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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난쟁이가 아름다운 공주님을 사랑하겠다고?

[박정환의 뮤지컬 파라다이스] 현실 속 계급을 적나라하게 꼬집은 '난쟁이들'

15.03.09 09:37최종업데이트15.03.09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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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난쟁이들> 속 노래 '끼리끼리'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 PMC 프러덕션


<난쟁이들>은 제3회 서울뮤지컬페스티벌 예그린앙코르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창작뮤지컬이다. <디셈버>처럼 유명한 뮤지컬 배우가 출연하는 것도 아닌데 <난쟁이들>은 개막 전부터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이슈를 불러 모았다. 인터뷰에서 김동연 연출가는 "개막 전 공개된 뮤직비디오 때문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뮤지컬 개막 전에 공개된 뮤직비디오 '끼리끼리'가 입소문을 불러 모은 듯하다.

이 뮤직비디오에는 뮤지컬의 주인공인 공주나 난쟁이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금발머리를 찰랑거리는 세 명의 왕자들이 말을 탈 때 나는 의성어인 '따그닥 따그닥' 소리를 내며 "사람들은 끼리끼리 만나"를 노래한다. 다음은 '끼리끼리'의 가사 일부다.

"이렇게나 멋진 우리/어떤 여자 만나 봐도 괜찮은 애 없어/용을 쓰고 눈 낮추려 해도/수준 안 맞아서 우리끼리 만나"

'난쟁이들' 속 노래 '끼리끼리'가 의미하는 것

왕자들이 부르는 노래 '끼리끼리'는 뮤지컬 <난쟁이들>의 정체성을 함축하고 있다. 뮤지컬의 시발점이 되는, 난쟁이 찰리가 공주를 찾아 연회가 열리는 왕궁 무도회장을 찾아간다는 설정은 찰리가 같은 종족인 난쟁이 여자와는 만나기를 거부한다는 걸 뜻한다. 찰리가 무도회장에서 그럴 듯한 공주를 만날 수만 있다면 난쟁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 공주의 계급과 같은 상류 사회로 편입할 수 있다는 난쟁이 찰리의 바람이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공주는 비슷한 계급인 상류 사회의 왕자를 무도회에서 만나고 싶어 하지, 보잘 것 없는 난쟁이를 파트너로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난쟁이 찰리의 욕망과 공주의 욕망이 엇갈린다. 찰리는 신분 상승을 꿈꾸지만 공주라는 이상형은 찰리의 이런 신분 상승의 바람과는 반대로 난쟁이 계급과는 맺어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세 왕자가 부르는 '끼리끼리'는 신분 상승을 꿈꾸는 난쟁이 찰리의 욕망에 찬물을 끼얹는다. 아니,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흔한 설정인 신데렐라 이야기 따위는 현실에서 일어날 리 없다는 직설을 날린다.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서나 억만장자가 아나스타샤 같은 여대생에게 빠져들 뿐이지, 현실에서는 억만장자가 흔한 여대생에게 빠지는 영화 속 상황은 없을 것이라는 단언이다.

"만일 혼자라면 너랑 비슷한 사람을 못 찾은 거야"라는 노랫말은, 난쟁이 찰리처럼 신분 상승을 꿈꾸는 뮤지컬 속 캐릭터의 욕망은 헛된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마지막 결정타다. 왕자들이 부르는 '끼리끼리'는 왕자들이 자기 잘만 맛에 부르는 '자뻑 송'으로 들리기 쉽지만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리고 신분이라는 벽이 얼마나 견고한가를 난쟁이 찰리에게 들려주는 돌직구 충고다.

현실 속 계급을 적나라하게 꼬집은 창작뮤지컬

4일 오후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에서 열린 창작뮤지컬 <난쟁이들> 프레스콜에서 하이라이트 장면이 공연되고 있다. <난쟁이들>은 제3회 서울뮤지컬페스티벌 '예그린앙코르'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백설공주', '신데렐라', '인어공주'의 동화내용을 비틀어 담은 어른이 뮤지컬이다. 2월 27일부터 4월 26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 ⓒ 이정민


<난쟁이들>은 개성 톡톡 튀는 캐릭터들의 재담으로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뮤지컬이면서 동시에 '웃픈' 뮤지컬이기도 하다. 뮤지컬의 결말은 엄연히 '해피엔딩'이다. 어른들의 동화라고 해서 새드 엔딩으로 초를 칠 일은 없으니 말이다. 백설공주를 만난 적이 있는 난쟁이 '빅'은 꿈에 그리던 백설공주를 만나고, 찰리는 진정한 사랑을 만난다.

행복한 결말이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웃프다. 찰리는 난쟁이다. 공주들처럼 키가 크지 않다. 만일 공주가 난쟁이와 눈이 맞는다면 둘 중 하나여야 한다. 난쟁이가 공주처럼 키가 커지든가, 아니면 공주나 난쟁이처럼 키가 작아지든가. 난쟁이가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고 하는 건 누군가가 난쟁이를 위해 자신의 기득권인 '키'를 희생한다는 의미다.

이는 난쟁이가 사랑하는 이성이 난쟁이와 같은 계급에 편입된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난쟁이의 신분 상승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거꾸로 난쟁이가 사랑하는 이성의 신분이 낮아지고 나서야 난쟁이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뮤지컬 속 결말은, 신분 상승이 그만큼 어렵다는 걸 보여면서 동시에 신분 상승은커녕 신분을 뛰어넘는 간극이 그만큼 견고하다는 걸 방증하는 결말이 아닐 수 없다. 

뮤지컬 속 난쟁이의 '키'는 현실 속 경제 계급에 대한 은유다. 공주나 왕자, 귀족과 같은 정치적인 계급은 프랑스 혁명을 시발점으로 사라졌지만, 대신 누가 재화를 많이 가졌는가 적게 가졌는가 하는 경제적인 계급은 산업혁명 이후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다. 경제적인 계급이 인도의 카스트 제도처럼 대놓고 사람을 구분하는 시대는 아니라 해도 재벌이나 중산층, 서민과 같은 경제적인 계층 구분은 엄연히 존재한다.

<난쟁이들>은, 진정한 사랑은 있다는 걸 보여주는 어른들의 동화 같은 뮤지컬이면서 동시에 경제적인 신분을 뛰어넘는 이성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만큼 어려운 일인가를 난쟁이 찰리의 여정을 통해 보여주는 뮤지컬로 읽어볼 수 있다.

난쟁이들 끼리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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