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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한 '19금'인 줄 알았는데, 뒤통수 맞았다

[리뷰] <젊은 엄마 : 내 나이가 어때서>

15.06.07 10:01최종업데이트15.06.0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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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있습니다.

▲ 영화 <젊은 엄마> 시한부 인생을 연기한 명계남과 그의 어린 아내를 연기한 채민서의 궁합이 이렇게 멋질 줄은 몰랐습니다. ⓒ 골든 타이드 픽쳐스


가끔 시간 때우려고 뒤적거리다가 뒤통수치는 작품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영화 <젊은 엄마 : 내 나이가 어때서>가 그런 영화입니다. 얄팍한 본성을 자극하는 19금 영화로만 보였는데 명계남과 채민서의 궁합이 이렇게 잘 어울릴 줄 몰랐습니다.

40년을 초월한 남녀의 믿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담백하면서도 코믹스럽게 제대로 버무려져 관객으로 하여금 의외의 감동을 선사하였습니다. 네티즌들 역시 캐릭터 구도의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연기가 차분하게 다가와 진한 감동을 주었다는 의견이 대다수입니다.

내게 남은 시간 6개월, 사랑을 하고 싶다

결혼한 아들과 며느리, 손자를 두고 약국을 운영하는 용태(명계남)는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친 진희(채민서)가 눈에 아른거립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약국 앞에서 진희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반달곰 인형을 입고 전단지를 나눠주다 약국에 들어와 약을 타가던 아가씨가 진희였던 겁니다. 처방전을 내미는 순간 용태는 진희의 병을 알게 되는데……. 신장이 좋지 않아 한 달에 한 번은 혈액 투석을 해야 하는 중증 환자였습니다.

매일 약국 앞에서 반달곰 인형을 뒤집어쓰고 홍보를 하던 진희를 위해 어떤 날은 음료수를, 어떤 날은 도시락을, 어떤 날은 꽃다발을 가져다주며 관심을 보입니다. 사실은 그 무렵 용태도 병원에서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시한부 생명임을 알게 됩니다. 남은 시간은 6개월. 의사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후회 없이 시간을 보내라 권유합니다.

용태는 자신의 마음이 진희에게 향하고 있음을 알고 많은 고민을 합니다. 나이 차이가 무려 40년입니다. 누가 봐도 고운 시선으로 볼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젊은 여성에게는 돈 많고 명 짧은 남자를 쫓는 '꽃뱀'이라 할 겁니다. 나이 70이 된 노인네에게는 자식이며 손자며 다 팽개치고 어린 ​여자에게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도 정신 못 차리고 있다며 욕지거리할 것이 뻔합니다.

자기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이 결혼을 위해 용태는 용기를 냅니다. 커피숍에서 용태의 프러포즈를 받은 진희는 정신 차리시라며 자리를 뜹니다. 하지만 용태는 부모 형제 없고 홀로 힘겹게 투병중인 진희를 위해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줍니다. 용태의 마음이 진심인 것을 알게 된 진희는 고민 끝에 용태와 담판을 짓고 결혼을 승낙합니다.

아들과 며느리보다 한참 어린 '어머님'

​용태는 진희와 결혼하면서 아들 내외와 함께 살겠답니다. 관객은 이 특이한 결혼으로 인해 용태의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재수생인 용태의 손자와 한 집에 살며 겪어야 하는 험난한 생활을 예상합니다. 자기 또래의 할머니와 연애를 즐기는 용태의 친구조차 입을 떡 벌리게 만드는 신혼 생활이 시작된 겁니다.

▲ 영화 <젊은 엄마> 자기보다 40살이 많은 할아버지와 결혼하며 그 집으로 들어간 진희. 아들과 며느리, 손자와 벌이는 좌충우돌 가족이야기가 무겁지 않은 톤으로 그려집니다. ⓒ 골든 타이드 픽쳐스


진희가 용태 가족으로 합류하며 용태의 며느리와 진희는 부담스럽고도 껄끄러운 관계가 됩니다. 자기보다 한참 어린 여자에게 '어머니'라 불러야 합니다. 게다가 눈치 없는 남편과 아들은 젊은 '어머니'가 좋다며 매의 눈으로 어머니의 몸매나 가슴골을 감상하는 것이 취미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며느리와 아들의 불화는 점점 심각해져 갑니다. 손자 역시 학생으로 해야 할 일보다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성인영화에 빠지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여기에서 진희의 사교성 넘치는 끼가 매력을 발산합니다. 자신의 며느리가 가출을 감행하자 먼저 찾아가 값비싼 옷과 화장품을 사주며 마음을 얻습니다. 회사에서는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아들과 하루 종일 집안에서 살림을 해야 하는 며느리. 진희는 이러한 아들 내외를 위해 이벤트를 계획하는 한편, 손자에게도 남다른 채찍과 당근으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줍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닐 것 같지만 연예계나 예술인들, 돈 많은 갑부들 사이에서는 종종 있는 일 아닌가요? 해외 토픽에서도 가끔 40~50년을 초월한 사랑이 화제가 되는 일이 있습니다. 사랑 앞에는 국경은 물론 나이란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담백한 배우들의 연기로 녹여낸 사랑 이야기

​노인들의 사랑을 다룬 영화로 <죽어도 좋아>라든지 <수상한 그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등이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는 인생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20대와 30대를 넘어 한 가족의 가장으로, 이전 세대의 기둥 역할을 충실히 해왔던 주역들이 이제 퇴물 취급당하며 우리 사회에서 잊혀가는 것에 대한 연민과 향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실버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노령층도 당당한 소비 계급으로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과정입니다. 더불어 과거 매스미디어나 영상산업에서도 작은 비중으로만 소개되었던 노인들의 이야기가 이제는 당당히 젊은 세대와 자리를 나란히 하며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

▲ 영화 <젊은 엄마> 차분하게 여생을 정리하는 용태와 그의 그림자를 지켜주는 진희. 용태가 세상을 뜨기 전 둘은 진정으로 부부가 됩니다. ⓒ 골든 타이드 픽쳐스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이성에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 이제는 뒷방 노인네들이 벌이는 민망한 추태가 아닙니다.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도 엄연히 가슴엔 뜨거운 것이 고동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영화 <젊은 엄마>에서는 용태(명계남)를 통해 청장년 세대 못지않은 가족과 연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집사람만 살릴 수 있다면 나는 죽어도 좋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라도 할 수 있으니 제발 살려만 주세요."

혈액 투석 중 고통에 힘겨워하는 진희를 보며 마음이 타들어간 용태는 의사를 붙잡고 이렇게 하소연합니다. 그러나 용태의 나이가 있는지라 신장을 이식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합니다. 응급실 커튼 뒤에서 용태의 눈물겨운 호소를 듣던 진희는 나이를 초월한 남편의 꾸밈없는 사랑에 감동하며 눈시울을 붉힙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용태는 진희와 함께 영정사진을 찍으러 사진관에 갑니다. 아직 용태의 투병 사실을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사진사가 이야기합니다.

"따님이 할아버지 닮으셨어요. 예쁘시네요."
​"아니에요. 남편이에요. 제 남편이에요."

​사진사의 말에 진희가 머뭇거리다 대답을 하네요. 그리고 용태의 행복한 웃음이 보입니다.

진희는 용태에게 짧은 시간이지만 사랑을 주었습니다. 용태는 진희에게 가족이라는 따뜻함을 선물하였습니다. 진희의 말처럼 '말도 안 되는 가족'이 정말 가족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영화 <젊은 엄마>는 평론가의 날카로운 비평이나 입에 발린 칭찬이 필요 없습니다. 평범한 소시민들에게는 흔치 않은 소재를 사용하였지만 관객은 호응을 하였습니다. 사랑엔 나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가족이란 핏줄을 초월한 신의 가장 커다란 선물입니다.

다소 허황되지만 많이 차용되었던 주제이기에 진부하거나 억지 눈물 짜내려는 의도로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직하면서도 기름기를 뺀 배우들의 연기는 영화 말미에 관객의 공감을 얻어냅니다. 중간 중간 과도하게 섹시 코드가 들어간 점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간간이 코믹 상황 극을 드러낸 것이 더 큰 호응을 끌어낸 게 아닌가 싶습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젊은 엄마 명계남 채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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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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