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포카라에 살면서 10시간 정전이 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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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영(hyanggy81)등록 2015.04.01 10:51

포카라 정전된 시간 옥상 풍경 ⓒ 한지영


선진화된 곳은 전기를 통해 많은 일들을 소화해 낼 수 있었고 삶이 편리해졌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의 삶의 속도도 그만큼 빨라진게 아닌가 싶다. 집에 있을 때에도 전기 혹은 충전시킨 바테리를 통해 할 수 있는 거리들이 많기 때문에 가족간에도 대화보다는 스마트폰이나 TV를 통해 시간을 보내는 게 더 편하게 됐다. 내가 사는 삶의 이야기보다 뉴스, 드라마, 영화, 게임 등이 더 흥미진진하기에 그것에 매료되기 쉽다. 정전이 되면 내 삶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까?
네팔은 하루 6시간 정전이 되는데, 포카라의 경우 여행시즌이 끝나면서 하루 정전되는 시간이 10시간으로 늘어났다. 처음에는 정전되는게 익숙하지 않아 불편했지만 이젠 도리어 정전되는 시간이 오로지 나 자신과 있거나 가족이나 이웃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어 색다른 묘미를 느끼게 된다. 아침에 일어날 땐, 알람시계의 기계음이 아닌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통해 일어나거나 닭의 울음소리나 새의 지저귀는 소리에 일어나기도 한다. 아침형 인간인 나로써는 주변 사물들이 서서히 깨어날 때 나도 일어나 따스한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며 글을 쓰거나 책 읽는 시간을 가진다. 2살도 안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써는 고요한 시간을 가지며 오로지 나와의 시간을 갖는 시간이 절실하다. 아침에 정전이 되면 자연스레 할 수 있는 일들이 제한되기에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나만의 자유를 느껴본다.
저녁에 식사를 준비하거나 저녁을 먹을 때에도 정전이 되는 게 허다하다. 어둡기 때문에 우린 초를 태워 빛을 만든다. 촛불은 왠지모르게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식사 후 자연스럽게 바닥에 앉아 오늘 찾은 보물에 대해 도란도란 얘기해보기도 하고, 한비와 그림자 놀이를 하기도 한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성찰하는 시간과 다음날 계획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니 우리의 삶도 더 정갈해지고 서로를 더욱더 깊이 있게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가 잠든 시간 정전이 된 바깥 세상은 별과 달빛들을 통해 온우주를 느껴볼 수 있는 선물을 준다.
내가 사는 곳 옥상에는 그네가 있어서 이웃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는데, 정전이 되면 아이들이 더욱더 북적거린다. 이곳에는 놀이기구가 많지 않기에 주변에 있는 것을 갖고 아이들이 창의적으로 게임과 규칙을 만든다. 그네를 타며 빨래집개를 던져 생수병 맞추기를 하는데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 소리를 오랜만에 듣는듯 싶었다. 19개월인 막내 한비부터 중학교 2학년인 청소년까지 다양한 나이대와 힌두교, 무슬림, 무교 등 종교에 상관없이 아이들이 서로 돌봐주며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니 물질적으로 부족하여도 왜 행복한지에 대해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정전은 우리에게 뜻밖의 선물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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