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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과 외계생물 영화들...인간에게 경고하다

[리뷰] '기생수'와 '어벤져스2', 인간이 자초한 위기들

15.05.11 22:06최종업데이트15.05.11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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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 프리드리히 니체, 그리고 울트론

인간을 일컬을 때 흔히들 '만물의 영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성경>의 창세기에서는 자신의 모습을 본떠 만든 인간에게 온 짐승들을 다스리게 하겠다는 신의 의지가 천명됐다. <동몽선습>의 '천지 만물 중 오직 사람이 가장 귀하다(天地之間 萬物之中 惟人이 最貴하니)'는 구절은 '인륜'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인간이 세상 만물 중 가장 고귀한 정신을 지닌 존재임을 역설한다. 이처럼 인간은 스스로의 우월함을 주장하며, 그 자신이 지구의 주인일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생산해 왔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인간은 육체의 연약함을 뛰어 넘는 지적 능력을 통해 지구의 지배자로 군림했고, 그외의 생물들을 노예와 유사한 상태에 둔 채 착취해왔다. 하지만 인간의 입장에서는 이를 무턱대고 자아비판하기도 곤란하다. 그러한 행보야말로 인간의 생존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간이 지구상의 많은 종들을 자신과 공존하는 존재로서 존중하지 않았으며, 필요 이상의 욕심으로 그들을 절멸시키는데 일조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인간이 죽이지 못한 것들은 살아 남기 위해 더욱 강하게 진화했다. 그 결과 몇몇 종들은 이 별에서 인간이 모두 사라지더라도 끝까지 생존할 것이라 예상될 만큼의 생명력을 얻었고, 자신을 핍박했던 인간들을 향해서 예상 밖의 공격을 가하기도 한다.

이보다 더욱 위협적인 것은, 인간이 변종시켰거나 창조한 존재다. 이들은 탄생과 동시에 자연 안으로 편입되며, '생존'이라는 과제와 직면한다. 숱한 SF 콘텐츠들은 인간이 만들었기에 생존의 스위치를 간단히 점멸할 수 있었던 존재들의 반란을 다뤄 왔다. 이를테면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자신을 없애려는 디스커버리호의 승무원들을 차례로 제거했던 인공 지능 컴퓨터 HAL의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이 같은 존재들을 '인간이 죽이지 못했기에 더욱 강해졌다'고 말할 수 있는 지점은 그들이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로 인식한 순간부터다. 단순한 완력의 증가 뿐만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태어났는가'와 같은 고민을 시작하게 되는 그 때 그들의 자유 의지에는 힘이 실리고, 비로소 인간과 대등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론적 고민이 답을 향해가기까지 가장 쉽게 정당한 근거를 제시해 주는 것은 바로 '생존'의 논리다. 필요한 것이라곤 생존 뿐인 그들은 가장 순수하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폭력적이다.

인간이 만든 괴물, 인간을 위협하다

영화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각각 지난 4월 23일과 5월 7일 개봉한 <어벤져스2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과 <기생수 : 파트2>(이하 <기생수>)는, 더 이상 '상상 속의 존재'라고 단언할 수 없는 인공 지능과 지구에 떨어진 기생생물 등이 인간과 맞서게 되며 펼쳐지는 위기적 상황을 그리고 있다.

우선 <어벤져스2>는 현대 과학의 총아인 인공 지능이 조물주와도 같은 인간을 어떠한 방식으로 공격하는지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세계관 안에 녹여냈다. 사실 별로 새롭지는 않은 이야기다. 단순히 '기계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 말하는 종말론적 관점은 이미 과거의 것이 되어 버렸다. 좀 더 나아가 인공 지능의 비물질성을 강조하며, 그들이 '만물의 영장'이 되기 위해 보다 강한 육체로 옮겨다니며 인간을 위협한다는 설정 역시 신선하지 않다.

<어벤져스2>의 이야기는 좀 더 비틀려 있다. 무적의 금속 '비브라늄'으로 제조된 수트는 이 차가운 세상을 더 차갑게 만들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이 영화의 문제 의식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수트를 만든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는 온전히 인간의 편으로 설계한 인공 지능을 이 철갑옷에 이식하려 한다. 아직 인간만이 정의로운 존재인지, 인간의 평화가 지구의 평화인지에 대해 누구도 설득하지 못한 채로 인공 지능 '울트론(제임스 스페이더 분)'은 탄생했다.

토니 스타크는 시종일관 '우리 시대의 평화'를 말하며 울트론의 존재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하지만, 그의 주장이란 울트론 만큼이나 실체가 없는 것이었다. 토니 스타크가 원하는 것은 평화에 봉사하는 과학이 만든 인류의 수호자였으나, 자유 의지를 갖게 된 인공 지능이 반드시 인간의 편에 서리라는 그의 소망은 맹신에 가까웠다. 결국 자신과 구별되지 않는 존재를 창조해 스스로를 지키려 했던 인간이 위기를 자초하고 만 것이다. 신과 닮은 모습으로 만들어졌다는 인간이 끊임없이 신의 권위에 도전하며 그를 위협하듯이.

그렇게 전 세계로 뻗어 있는 네트워크로 자신을 옮겨 다니며 죽여도 죽지 않는 존재, 죽이지 못해 더욱 강해지는 존재가 된 울트론은 자신의 육체를 비브라늄으로 업그레이드하려 한다. 여기서 뮤턴트 쌍둥이 중 한 명인 완다 막시모프, 즉 스칼렛 위치(엘리자베스 올슨 분)가 주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자못 상징적이다. 염력을 통해 정신을 조종할 수 있는 스칼렛 위치는 강력한 힘을 가진 인간의 내부 분열을 촉진해 자멸로 이끈다. 스칼렛 위치에게 조종당한 헐크(마크 러팔로 분)가 뉴욕 시내를 망가뜨리며 시민들의 미움을 받듯, 그간 정의라고 믿었던 존재가 휘두르는 폭력에 의해 평화가 파괴될 때 인간은 '배제'를 택한다. 울트론은 그렇게 인간의 적을 인간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그러나 막시모프 쌍둥이는 "이 세상에 유일하게 살아있는 것은 금속이 되리라"고 말하는 울트론에게 실망감을 느끼고 어벤져스에 합류한다. 상황은 급변하여 '함께'라는 가치 아래 싸우는 어벤져스는 막강해진다. 하지만 모든 상황을 종결하는 것은 비브라늄과 생체 세포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육체에 '인피니트 스톤'까지 장착한 비전(폴 베타니 분)이다. '인간도 아니고 인간이 의도한 존재도 아닌' 비전은 '세상을 구하는 것과 파괴하는 것의 차이를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 위에 군림하며 울트론을 제거한다. 그러면서 갑자기 "인간의 실패에는 품위가 있다" "인간은 영원하지 않기에 아름답다"는 인간 예찬론을 펼치는 비전이지만, 결국 이 사태를 자초한 것은 인간이기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었다.

육체 잠식한 외계 생물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

<어벤져스2>가 인간의 위기란 자연의 섭리일 뿐만 아니라 과도한 욕심의 결과물임을 보여 줬다면, <기생수>는 세상으로 나오기 전부터 유전자에 각인된 의문을 조명하며 제3자의 입장에서 보는 인간을 이야기한다. 두 개의 파트로 나뉘어 공개된 이 영화는 원작 <기생수>의 주제인 '공존'을 영상으로서 훌륭히 구현해냈다.

외계에서 온 기생 생물이 지구에 떨어질 때 "인간을 잡아먹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지구라는 별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탄생 이전부터 그들의 뇌에 프로그래밍된, 섭리와도 같은 목소리였다. 기생 생물들은 인간의 뇌를 지배하며 육체라는 그릇을 얻고, 그것을 강화시켜 식인의 도구로서 이용한다. 이즈미 신이치(소메타니 쇼타 분)는 그런 기생 생물에게 뇌 대신 오른손을 뺏기게 된다. 기생 생물로부터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여겼던 육체에 공존할 것을 요구받은 신이치는 혼란에 휩싸인다.

신이치가 끝내 떼어내지 못한 기생 생물은 인간 세계의 지식을 빠르게 체득하며 점점 강해지고, '오른쪽이'라는 이름도 얻는다. 그러는 사이 다른 기생 생물들은 인간을 먹어치우며 사체가 끔찍하게 분해된 살인사건 현장들을 남기고 있었다. 그들은 학교와 시청 등을 점령하며 아지트로 삼고, '없어져도 되는 인간'을 골라 계획적 포식을 실행한다. 특히 기생 생물 중 가장 우수한 지능을 지닌 타미야 료코(후카츠 에리 분)는 과학 교사로 위장, 인간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들을 강구한다. 그는 별다른 번식 능력 없이 숙주를 옮겨다닐 뿐인 자신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임신이라는 실험을 하고, 인간 대신 인간의 음식을 먹으며 생존하려 한다.

이는 기생 생물의 입장에서 인간의 몸을 공유하는 것인지, 그저 잡아먹는 것일 뿐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되는 행동이다. 기생 생물의 뇌와 인간의 몸을 가진 채 임신을 한 타미야 료코와 오른손에 기생 생물을 달고 있는 이즈미 신이치는 공존의 논리 아래 서로 닮은꼴이다. 타미야 료코는 신이치와 오른쪽이가 한 육체 안에서 차츰 섞여가는 광경을 보고 그를 희망이라 일컫는다. 기생 생물에 의해 어머니와 친구를 잃은 신이치는 복수심에 기생 생물을 사냥하며 그들을 위협하지만, 타미야 료코는 자신이 본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타미야 료코의 동료들은 인간과의 공존보다는 식인이라는 간단한 생존 방식에 천착한다. 인간 역시 기생 생물이 자연스럽게 자신들과 공존하게 될 때까지의 희생을 감내할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타미야 료코는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고 있는 기생 생물과 인간의 가운데서 갈등하며 화합의 길을 모색한다. 그 과정에서 타미야 료코는 본디 자신에게 없던 미소를 얻게 됐다.

"무엇을 위해 세상에 태어났을까?" 타미야 료코는 인간조차 잊고 있던 의문을 거듭해 왔다. 그러면서 그가 얻은 것은 자신이 낳은 아이와 둘이 살고 싶다는 자그마한 소망이었다. 그러나 타미야 료코를 둘러싼 세상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고, 그는 신이치에게 아이를 맡긴 채 시작도 끝도 모르는 길을 걷는 것을 중단한다. 총탄을 맞으면서도 아이를 감싸는 타미야 료코의 모습에 끝까지 자신을 지키려 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 신이치는 잃었던 눈물, 즉 인간성을 회복한다. 생존의 문제 앞에서도 도덕이나 감정이 개입할 여지를 두는 존재는 인간 밖에 없다고 여겨졌지만, 이는 공존을 갈망하던 기생 생물도 터득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한편 시장 히로카와(키타무라 카즈키 분)은 시청을 급습해 기생 생물을 몰살하려는 인간들에게 "살인보다 쓰레기 투기가 더 큰 죄"라고 일갈한다. 인간 한 종의 번영보다 지구의 번영이 더 정의에 가깝다고 주장하는 히로카와는 인간들을 '기생수'라 일컫는다. 지구에 기생하는 짐승이라는 의미다. 인간들은 그를 살해하지만, 히로카와는 기생 생물이 아닌 인간이었다. 그러나 인간들은 "표적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며 그렇게도 치를 떨던 살인을 정당화한다.

그런 인간들도 기생 생물 무리의 리더 격인 고토(아사노 타다노부 분)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한다. 그렇게 아무도 이길 수 없을 것만 같던 고토는 의외의 변수에 무릎을 꿇고 만다. 신이치가 고토의 몸에 찔러 넣은 철근에는 방사능 물질이 묻어 있었고, 단단히 결합해 있던 고토의 세포들은 생존을 위해 몸을 떠난다. 그토록 모든 생명을 위협하는 물질을 만든 인간 중 한 명으로서, 신이치는 언제 자신을 향할지 모르는 칼날을 쥔 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고토의 생명을 끊은 것이다. 신이치는 끝까지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육신의 잔해들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저 녀석을 죽일 자격이 있을까"라고 자문한다. 그러나 그는 이내 "너는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인간은 살아가고 싶다"며 방사능 쓰레기가 타고 있는 불길 속으로 고토를 밀어 넣는다.

이처럼 <기생수>와 <어벤져스2>에는, 인간이 생존을 위한 혈투를 통해 따낸 '만물의 영장'이라는 선수권을 방어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인간은 이 별의 가장 막강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폭로됐다. 울트론과 기생 생물은 제거됐지만(혹은 힘을 잃은 채 훗날을 도모하고 있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에게 치명타를 입힌 것은 각각 비전과 방사능 쓰레기다. 인간은 끝내 공존을 거부한 채 공격의 길을 택하며 서로 똘똘 뭉쳤으나 결국 모든 해결의 열쇠는 인간이 아닌 존재의 손에 있었던 것이다.

또 <기생수>와 <어벤져스2>는 인간 이외의 존재가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을 비추며 자아성찰을 도모한다. 두 영화 속에서, 잠시도 평화로운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이었다. 인간은 끊임 없이 적을 만들고 그에 대항할 수 있는 존재들도 만들어내지만, 자신의 수호자들이 들고 있는 칼날이 거꾸로 인간을 향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시작도 안 한 전쟁을 이기려고 하는' 성급함 탓이고, 우리의 아픔이 다른 존재의 아픔보다 깊다 여기는 교만함이 원인이다.

인간이 죽이지 못한 것들은 전부 더욱 강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외의 존재와 공존하기 위해 애써야 할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끝까지 '만물의 영장'으로 남기 위해 신의 위치로 올라서야 할까? 살아남기 위해 공존 아닌 공격을 해야 한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생존 방식을 어떻게 변호해야 할까? 인간이 자초한 위기 앞에서 신이치와 어벤져스, 그리고 우리는 고민한다. 이 고비를 넘기 위해서 정말 '기생수'가 되는 길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 남는 길, 두 갈래의 길이 주어져 있다. 이제는 선택만이 남았다.


어벤져스 기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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