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카자봉'에 나선 김혜영 씨가 8일 오전 서귀포 제주올레 7-1코스 도착지점에서 제주올레 여행자와 '제주올레 아카데미' 동기들과 함께 무사완주를 만끽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유성호
100일만 살아보기로 하고 제주에 왔는데, 그 시간은 길어졌다. 경주에서 하려고 했던 게스트하우스는 땅 문제가 걸렸다. 문화재의 '보고'답게 어느 땅에 어떤 문화재가 있을지 알 수 없으니 공사를 하려면 몇 년이 걸린다고 했다. 집을 구하기 위해 다시 3개월을 제주에 머무른 뒤, 혜영씨는 지난해 4월 17일, 제주도에 왔다. 이번에는 정말 '이사'였다.
"저희 집에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TV가 없었어요. 4월 16일에 이삿짐을 싸고 있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어디냐고. 어떻게 보면 저희의 1년이 그 아이들의 1년일지도 몰라요. 언니랑 민박집 리모델링하면서 많이 울었어요. 실제로 세월호에 제주 이민 오려고 했던 가족도 탔었잖아요."혜영씨는 지난해 9월부터 제주올레 아카데미 일반과정과 심화과정을 이수했다. 제주의 역사, 문화, 식생 등을 현장 체험 학습과 함께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전날(7일)인 토요일, 혜영씨는 그 다음 과정인 '길동무' 교육을 들으며 올레길을 걸었단다.
그는 "이주민들을 위한 귀농·귀촌 수업 같은 것도 있지만, 저는 제주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 좀 더 전반적으로 알 수 있는 수업을 듣고 싶었다"면서 "제주올레 수업을 듣다보니까 제주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양파껍질 벗기듯이 알면 알수록 너무 재밌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에는 1만8천 개의 신이 있다"면서 "신마다 이야기가 있고, 마을마다 이야기가 있다"고 덧붙였다.
경주에서 나고 자란 혜영씨는 어릴 때부터 토요일마다 박물관 학교를 다녔다. 박물관에 가면 학예사 선생님이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시곤 했다. 경주로 돌아간다면, 그때의 경험을 살려 경주가 단순히 역사의 도시가 아니라, 이전의 문화와 지금의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그 꿈은 지금도 유효하다.
"제주에는 네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대요. 1번 제주 토박이, 2번 이주자, 3번 제주에서 살다 육지로 나갔다가 다시 제주로 온 사람, 4번 '제주것'인데 육지에 왔다 갔다 하는 재외 제주도민. 제주올레가 좋은 건, 이 1, 2, 3, 4번이 정말 적절하게 섞여 있어요. 교육은 보통 제주 토박이 분들이 많이 해주세요. 이 분들은 제주에 대해서 정말 많이 알고 있는데, 그걸 전달을 잘 못하시는 거죠. 이 분들이 교육을 받아서 제주올레 강사가 되는 거예요. 처음에는 원주민들 교육이 이해가 안 갔어요. 제주어도 모르겠고. 그런데 계속 듣다보니까, 이제는 제주어로 후렴구도 넣고(웃음). '아, 제주문화를 안다는 게 따로 공부를 해서 아는 게 아니라 이런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교육이구나'라는 생각을 해요.""이렇게 욕망에 충실하게 산 적이 있었나"이날 올레길에 동행한 올레 아카데미 동기 3명 중 이샛별(40)씨와 고혜훈(42)씨는 각각 서울과 인천에서 왔다. 전날 '달리네 민박'에서 하루를 묶었다. 이샛별씨는 제주가 좋아서, 거의 매주 주말이면 제주에 온단다. 또 다른 동기 한 명, 제주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박은봉(42)씨는 혜영씨와 마찬가지로 제주이민자다.
박씨는 "제주가 정말 좋은데 은퇴하고 내려올 것이냐, 일찍 내려와서 정착하고 살 것인가 고민하다가 정리하고 내려왔다"면서 "가장 중요한 건, 제주는 다른 문화니까 처음 몇 년 동안은 자신을 오픈하고 제주 문화를 받아들이는 게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처가가 제주에 있고, 가정이 있다 보니 게스트하우스를 한 번도 못 가봤다"면서 "혜영씨가 서귀포에 사시는 분들과 함께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사는 게 참 부럽다"고 덧붙였다.
제주에 정식으로 이사 오기 전 여행과 스태프 생활을 하면서 만든 인맥은 혜영씨의 큰 자산이다. 민박집을 열 때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혜영씨는 자신을 '어디든 달려가는 김반장'이라고 소개했다.
"민박집 해서는 마트비 정도 나오고요(웃음). 귤도 따고, 바느질로 인형 만들기 아르바이트도 하고, 잼도 만들고... 전방위로 하고 있어요. 일당만 주면 달려갑니다. 언니는 제주에 와서 철인 3종 경기 훈련 받는데, 훈련비 충당하려고 아르바이트 하고 있어요. 미래를 위한 투자, 이런 건 없고요(웃음). 우리의 순수한 욕망을 위해서 경제활동을 하는 게 정말 즐거워요. 둘 다 정말 바쁜데, '이렇게 욕망에 충실하게 산 적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어요."고근산에 올랐다 내려가는 길, 혜영씨는 식당에 예약전화를 걸었다. 최근 발견한 저렴한 식당이란다. 5500원에 점심을 해결했다.
"제주 와서 꼭 하고 싶었던 건, 올레길에 있는 저렴한 밥집. 제주에서 식당을 하면 왜 그렇게 다들 비싸게 받는지 모르겠어요. 작년부터 식당과 민박집을 같이 할 수 있는 곳을 구하다가 결국 못 구하고 집만 구했어요. 제주는 기다림의 연속이거든요. 그런데 알고 지내던 친구가 7-1 코스, 저희 민박집 있는 곳 근처에 카페를 오픈한대요. 카페는 보통 오전 11시쯤 열잖아요. 어차피 저희 민박집은 조식이 나가니까 일찍 일어나거든요. 주변에 독거인들도 많고, 올레길도 시작하는 곳이니까, 거기서 '아침식당'을 열어보려고요." 혜영씨의 목소리에는 생기가 넘쳤다.
"우리 민박집에 오신 분들 공통된 질문이 그거예요. '그 모든 것들을 버리고 오는 게 아깝지 않았어요?' 내가 뭘 버렸지. 버린 거 하나도 없어요. 회사를 버린 거? 회사야 여기서도 찾을 수 있고. 연봉을 버린 거? 살다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아요. 가족을 버렸나? 엄마랑은 원래 떨어져 있었고. 친구를 버렸나? 제 친구들 제주 진짜 자주 오는데. 전 버린 게 없어요. 삶의 터전? 서울에 살면서 저는 제가 늘 경계의 이방인이라고 생각했어요. 서울에서는 오로지 내가 나를 먹여 살리는 데만 열중을 하잖아요. 내가 나를 오롯이 먹여 살려야 한다는 건 여기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여기도 삶의 터전이 될 수 있는데, 왜 사람들은 늘 '잘 나가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제주로...'로 하죠? 여기서도 잘 나갈 수 있는데(웃음). 그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제주 오기 전부터 두려움을 가져요. 너무 무겁게 시작을 해요."'2년만 민박집을 해보자' 생각하고 제주에 왔지만 그가 얼마나 더 제주에 머물지는 모른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건, 그는 '명랑한 달리네'일 것 같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3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공유하기
"'잘 나가는 직장 때려치우고'... 제주 온 사연, 왜 다들 똑같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