물었다. "광산에 가면 돈벌이가 좋다 해서 가요" 라고 말하니 "당신은 거기 가도 안 될 것이오. 군대에 나갈 연령이 된 사람은 받지 않으니 괜히 고생 말고 다른 데를 알아보는 것이 좋겠소"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쉽게 발길을 돌렸다.
그날 저녁 잠을 자려 한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정미소를 하는 집이었다. 주인은 저녁 식사 후 "우리 일이 바쁜데 도와주시오. 겨울을 나도 좋고 얼마든지 있어도 좋소"라며 정미소로 안내했다. 도정기에 낡은 일제 닛산 엔진을 걸어 놓았는데 자기가 엔진 기술이 없어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다음 날부터 난 방아 찧는 일을 시작했다. 일은 매우 바빴다. 무거운 쌀가마니를 다루는 일이 내게는 힘에 부쳤다.
며칠 일하고 나니 하루는 동네 노인이 나에게 고향이 어디며 몇 살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다. 노인은 나보고 객지에서 고생이 많다며 떠돌이 생활을 그만두고 정착된 생활을 하라고 일러주었다. 나도 그렇게 되길 원한다고 대답했다.
노인이 얘길 하길 "우리 집에 처녀가 있는데 내일 저녁에 와서 구경하고 마음이 있으면 같이 살아보라" 고 했다. 나이가 14살로 아직은 어리지만 아주 잘생기고 착하니 몇 해만 지나면 좋은 색시가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도 결혼할 생각이 없어 가타부타 대답도 않고 그냥 흘려 듣고 말았다. 그 이튿날 정미소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주인집 처녀가 내게 하는 말이 "어제 저녁에 말하던 처녀가 바로 쟤예요" 하고 가리키는데 단발머리에 책보를 허리에 차고 동무들과 신림국민학교로 가는 길이었다.
나는 산에 올라가 나무도 해오고, 여러 일을 거들었으나 품삯은 얼마라고 작정도 안 하고 일을 했다. 주인 양반은 본처를 잃고 후처를 데리고 사는데 열아홉 먹은 큰아들과 고만 고만한 딸 둘이 있었다. 엄마와 아이들 사이에 가끔 서로 시샘하는 일도 벌어졌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새엄마한테만 관심이 커. 우리는 남인걸" 하며 새엄마를 미워했다.
밥벌이를 찾아 떠난 여정

▲ 옛 단성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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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정도 일한 후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겨울을 나 봐야 별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11월 중순경 원주로 가서 중앙동에 자리를 잡고 일을 했다. 11월 하순까지 일했는데 시골에서는 고생만 했지 앞날이 보이지 않겠다는 생각하고 서울행 버스를 탔다.
밤늦게 서울운동장 맞은편에 있는 경기여객 터미널에 도착했다. 서울 시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남대문 근처에 있는 하숙집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다음 날 남대문 시장에서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는데 지나가던 노인이 "뭘 찾느냐?"고 물었다.
일자리가 없냐고 하니 "그렇게 맨몸으로는 종일 돌아다녀도 소용없어. 작업복에 지게를 지고 있어야 일이 생기지" 했다. 그 말을 듣고 청량리로 가서 지게 하나를 700원에 산 후 허름한 군복을 검게 물들여 입고 시내로 나갔더니 여기저기서 불렀다. 지게로 한 번 짐을 나르면 2원에서 5원까지 받았다. 국밥 한 그릇이 10원이었다. 하루 열 번 이상 일을 받아 돈벌이가 그런대로 잘 됐다.
나는 다시 중앙시장에 하숙을 정하고 지게 일을 하면서 고정적 벌이를 찾으려고 했다. 하루는 동양영화주식회사 하우스보이가 나를 보더니 일 좀 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아무 일이나 다 하겠다고 하니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후 뚱뚱한 사람이 나보고 "땅 속에서 일하면 8시간에 2천 원이고 땅 밖에서 하면 천 원인데 하겠소?"하고 물었다. "무슨 일인데요?" 물었으나 그건 묻지 말고 따라만 오라고 했다. 도착한 곳은 옛날 대륙극장이었던 단성사였다.
단성사의 내부 변소가 내려 앉아 망가졌는데 그것을 수리하는 작업이었다. 인부들이 나를 보더니 하는 말이 "십장님, 어쩌면 그렇게 사람을 잘 구했어요?" 하며 야단들이었다. "당신 참 잘 왔소"하며 당신 같은 사람이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참 잘됐다며 반가워했다. 나는 영문을 모르고 있다가 작업복과 모자를 챙겨 입고 가보니 화장실 하수구가 얼마나 좁은 지 들어가 매달려서 간신히 작은 구멍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똥물이 가득한 곳에서 돌과 벽돌을 담아 주면 위에서 끌어올려 내버리는 작업을 했는데 여덟 시간을 하고 나니 나보고 여덟 시간을 더하라고 해서 나는 꼬박 열여섯 시간 일을 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밤 11시가 되었다. 나는 그날 하루 사천 원을 벌었고, 다른 사람은 이천 원을 받았다. 이튿날, 그 다음 날도 계속 야간 작업을 해서 그 일을 마쳤다. 나는 사흘 만에 거금 만 이천 원을 손에 쥐었다. 그 돈이면 보름을 일했어야 했는데 시골 같으면 한 달 품삯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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