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대선 국민신당-조선일보 충돌 당시 김 주필은... '이회창-김대중' 양자대결 구도를 보도한 97년 12월 17일자 <조선일보> 발행을 막기 위해 당시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 지지자들이 조선일보 사옥으로 몰려들었다. 이 때, 당시 김대중 주필의 발언이 화제가 됐다. <조선일보> 97년 12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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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좀 더 흐른 1997년 12월 16일 밤, 김 고문은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또 다시 등장한다. 1997년 대선을 이틀 앞둔 12월 17일자 <조선일보> 가판이 발행된 것을 본 시위대가 조선일보 사옥으로 들이닥쳤다. 17일자 헤드라인은 '이회창 – 김대중 선두 각축'이었다. 시위대는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의 지지자였다.
김대중 당시 주필이 시위대 앞에 섰다. 1997년 12월 20일자 <기자협회보>가 전한 그날의 김 주필은 '너네들 뭐하는 거야'라며 불쾌감을 드러낸 후 '너네들, 내일 모레면 끝이야. 국민회의(김대중 후보 정당), 국민신당 너희는 싹죽어, 까불지 마… 내일 모레면 없어질 정당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치칼럼을 전문으로 쓰는 언론사 주필의 위와 같은 발언은 언론학자에게도 충격이었나 보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이건 단순한 실수 차원의 주사는 아니다. 김 주필의 진심이 고스란히 드러난, 그런 사건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고 분석했다. 강 교수는 "김 주필과 조선일보는 이 같은 주사 사건에 대해 그 어떤 사과의 말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의 저서 <너무도 엽기적인 김대중 주필> 참조)
50년 <조선> 기자와의 인터뷰... 그리고 다루지 않은 내용들 김대중 고문의 글을 가장 오랫동안 분석한 강준만 교수가 김 고문을 소개할 때 빼놓지 않는 것이 그의 1997년 12월 24일자 1면 기명칼럼이다. 제목은 '즉각 실천해야 산다'이다. 당시 IMF 위기상황에서 <월스트리트 저널>의 보도를 인용하며 김대중 당선자를 '인기주의자, 예측하기 어려운 정치인, 그의 경제정책은 근거 없는' 등으로 비판한 김 고문은, 그러나 비판의 근거가 된 인용문을 찾지 못해 '엽기적인 영작문 사건'으로 회자되었다.
강 교수에 따르면 "이 기명칼럼은 <딴지일보>에게 창사 이래 최대의 특종을 안겨주었다"고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이처럼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지른 언론인이라면 즉각 물러나고 해당 언론사는 사과 성명을 발표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김 주필은 여전히 건재하고 김 주필이건 <조선일보>건 사과 한 마디 없다." (그의 저서 <너무도 엽기적인 김대중 주필> 참조) 김 고문은 <조선>에 50년 몸 담으며 76세인 지금도 칼럼을 게재하고 있다. 그가 처음 기자생활을 시작할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후배들이 지금은 <조선일보>의 간부 기자로 재직하고 있을 정도로 그의 기자 생활은 오래됐다.
'50년 기자'를 마주 대하는 후배 기자의 인터뷰는 객관적 사실만을 전해주지 못했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활약한 김 고문이 하고 싶었던 말, 후배 기자가 듣고 싶었던 말은 <조선일보> 5월 30일자를 보면 잘 나와 있다.
그러나 그 지면에 묘사된 김 고문이 50년 언론인 김 고문의 참 모습은 아니다. 후배 기자가 굳이 묻지 않았고 김대중 고문 역시 굳이 말하지 않은 내용 가운데 피해갈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많다.
80년 광주 보도와 97년 국민신당 앞에서 한 발언, 그리고 '영작문 사건' 등이 그것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사과하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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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외길' 김대중 인터뷰한 <조선>, 이 질문 왜 안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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