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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로드무비의 탈을 쓰고 치유를 말하다

[리뷰] 기억을 비운 자리에 나를 채우다

15.02.20 17:05최종업데이트15.02.2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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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와일드>의 한 장면. ⓒ 이십세기 폭스코리아


몸이 그대를 거부하면 몸을 초월하라 - 에밀리 디킨슨, 그리고 셰릴 스트레이드

좋게 보면 '나를 찾는 여행'이고, 나쁘게 보면 '현실 도피'일 터다. '와일드'는 여느 로드무비와 마찬가지로 집 떠난 주인공 셰릴 스트레이드(리즈 위더스푼 분)의 고된 여정을 그렸다. 버리고 싶은, 혹은 버릴 수 없는 기억들을 자신의 몸집보다 큰 배낭에 눌러 담은 셰릴은 미국을 종단하는 4200km의 도보 여행을 시작한다. 그의 앞에 깨끗하게 포장된 길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험준한 산맥과 황량한 사막은 물론 자칫 방심했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눈보라 속을 걷게 될 것이다. '악마의 코스'라고 불릴 정도로 악명 높은 이 PCT(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의 출발선에서, 셰릴은 어떤 '초월'에 도전하고 있었다.

셰릴이 초월하고자 한 것은 어릴 적부터 엄마와 자신을 억눌러온 남성들의 기억이었다. 영화는 셰릴이 어떠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나'라는 존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험난한 도보 여행 속에서 셰릴이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기억의 파편들을 보여 주고, 이를 조합하도록 한다. 셰릴의 기억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환청 같은 콧노래, 야생동물, 풀냄새, 바람, 햇빛, 모래먼지에도 갑자기 튀어나왔다가는 이내 사라진다.

점멸을 거듭하며 셰릴의 일상을 지배하는 그 기억 가운데, 그를 괴롭힌 부분은 모두 남성과 얽혀 있었다. 엄마는 아빠라는 폭력에서 셰릴과 동생, 엄마 자신을 구해냈다. 그러나 셰릴은 아빠의 방식으로 엄마를 대하며 그를 상처 입힌다. 가까스로 폭력으로부터 벗어났지만, 엄마는 행복을 누릴 새도 없이 척추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셰릴은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급기야 그는 엄마가 자신에게 물려주려 애썼던 행복을 거부한 채 외도와 마약 복용으로 자해를 시작한다. 남편 앞에서까지 마약에 취한 채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던 셰릴은 결국 누구와 만든 지도 모를 아이를 갖게 된다. 자신을 옥죈 남성의 기억에, 셰릴은 고작해야 자해로 복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셰릴은 여성이기에 당했던 폭력과, 여성의 몸에서만 벌어지는 원치 않는 임신을 겪었다. 거기서 벗어나려 저질렀던 자해는 가련한 자기방어였지만 스스로를 망쳤고, 끝내 7년간의 결혼 생활을 접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셰릴은 기억뿐만 아니라 그 기억의 집합체인 여성의 몸도 초월하고 싶었다. 그는 '못이 되느니 망치가 되는' 삶을 살고자 여행 내내 자신을 주저앉혔던 원죄 같은 배낭을 짊어진 채 길 위에 섰다. 그러나 길이 험난할수록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남자들은 더욱 많이 존재했다. 남자들은 주유소에 등장한 셰릴을 은근한 눈으로 흘끔거리고, 호의의 손길을 내민다. 언제, 어디서 <델마와 루이스> 속 여자들처럼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때 셰릴에게 남자들의 친절이란, 조력보다는 불안이다.

셰릴은 가까스로 혼자된 후에도 토끼나 송충이 따위의 등장에 놀라 "I'm not afraid"라 되뇌며 자기최면을 걸 정도로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셰릴은 한 농부와 마주친다. 며칠간 데운 음식을 먹지 못한 셰릴은 농부에게 민가로 데려다 줄 것을 부탁하지만, 그러나 그는 셰릴을 훑어보고는 마저 일을 해야 하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말한다. 이윽고 농부가 차로 돌아와 "우리 집으로 가자"고 말한다. 조용한 차 안에 성적 긴장감이 감돌고, 불안에 휩싸인 셰릴은 "남편이 기다리고 있다"며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농부는 셰릴에게 있는 그대로의 선의만을 베풀었다. 안정을 되찾은 셰릴과 작별하는 순간, 농부는 "실은 남편이 없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그리고 셰릴은 "아저씨가 무서워서 둘러댄 것"이라고 털어 놓는다. 어떤 험악한 사건도 없이, 두 사람은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며 돌아선다. 그렇게 셰릴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던 세상에 다시금 신뢰를 보내는 방법을 배워 나가고 있었다.

그 후로도 셰릴의 여정에는 남자들이 끼어들었다. 여행 12일째 강가에서 마주친 그렉은 셰릴에게 용기를 불어넣었고, 케네디 메도우스에서 마주친 남자들은 셰릴의 짐정리와 도보 여행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했다. 전 남편은 휴게소마다 소포와 편지를 보내 셰릴을 격려한다. 여태껏 셰릴의 세상은 그 안에 사는 스스로를 혐오하게 될 정도로 지독했다. 그러나 그의 곁에는 모든 세상이 그렇게 독하지만은 않다고 말해주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여행 중에는 셰릴을 노골적으로 위협하는 남자들도 다가왔다. 셰릴은 그들을 쫓기 위해 또 한 번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 때문에 다시 불신과 두려움의 늪에 빠질 수도 있었을 터다. 그러나 셰릴에게는 그를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남자들의 불순한 접근을 자기혐오로 연결 짓지 않는다.

세상과 화해해 나가던 셰릴의 안에는 아직 엄마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남아 있었다. "엄마 노릇을 하지 못 할 거라면 학생도 하기 싫다"고 말하는 엄마와 죽음을 앞두고 "한 번도 내 자신으로 살아보지 못했다"고 눈물 짓는 엄마의 기억이 겹칠 때마다 셰릴은 괴로워한다. 일상의 모든 틈에 숨 쉬는 엄마는 셰릴의 중심이고, 셰릴의 모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셰릴은 여행의 첫 여자 동지와 마주치고, 그로부터 그렉이 폭설 때문에 여정을 중단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고작해야 하루에 11km를 걷던 그에게 자신은 35km를 걷는다고 자신 있게 말하던 그렉이 PCT 도보를 포기했다. 셰릴이 그동안 걸어온 길 위에서는, 모두가 남녀노소 구분 없이 한 사람으로 존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셰릴은 그 길을 걸으며 엄마가 말했던 '아름다움', '최고의 모습'을 찾아 나가고 있었다.

사실 엄마는 셰릴이 용서를 구해야 할 만큼 그를 원망한 적이 없다. 엄마 역시도 세상을 미워했고,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가 아닌 자신으로 살아본 적 없던 스스로를 혐오했다. 그래서 늦깎이 학생이 됐고, 말을 타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찾아 나가려 했다. 이는 셰릴의 PCT 도보 여행처럼 엄마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척추암 판정을 받던 날도 엄마는 의사에게 "말을 탈 수 있냐"고 물었고,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전망이 좋은 병실을 칭찬했다. 끝까지 '나'로 남고 싶어했던 엄마의 노력을, 셰릴은 긴 여정의 끝 무렵 깨닫는다. 그리고 그는 PCT 가이드북에서 자신이 지나온 길과 관련된 부분을 찢어서 불태운다. 셰릴의 말처럼, 모든 것이 일어나지 않았던 때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일련의 사건들은 되풀이될지 모른다. 하지만 셰릴은 엄마의 용서를 구하는 대신 기억의 자리를 비워내며 스스로를 용서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구원받는다.

<와일드>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여타 로드무비와 다른 점은, 셰릴이 온전히 혼자만의 여행을 한다는 점이다. <보이즈 온 더 사이드>의 '제인'에게는 '로빈'이 있었고, <델마와 루이스>의 '델마'에게는 '루이스'가 있었으며, <셋 잇 오프>의 여자 죄수들은 네 명의 친구들이었다. 대신에 <와일드>의 셰릴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세상과 결별하는 방법보다 세상과 공존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와일드>를 제외하면, 언급한 영화들 속 여자 주인공들은 굳건히 유지돼 온 남자들의 세상을 전복시켜야만 자신을 찾을 수 있다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피해자에서 과격한 가해자로 변해간다. 셰릴 역시 세상과 싸우며 자해할 때는 전 남편을 비롯한 주변인들에게 가해자였다. 그러나 더 이상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그는 앞으로 다시는 가해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94일간의 지난한 여정은 셰릴의 괴로운 기억을 세상과 화해할 힘을 주는 연료로 바꿔냈다.

셰릴은 그를 괴롭히던 기억들을 PCT 가이드북처럼 불태웠다. 언젠가 그 기억들이 다시금 셰릴을 붙잡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비워둔 기억의 자리는 비로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공백'으로 바뀌었다. 셰릴은, 그 공백을 아름다운 자신으로 채워나갈 것이다. 이제 그는 '망치'가 아닌 '못'의 모습으로도 아름답다.

와일드 리즈 위더스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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