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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규
만화책 <삽질의 시대>는 어느 분이 대통령 자리를 지킬 적 이야기를 그린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어느 한 분이 대통령 자리를 지킬 적에만 '이 만화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쥐'로 빗대는 그분이 대통령으로 있을 적에 4대강사업 같은 끔찍한 '시멘트 막삽질'이 있었는데, 그분이 대통령이 아닌 때에도 수없이 '시멘트 막삽질'이 있었습니다. 요즈음에도 '시멘트 막삽질'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시멘트 막삽질' 뿌리는 꽤 멉니다. 옛날에는 시골 사내를 나라에서 끌어들여 성곽을 세우고 궁궐을 넓혔습니다. 성곽은 이웃나라한테서 나라를 지킨다는 뜻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만, 성곽쌓기에 끌려간 시골 사내 가운데 수십 해 동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이 많고, 성곽쌓기를 하다가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나라를 지킨다는 뜻은 나쁘지 않습니다만, 젊을 적에 부역으로 끌려가서 늙은 할아버지가 되어야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들 '백성'한테는 어떤 삶이 있던 셈일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성곽쌓기에 끌려가지 않으면, 병졸로 끌려갑니다. 이래도 끌려가고 저래도 끌려가면서 고향을 잃어야 하던 '백성'이 대단히 많아요.
일제강점기에는 징용으로 끌려가서 전쟁무기 만드는 공장에서 허덕이고, 탄광에서 굴러야 했습니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뒤에는, 새마을운동 바람이 불면서 마을마다 고샅을 시멘트로 바꾸고, 흙집도 허물어 시멘트집으로 바꾸며, 지붕은 슬레트(석면)로 바꾸라고 닦달했습니다. 요새는 논도랑도 흙이 아닌 시멘트도랑으로 바꿉니다.
- '화려한 스케일과 선정적인 장면을 보여줘도 개미들은 보지 않았다. 그 안에는 진실이 담겨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116쪽)- '도시 안에는 가방끈이 긴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는 가짜 가방을 메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고, 가방끈이 길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가방끈이 더 길다고 싸우는 사람도 있었다.' (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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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가꾸는 삽질은 아름답습니다. 삶을 짓는 삽질은 구슬땀이 피어나면서 사랑스럽습니다. 삶을 돌보는 삽질은 손수 이루는 이야기꽃이 피어납니다.
삶과 동떨어진 삽질은 아픕니다. 삶을 짓밟는 삽질은 이웃을 괴롭힙니다. 삶을 저버리는 삽질은 아무한테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렇지만 삽질이 그치지 않습니다. 돈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에 삽질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삽질은 참말 돈이 될까요? 삽질로 돈을 거머쥐는 사람은 참말 즐거울까요? 혼자서 100억이니 1000억이니 1조이니 거머쥔다면, 이녁은 언제나 탱자탱자 신나게 놀면서 삶을 아름답게 지을까요? 돈을 더 많이 끌어모으면 끌어모을수록 오히려 '돈으로 둘러싸인 감옥'에 갇히는 꼴은 아닐는지요? 알맞게 벌어서 알맞게 쓰는 삶이 아니고, 아름답게 벌어서 아름답게 나누는 삶이 아니라면, 돈벼락을 맞고 그만 골로 가지는 않을까요?
- '어느 날이었다. 학교가 마트로 변해 있었다.' (180쪽)- '불만이 있어도 사장님이 우리에게 월급을 주고 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 와 보니, 회사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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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삽질의 시대>은 '창작'입니다. 그런데, 글하고 그림이 함께 어우러지는 만화가 되다 보니, 이 만화책에서 흐르는 '한국 사회 이야기'는 그지없이 끔찍하거나 그악스럽게 보인다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어렵도록 하는 사회를 매섭게 꾸짖는데, 이 만화를 아이들한테 섣불리 보여주기는 어렵습니다. 어쩌면, 어른들도 이 만화를 쉬 읽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틀림없는 이야기요, 손가락질받을 만한 잘못을 꾸짖는 만화인데, 숨이 턱 막힙니다.
책을 덮고 오래도록 생각에 잠깁니다. 거짓을 그린 만화가 아니라 참을 그린 만화인데, 왜 이렇게 숨이 막힐까요. 억지스레 그린 만화가 아니라 꾸밈없이 그린 만화인데, 왜 이렇게 가슴이 갑갑할까요.
아무래도 '쥐'로 나오는 목숨이 너무 안쓰러워 보입니다. '쥐' 둘레에 달라붙어서 팥고물을 받아먹으려고 하는 목숨이 대단히 불쌍해 보입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쥐'는 그렇게 살아서 무엇이 즐겁거나 기쁠는지 모르겠습니다.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손에 쥔 '쥐'한테 이웃이나 동무는 없겠지요. '쥐' 곁에는 모두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더 가로채거나 거머쥐려는 맞잡이만 가득 있겠지요. 홀가분하게 춤추거나 노래하거나 사랑하거나 꿈꿀 만한 어깨동무는 하나도 없겠지요.
'시멘트 막삽질'을 하는 사람은 노란민들레도 흰민들레도 그저 시멘트를 들이부어서 다 죽입니다. '시멘트 막삽질'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숨막히는 길로 가고 맙니다.
이제 부디 막삽질도, 시멘트 막삽질도 그칠 수 있기를 빌어요. 꽃을 심고 풀을 아끼며 나무를 돌보는 삽질이 되기를 빌어요. 손수 조그맣게 집을 지어서 아름답게 살림을 가꾸는 삽질이 되기를 빌어요. 아이들과 함께 삽질을 하면서 숲을 푸르게 돌보는 삶이 되기를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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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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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규
삽질의 시대
박건웅 지음,
사계절,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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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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