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원전 1호기의 운명, 이들이 결정해도 될까

[주장] 수명연장 심의 방기하는 원자력안전위원들... 이건 아니다

등록 2015.02.13 21:11수정 2015.02.14 09:54
4
원고료로 응원
필자는 월성원전 1호기 민간검증단 위원으로 지난 12일 열린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월성원전 1호기 수명연장 심의에 배석했다. 당시 현장을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기자말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월성원전 1호기 수명연장 심의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우리나라 원전 안전에 대한 시금석이 될 만큼 중요한 사안이다. 그런데 지난 12일 장장 13시간에 걸쳐 진행된 제34회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를 보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원전 위험으로부터 국민안전을 보호할 수 있는 집단인지 의문이 생긴다.

무리한 회의 진행에 안전성 이슈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표결로 몰아가는 일부 위원들의 행태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위원장의 모습은 안전을 우선하는 원자력안전위원의 행동으로 보이지 않았다.

심의 도중에 돌변한 위원들... "오늘 결정하자"

지난 12일 오전 10시가 조금 지나서 시작된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 오전 내내 월성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주) 조석 사장의 보고를 들었다. 두 시간마다 10분씩 쉬겠다던 이은철 원자력안전위원장(아래 위원장)은 점심시간이 돼도 정회 없이 회의를 강행했다. 오후 2시가 돼서야 점심식사를 위해 정회됐고, 오후 3시에 속개된 뒤 회의는 오후 8시까지 이어졌다.

일부 위원들은 집중력이 떨어지고 충분한 심의가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회의 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은철 위원장은 오후 8시께 "끝까지 한 번 해봅시다"라면서 사실상 표결을 암시하며 회의 속개를 강행했다. "위원들이 요구한 것"이라는 해명과 함께 말이다.

앞서 지난 11일 이은철 위원장은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안전성을 충분히 판단할 때까지 심의하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간만 길게 끈다고 충분한 심의가 이뤄지는 건 아니다. 충분한 휴식과 식사를 보장해야 심의가 원활하게 이뤄진다. 위원들을 지치게 만든 다음에 표결로 몰아가려고 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위원장의 비정상적인 회의 운영에 빌미를 제공한 위원들이 있다. 일부 위원은 오후 8시께 정회한 자리에서 "오늘 결정하자" "오늘 밤을 새워서라도 끝내자"라면서 노골적으로 표결을 요구했다. 심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는데 정회 후 돌아온 자리에서 갑자기 표결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남아 있는 안전성 논란


a  월성원전이 가장 가깝게 보이는 나아해변.

월성원전이 가장 가깝게 보이는 나아해변. ⓒ 이지언


월성원전 1호기 수명연장 안전성 심의는 스트레스 테스트 검증결과에 대한 것과 계속운전 심사결과에 대한 것 두 가지로 나뉜다. 스트레스 테스트에서는 민간검증단이 '불합격', 원자력안전기술원이 '합격'이라는 전혀 다른 결론을 내렸다.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는 원자력안전기술원의 손을 들어줬다. 첫 심의를 진행한 1월 15일에는 스트레스 테스트 검증결과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만 10시간을 할애했다.

지난 12일 심의 때는 13시간 마라톤 회의를 했지만, 한국수력원자력(주) 보고 이후 월성원전 1호기 스트레스 테스트 검증에 대한 심의는 1분야인 지질지진 분야만 마쳤을 뿐이다. 나머지 '스트레스 테스트 검증결과의 차이'는 최신 기술 기준 적용여부 논의 후로 미뤘다.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끝낸 상황에서 법적인 심사인 계속운전 심의는 본격적으로 진행되지도 않았다.

그때가 오후 8시였다. 정회한 상태에서 일부 위원이 결정을 요구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정작 회의시간에는 발언이 전혀 없던 일부 위원들이 무작정 "오늘 결정하자"고 입을 떼자 강행 발언이 이어졌다. 김익중 위원이 아홉 쪽에 이르는 계속운전 심사 과정의 질문 내용을 제출하자 한 위원은 밤을 새서라도 끝내자고 재촉했다.

한수원은 월성원전 1호기에 영향을 미치는 지진영향을 평가하는 데 달랑 인근의 두 개 단층만 고려했고 원안위는 이 결과에 대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논문으로까지 보고된 62개의 활성단층을 민간검증단이 찾아냈지만 이를 배제한 부실한 평가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R-7(격납건물 압력경계 이중화)을 수명연장 심사에 적용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캐나다는 이미 1991년부터 기준 적용을 의무화했고, 최근까지 최신 안전 기술 기준을 강화해왔다. 그런데도 이은철 위원장은 회의를 주재하면서 'R-7 철학'만 반영되면 된다는 주장을 계속하면서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말라고 논의를 잘랐다.

하지만 정작 위원장은 그 '철학'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고, 최신 기준 미반영이 원자력안전법 위반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원자력안전법 시행령 38조에는 '계통·구조물·기기에 대하여 최신 운전경험 및 연구결과 등을 반영한 기술기준을 활용하여 평가할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계속운전을 위한 주기적 안전성 평가에는 반드시 최신기술 등이 반영되어야 함"이라고 법령해석을 한 바 있다(장하나 의원 조사의뢰에 의한 국회 입법조사처의 2015년 2월 5일 조사회답).

묵살된 토론 요구... 제기된 문제에 대한 심의는 어떻게?

이날 회의에 참석한 '원자력 안전과 미래' 이정윤 대표는 'R-7'의 핵심 의미는 '금속 용기'(Metal containment), 격납건물은 금속으로 완전히 차단돼 있어야 한다는 점이란 것을 인지시켜줬다. 하지만, 월성 1호기는 금속이 아닌 물로 경계가 돼 있거나 아예 그런 경계조차 없는 곳이 있다는 게 확인됐다.

월성 2~4호기는 당시 최신 기준을 적용해 1호기와 달리 수문게이트와 격리밸브를 달았다. 원자력안전기술원은 개선된 사항에 대해 "돈만 많이 들고 방사선 안전성 측면에서 별 효과가 없다"는 궤변을 내놨다. 김익중 동국대 교수가 월성 2호기에는 있지만 1호기에는 없거나 적은 14가지의 밸브와 설비도 지적했다. 하지만, 회의시간이 길어지자 부위원장인 김용환 사무처장은 다음부터는 이런 문서를 가져오지 말라며 노골적으로 타박했다.

참석한 외부전문가들은 자료의 접근성 보장과 공개토론을 요구했지만 묵살됐다. 또 민간검증단은 원자력안전전문위원이 '월성1호기 스트레스 테스트 평가가 기준에 적합하다'고 한 점과 '안전 개선사항을 수명 연장 이후에 진행해도 된다'는 검토보고서를 올린 것에 대한 공개토론을 제안했지만 역시 묵살됐다. 제기된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심의하지 않은 채 표결을 강행하려고 한 것이다.

원자력안전기술원과 원자력안전전문위원을 믿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지난 회의에 이어 이번에도 나왔다. 그런데 질의응답 과정에서 서균렬 전 원자력안전전문위원은 "준비된 문서만 받아본다"고 답변했고, 장순흥 원자력안전전문위원장 역시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작성한 자료(심사보고서)를 볼 뿐 원 자료를 보는 게 아니다"라고 실토했다.

원자력안전기술원은 재정적인 독립도 못한 출연기관이다. 직원도 충분하지 않아 심사능력이 있는지 의문인데 심의 중간중간 한수원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정도면 사실상 사업자 대변인 역할을 한 셈이다.

월성1호기 수명연장 심의는 오는 26일로 미뤄졌다.

심의를 거수기로 생각하는 위원들

심의과정에서 문제가 제기돼 제대로 심의를 하지도 않고, 법을 위반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표결을 진행하려는 이들에게 원자력안전위원으로서의 자격이 있을까. 원자력안전기술원과 안전전문위원을 믿어야 한다는 건 스스로 거수기임을 자청한 것과 다름없다.

국민의 안전과 원전 안전을 지키기에는 너무나 무책임한 이들, 뻔한 의도를 가지고 표결을 강행하자고 주장하는 위원들에 밀리는 척하면서 회의 운영도 제대로 못하는 위원장, 짜고 치는 고스톱이 따로 없어 보였다.

다음 회의에도 이런 식으로 비정상적인 회의를 진행하면서 제대로 심의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차라리 원자력안전위원직을 사퇴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대부분 정부와 여당 추천위원들이다.

나는 12일 회의로 이들에게 원전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안전을 지킬 역할을 맡길 수 없다는 게 더 분명해졌다고 생각한다. 해결되지 않는 안전성 이슈가 있는데도 해결하지 않고, 표결을 강행하려던 위원들의 결정을 앞으로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월성 1호기와 관련해서는 공청회나 공개토론회 한 번 없었다. 이제라도 국회에서 제대로 된 검증위원회를 구성해서 월성1호기 안전성은 물론 경제성·주민 수용성·국민결정권 등을 포함한 전반적인 논의를 책임있게 진행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양이원영님은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처장입니다.
#월성원전 1호기 #수명연장 #원자력안전위원회 #원전안전
댓글4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국 처장, 전'핵없는사회를위한 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월성원전1호기 스트레스 테스트 민간검증위원. 대한민국의 원전제로 석탄제로, 에너지전환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관련 내용을 공유하기 위해 기자가 됨.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추석 때 이 문자 받고 놀라지 않은 사람 없을 겁니다
  2. 2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아직도 '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이걸 보고도 그 말 나오나
  3. 3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우리 모르게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왜?
  4. 4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단독] "김건희 사기꾼 기사, 한국대사관이 '삭제' 요구했지만 거부"
  5. 5 참 순진한 윤석열 대통령 참 순진한 윤석열 대통령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