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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처럼 따뜻했던 축구선수 차두리의 '포옹'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 1-0 뉴질랜드

15.04.01 09:13최종업데이트15.04.01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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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분명 제가 한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프타임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눈물을 흘리는 아들 차두리를 안아주는 아버지 차범근의 가슴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호랑이가 새겨진 붉은 유니폼을 벗은 차두리는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지난 3월 31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에서 맏형 차두리를 떠나 보내고 경기 끝 무렵에 어렵게 터진 이재성의 극적인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이겼다.

43분 4.5km 뛴 차두리의 국가대표 마지막 경기

주장 완장을 차고 여전히 오른쪽 풀백으로 나온 차두리는 경기 시작 후 6분 만에 과감한 공격 가담을 통해 직접 프리킥을 얻어냈다. 그를 막아선 뉴질랜드 수비수가 핸드볼 반칙을 저지른 것이었다. 아쉽게도 김영권의 왼발 프리킥이 골문을 벗어났지만, 오른쪽 측면을 책임져야하는 풀백 차두리의 임무가 무엇인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차두리는 26분에도 짜릿한 장면을 연출했다. 크게 힘을 들이지 않는 스윙 동작으로 오른발 띄워주기를 골문 앞으로 보냈다. 원톱 지동원을 빛내기 위한 일이었다. 이것도 아쉽게 맞아떨어지지 않아 차두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대표팀 맏형 차두리와의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소속 팀 바이엘 04 레버쿠젠(독일)의 만류를 뿌리치고 달려온 손흥민은 누구보다 그를 위한 골 세리머니를 펼치고 싶었을 것이다. 38분에 바로 그 기회가 찾아왔다. 자유로운 페널티킥이 주어졌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기성용의 기막힌 패스를 받은 날개 공격수 한교원이 얻어낸 소중한 기회였다.

하지만 이 경기를 통해 뉴질랜드 국가 대표팀에 데뷔한 골키퍼 마리노비치는 손흥민의 오른발 슛 방향을 정확히 읽고 오른쪽으로 몸을 날리며 쳐냈다. 고개를 숙였던 손흥민은 곧바로 2분 뒤에 훌륭한 역습 드리블 실력을 자랑하며 더 좋은 득점 기회를 만들어냈다. 그만큼 차두리와 함께 뛰고 있을 때 골 선물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마리노비치의 슈퍼 세이브가 빛났다. 손흥민의 찔러주기를 받은 한교원이 왼쪽 끝줄 바로 앞에서 왼발로 넘겨준 공을 골잡이 지동원이 회심의 헤더로 골을 노렸지만, 마리노비치의 순발력이 이 공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은 것이다. 차두리와 이별을 준비하는 한국 선수들 입장에서는 정말 마리노비치가 야속할 뿐이었다.

이재성, 기념비적인 A매치 데뷔골

슈틸리케 감독은 전반전이 끝나기 전 43분에 차두리를 벤치로 불러들였다. 김창수를 내보내며 그에게 수많은 관중들의 기립 박수가 쏟아지게 만들어준 것이다. 노란색 주장 완장을 미드필더 기성용에게 넘겨주고 그를 안아준 차두리는 옆줄 밖으로 나오기 전에 손흥민과 또 한 번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국가대표로서 76경기를 뛰면서 절반에 해당하는 초창기 38경기를 날개 공격수로 뛴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마침 그 자리에 뛰는 손흥민과의 마지막 포옹이었기에 뭉클한 느낌이 더 뜨겁게 밀려 올라왔을 것이다.

차두리의 공식 은퇴식이 끝나고 후반전을 시작한 한국 대표팀은 수비수 김주영 대신 곽태휘가 들어왔고 미드필더 한교원 대신 구자철이 들어왔다. 이른바 '지(동원)-구(자철) 특공대'가 비로소 가동된 것이다.

그리고 63분에는 손흥민 대신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서 만점 활약을 펼친 이재성(전북 현대)이 들어와 경기장을 더욱 뜨겁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한국의 공격은 답답함 그 자체였다. 지동원이 왼쪽 코너킥을 받아 뉴질랜드 골문을 흔들며 부진의 늪에서 탈출하는 듯 보였지만 주심의 휘슬이 길게 울렸다. 그의 이마에 공이 닿기 전에 고의적으로 치켜올린 왼팔에 공이 맞았다는 판정이었다.

물론, 뉴질랜드 선수들이 수비로 전환하는 속도가 남달랐고 공간을 점유하는 수준도 높았다. 그래도 여러 골을 기대했던 한국으로서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는 결과였다. 72분에 지동원을 빼고 이정협까지 들여보냈지만 변화의 효과는 그리 신통하지 않았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는 듯 보였지만 후반전 교체 선수 둘이 귀중한 결승골을 합작해냈다. 86분, 김보경이 쓰러지며 왼발 슛을 시도한 것이 뉴질랜드 골키퍼 마리노비치의 선방에 막혔지만 여기서 흐른 공을 이재성이 따라들어가며 왼발로 밀어 넣었다. 차두리가 앉아 있는 한국 벤치도 그제야 환호성이 들렸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을 준비해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이 결과에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역시 결정력이기 때문에 공격수 자리에 누구를 써야 하는가 하는 큰 숙제를 안게 되었다. 모범 답안은 뭐니뭐니해도 K리그에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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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결과(31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

★ 한국 1-0 뉴질랜드 [득점 : 이재성(86분)]

◎ 한국 선수들
FW : 지동원(72분↔이정협)
AMF : 손흥민(63분↔이재성), 남태희(83분↔김보경), 한교원(46분↔구자철)
DMF : 기성용, 한국영
DF : 박주호, 김영권, 김주영(46분↔곽태휘), 차두리(43분↔김창수)
GK : 김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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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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