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잡고 노동현장간담회 현장
윤지선
그런데요, 손 내밀기만큼 어려운 게 있더라고요. 바로 함께 손을 맞잡는 일입니다. 두 차례의 손배피해자생계의료비지원사업, 세 차례의 노동현장간담회를 통해 손배가압류 피해자들을 만났는데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온 전화는 안 받아요." "빚 갚으라는 연락이 많이 와서 모르는 번호는 수신거부합니다." 민주노총의 도움을 받아 겨우 만난 손배가압류 피해자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만난 손배가압류 피해노동자들은 대부분 긴 해고기간 동안 지게 된 수천만 원의 빚과 수십 억, 수백 억의 손배가압류가 주는 정신적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들과 연락하기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노조가 와해되고 뿔뿔이 흩어진 노동자들을 찾는 일도 수월치 않았습니다. 손배로 인한 고통이 '일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틀 후면 급여 받는 날이다. 약 6개월 이상 급여 받은 적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 없을 것이다." - 2003년 1월 두산중공업 조합원 배달호씨의 유서 중. "생계를 넘어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마저 꺾어버리려는 손해배상 30억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입니다." - 2014년 5월, 노란봉투생계의료비지원사업 신청서 중.기억하시나요? 2003년 1월 9일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는 손배가압류에 시달리다 죽음으로 내몰렸습니다. 그런데, 10여년 후 손배가압류 피해자가 보내온 '생계의료비지원신청서'에서 우리는 배달호씨의 그림자를 느꼈습니다.
지난 10월엔 해고자에게 양보하겠다며 '생계의료비지원신청'을 포기한 한 노동자가 손배청구 70억 원을 한탄하며 죽으려고 한 일도 있었지요. '10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10년 동안 국민의 정당한 권리인 파업권에 '불법'이라는 낙인을 찍고, 수천억의 손배가압류, 즉 돈으로 노동자를 옥죄는 게 당연한 절차인양 받아들여졌습니다.
아, 달라진 것이 있네요. 먼저 손배청구 금액. 민주노총 집계에 따르면, 손배소송 청구액은 115억3500만 원에서 2014년 1691억여 원으로 10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손배가압류가 노동탄압 수단으로 악용되는 방식도 더욱 악랄해졌더군요. 노조를 탈퇴하는 사람에게 손배가압류를 철회해주는 일도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회사도 모자라 국민을 보호하고 갈등을 중재해야 할 국가가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을 거는 일도 있었죠. 노조로부터 받은 생계비 지원신청 추천서를 보니, 전의경의 '잃어버린 군화 한 짝', '우의 한 벌'까지도 노동자에게 청구하고 있더라고요. 화재보험사마저 노동자에게 손배를 청구하는 지경이니 말 다했습니다.
그들에게 일상이 된 건 손배가압류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노동' 문제를 마치 남의 일인양 듣고 침묵하는 대중의 무관심도 그들에게 '일상'이 되지 않았을까요. 손잡는 일이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또 다시 걱정이 앞섰습니다.
"함께 연대하는 것은 자기 자리에서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시민의 관심과 연대는 그 자체로 변화의 '동력'이 됐습니다. 일단 내민 '손'을 잡고 나니, 꽁꽁 얼어붙어 녹지 않을 것 같던 노동자의 손에도 조금씩 온기가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후일 또 다른 지원 필요한 분 계시면 꼭 연락해 주세요. 저 또한 보답할 기회를 주십시오.""꼭 필요한 곳에 잘 쓰겠습니다. 한 가정의 단비가 되었습니다." "손배가압류가 해결되면 이 좋은 일에 적극 동참하여 어려움을 함께 하겠습니다." "해고자라서 행복하다는 착각을 잠깐 했네요. 고맙습니다.""처음으로 세상이 따뜻하다고 느꼈습니다."그리고 다른 한쪽의 손을 다른 이에게 내밀어 그 '온기'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차광호씨가 무려 276일째 고공농성 중인 스타케미칼이 그런 사례인데요. 스타케미칼의 손배청구소송을 손잡고에 처음 전한 것은 바로 같은 구미지역 또 다른 손배사업장 KEC 조합원들입니다.
쌍용차 해고자들도 흩어져 있는 다른 해고자들의 손을 잡을 수 있도록 도움도 주었습니다. 다 같이 어려운 처지에서 더 어려운 해고자들, 더 작은 사업장의 소식을 알리며, 생계의료비지원을 양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 2014년 12월 14일 연극 노란봉투 마지막 공연 날
윤지선
손배 문제를 알리는 캠페인에도 함께 하기 시작했습니다. 고공농성 중인 씨앤엠 강성덕 조합원과 쌍용차 김정욱 사무국장을 비롯해 투쟁사업장에서 16명의 노동자가 연극 <노란봉투> 카메오로 출연해 극 중 고공농성에 돌입하는 '병로'를 응원하며 관객들을 만났습니다.
현실 속 연극팀은 씨앤앰 농성장을 찾아 강성덕씨를 응원하고, 평택 굴뚝을 찾아 김정욱 사무국장에게 응원과 지지를 보냈고요. 김정욱 사무국장은 다시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함께 연대하는 것은 자기 자리에서도 가능합니다."노동과 시민 '손잡고' 1년, 그리고 손을 내밀고, 잡으며, 이렇게 1년을 보냈습니다. 물론, 부산 막걸리 '생탁'과 '속초의료원' 사례처럼 노동자에게 손배청구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멈춘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절망하지 않고 믿어보겠습니다. 늘 그렇듯 노동자의 봄은 시민의 따뜻한 '손'에 의해 다가왔고, 지난 1년 동안 작지만 분명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다시 1년, 손잡고의 2015년 봄은 '노란봉투법'으로 시작합니다. 손잡고의 노조법 개정은 시민이 만든 '노란봉투캠페인'이라는 희망을 거름삼아 첫 발을 디뎠습니다. 헌법에 명시된 노동3권인데 지켜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분명한 건 이미 가진 권리도 주장하고 지키지 않으면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쟁의행위를 불법으로 만드는 건 누구일까요? 노동자들이 높은 곳, 혹은 낮은 곳에서 왜 몸부림쳐야만 할까요? 우리가 만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쟁의행위'라는 결과 이전에 그 이유를 궁금해해주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꽁꽁 언 굴뚝과 전광판 위 사람을 녹여주는 것은 '관심'과 '연대'입니다. 잊지 말아주세요. 우리 가족이며, 친구, 동료, 이웃이며, 또는 '나'이기도 한 '노동자'의 삶과 권리를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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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의경 군화까지 배상... 그들은 '동네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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