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영 씨
유성호
- 다시 육지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조 : "직장을 구했는데, 급여가 마음에 안 드는 경우도 있고, 인맥을 못 만드는 경우도 있고, 너무 힘들어서 다시 육지로 가야겠다고... 보통 경제적인 것, 인간적인 것. 그런 게 잘 안 풀리면 고립되니까."
- 어제 밤에 제주에 있어보니까, 동네가 정말 조용하더라. 혼자 있으면 외로울 것 같다. 김 : "저희 동네 뒤쪽으로 날씨 춥지 않으면 한 번씩 산책을 하는데, 담벼락 사이로 TV소리도 잘 안 들린다."
조 : "밤 9시, 10시 되면 자니까."
김 : "그런 적도 있다. 어느 날 분리수거 하러 가는데 동네 아주머니가 '혹시 이 집 사냐'면서, '밤 12시 넘어서 샤워하지 마라, 보일러 소리가 너무 크다'고 하는 거다. 알고 봤더니 저희 집에서 난 소리는 아니었는데, 층간 소음도 아니고 보일러 소리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도시에서는 12시에 옆집에서 싸워도 '싸우나 보다' 하고 자는데, 여기는 소음에 민감한 것 같다."
- 서로 알고 지낸다면 그런 게 덜하지 않을까.조 : "그 알고 지낸다는 게 참 애매한 거다. 그만큼 내 생활을 내놓는 게 필요하니까."
김 : "확실히 이방인이기 때문에 경계하는 건 있는 것 같다. 워낙 이주민이 많이 들어와서 무뎌졌다고는 하지만... 제가 아는 친구는 다시 서울로 갔는데, 그 이유가 마을 사람들이 주는 눈길 때문이었다고 한다. 담이 낮으니까, 지나가면 다 쳐다보니까."
조 : "알 것 같다. 담이 낮으니까. 사람들이 다 우리 집 안을 보면서 지나간다. '뭐 하나' 하고. 저는 가급적 신경을 안 쓰는데, 만약에 제가 말을 걸고 인사하면 '집 좀 봅시다' 하면서 들어오기도 한다."
김 : "그럴 때 사교적인 성격이면 인사드리면서 오시라고, 차 한 잔 하시라고 그러면 되는데 그게 안 맞으면 그 모든 시선의 무게가 견디기 힘든 거다."
- 아무래도 원주민과 이주민이 서로 살아오던 게 다르니까, 섞이기 힘든 측면도 있을 것 같다.조 : "여기서 알고 지내는 사람들 절반은 제주 토박이 분들인데, 간극을 넘어설 수 없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막 섞여서 지내다가 어느 순간 그 포인트가 딱 느껴진다."
- 어떤 측면이? 조 : "언어도 있고, 서로 살아온 문화 자체가 다르고, 공유하는 기억들이 다르다. 결정적으로, 육지 사람들이 들어와서 제주가 많이 변하고 땅값이 오르고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잘 어울리다가 꼭 싸우게 된다."
김 : "저는 지난번에 식당을 갔는데, 강정 이야기가 나온 거다. 그때 모인 네 명이 각기 다른 의견을 가지고 격렬하게 토론을 했다. 저는 벼룩시장 열어서 강정마을 후원도 하고, 행정대집행 있을 때는 스크럼도 짜고... 그러다보니 행정대집행으로 인해 강정마을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옆 테이블에서 이글이글한 눈빛이 막 오는 거다. 토론이 마음에 안 드셨는지, 하나만 걸려봐라, 내가 너희 테이블을 뒤집겠노라, 하는 듯한 눈빛. 제주 와서 느꼈던 제일 큰 위협 아닌 위협이었다. 그 순간, 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런 이야기는 밖에 나가서 하면 안 되겠구나. 해군기지 문제가 정말 삶인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훨씬 오랜 시간 동안 이 문제를 겪었고, 감내해온 사람들인데 내가 너무 쉽게 화두로 꺼내서 이 사람들의 상처를 건드린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조 : "여기 사람들이 다 해군기지를 반대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안 그렇다.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어떻게 보면 찬성을 할 수도 있는 거다. '당신 뭐야' 이렇게 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
"제주에서 '뭐라도' 하다보니 기회가 오더라"- 제주에 살면서 경제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땠나.

▲ 조남희 씨
유성호
조 : "그냥 놀았다. 첫 해에 놀면서 너무 많이 까먹었다(웃음)."
김 : "얼마나 썼나? 한 달에?"
조 : "처음에는 (서울에서 살 때와) 거의 그대로 나갔다. 물론 줄여야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갑자기 줄여지는 게 아니더라. 이미 긁어놓은 카드 값도 있었고(웃음). 씀씀이를 갑자기 확 줄이는 게 쉽지 않다. 저는 그 훈련을 지금도 하고 있다. 소비라는 게 마약과도 같아서. 조금만 쓰는 재미를 들이면 확 늘어나 있다. 지금은 그나마 나아졌는데, 처음에는 엄청 고생했다."
김 : "저는 앞에 마트가 없어야 한다(웃음). 저 혼자 사는 살림이면 괜찮은데, 돈을 받고 누군가에게 공간과 서비스를 제공해줘야 하니까 안 쓸 수 없는 게 있더라.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더 좋을 것들."
조 : "저도 어제 마당에 놓는 테이블을 샀다. 없어도 되지만 고기 구워먹을 때 있으니까 좋더라(웃음)."
김 : "그런 게 자꾸자꾸 늘어난다. 맨 처음에는 침대만, 그 다음에는 사이드 테이블, 사이드 테이블 있으니까 독서등도 있으면 좋겠고(웃음). 예전에 여행자일 때 게스트하우스 다니면서 좋았던 게 기억이 나니까, 좋은 게 뭔지 아니까. 이것저것 사다 보니까 지출이 확 늘어나더라. 어느 순간부터는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남희씨는 지난해부터 협동조합에서 일하고 있다고 들었다. 조 : "제주에서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에 대해 궁금증이 있었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더라도 일반 회사를 다니기는 싫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면서 칼퇴근이 가능한 직장을 찾다 보니까 협동조합에 들어가게 됐다."
- 제주에 와서 다시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그럴 거면 왜 제주에 갔냐'는 거다. 조 : "그런 시각 자체가 이해가 안 간다. 왜 제주에서는 직장생활을 하면 안 되나. 여기서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같은 직장생활을 해도 서울에서 직장생활 하는 거랑 다르다. 훨씬 자유롭다. 서울에서 직장생활 할 때는 제 시간이 전혀 없었다. 집은 잠만 자는 곳이었고, 엄마는 하숙집 아줌마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아니다. 월급은 훨씬 적지만, 직장생활 하면서 셰어하우스도 하고, 글 쓰고, 밴드 보컬하고... 앞으로도 할 것들이 많고 구상하는 것들도 있다.
김 : "제주에 산다고 하면, 기존 매체를 통해 만들어진 환상이 있는 것 같다. 월정리 히피문화 같은 게 제주의 대표문화인 것처럼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제주도 안에서도 동쪽 서쪽 문화가 다르고, 여기도 사람 사는 삶인데. 자신들이 갖고 있는 '환상 제주'의 모습을 우리한테 투영시킨다. 갇힌 시선으로 보는 거다."
- 혜영씨도 10년 넘게 꼬박꼬박 월급 받으면서 살아왔는데, 월급이 안 들어오니까 불안하지 않았나.김 : "제주 와서는 한 번도 불안하지 않았다. 보통 외국에 이민 가면 '뭐라도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지 않나. 세탁하고 청소하고. 그런데 제주에서는 왜 그걸 못하나. 여기가 한국이기 때문에 뭔가를 보여줘야 하고, 제주라는 이상적인 섬에 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 '그냥 뭐라도 하면 되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귤 따러 오라고 하면 귤 따고, 바느질해서 인형 만들고... 사람들한테 필요하면 이야기하라고, 다 도와주겠다고. 그렇게 하면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를 원했다. 그렇게 뭐라도 하다 보니 기회도 계속 오더라. 제주에 기회는 많다. 그런데 본인이 제주에서 어떻게 살겠다고 구체적인 생각을 하지 않으면 기회가 오더라도 그냥 흘려보낼 수 있다."
조 : "제주도는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고 연구를 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 아직도 제주에 대한 환상이 있나. 김 : "처음 서울에 갔을 때는 환상이 있었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한 시간 거리는 우습지도 않게 달려가서 박물관, 연극, 전시... 미친 듯이 뛰어다녔던 것 같다. 제주는 좀 쉬러 온다는 개념이어서, 서울에 살던 때처럼 바쁘게 살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바쁘게는 살고 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느라 바쁜 거니까, '자발적 바쁨'이다.
조 : "제주에 대한 환상은, 제주 자체에 대한 것보다 제주에 가서 제 삶이 어떻게 바뀌고 성장하고... 이런 것에 대한 생각은 있었다. 저도 이제 책 나오고, 공연준비도 해야 하고... 바쁘긴 하다. 그런데 서울에서의 바쁨은 '너 이거해'라고 해서 뭔가를 수행해야 하는 거였는데 지금은 내가 기획해서 하는 거니까. 바빠도 재밌다."

▲ 최근 <푸른 섬, 나의 삶> 책을 집필한 조남희 씨가 김혜영 씨에게 책을 선물하고 있다. 이날 김 씨는 조 씨의 집을 방문하며 직접 만든 감귤쨈을 선물했다.
유성호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3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