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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사려고 직원해고... 절벽에 내몰린 삶

[리뷰] 박정범 감독의 영화 <산다>

15.06.14 15:09최종업데이트15.06.1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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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산다>의 주인공 정철(박정범 분)은 강원도에 거주하는 건설 현장 일용직 노동자다. 하루 벌어서 하루 겨우 먹고 산다. 그래도 큰 불만을 갖지 않고 살았다. 일한 만큼 벌고, 돈을 받은 만큼 생활을 꾸려나갈 뿐이다. 그렇지만 점점 삶은 더 막막해진다.

부모님은 모두 사고로 돌아가셨고, 누나는 당시의 충격으로 정신질환을 앓는 중이다. 이런 와중에 정철은 누나를, 그리고 친부를 찾으려는 조카를 돌봐야 한다. 늘 곁을 따라다니는 절친은 정신수준이 어린아이와 비슷한 상태다.

주위에서는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일하던 공사 현장에서는 팀장이 임금을 체불하고 잠적해버렸다. 이에 인부들은 정철이 팀장과 한패 아니냐면서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런 압박속에서 그는 살아야 한다. 결코 만만치 않은 날들을 어떤 식으로든 버텨내야 한다.

하루하루 만만치 않은 나날들... 일용직 노동자 정철의 삶

영화 <산다>의 한 장면. 주인공 정철(박정범 분, 오른쪽 두 번째)은 건설 현장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임금을 체불한 팀장과 한 패라는 누명을 쓴다. ⓒ 리틀빅픽처스


주인공 정철은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일하던 건설현장에서는 임금 체불로 인한 갈등이 극에 달했다. 자신의 트럭에 건설 자재를 싣고 빼돌려 팔아버리자는 사람들을 말리다가 구타를 당하기도 한다. 다툼에 휘말려 얼굴에 멍이 드는데, 그 와중에 정철이 호감을 갖던 여인도 그만 떠나버린다. 그야말로 우여곡절의 연속이다.

몸과 마음이 모두 만신창이가 된 상태. 하지만 차마 가만히 쉴 수도 없다. 기나긴 겨울을 보내려면 다시 일을 구해야만 한다. 이 와중에 정신질환을 앓던 누나의 발작이 또 도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목적지도 없이 터미널을 방황하는 누이와 홀로 밤길을 떠돌던 조카를 데리고 정철은 지쳐서 집에 돌아온다. 절로 나온 한숨이 입김이 되어 밤공기를 가른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

누나가 일하던 된장 공장을 방문한 정철은 사장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덕분에 그의 누이는 어렵사리 해고당할 위기를 모면하고, 그림자처럼 동행하는 친구와 함께 메주를 만드는 일을 돕게 된다. 일당 8만 원, 벌이도 꽤 짭짤하다. 겨울 내내 일한다면 생계도 해결하고, 이대로라면 봄에 필리핀에 가려던 남매의 계획도 다시 꿈꿀 수 있다.

겨우 일이 잘 풀리는가 싶어진다. 된장 공장의 사장이 정철을 중간관리자로 승진시킨 것이다. 거기서 끝났다면 조금 더 좋았을 텐데, 그만 나쁜 소식이 뒤따른다. 새로 들어온 정철과 친구가 다른 직원들보다 메주를 훨씬 더 빠르게 생산하자, 사장이 기존에 일하던 직원을 두 명 해고한 것이다. "젊은 것들이 들어와서 우릴 밀어낸다"는 소리가 욕과 함께 날아들고, 된장 공장에서의 생활에도 서서히 먹구름이 드리운다.

처절한 삶을 비춘 영화 <산다>

영화 <산다>의 한 장면. 주인공 정철(박정범 분)은 산사태로 반파된 집을 복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 리틀빅픽처스


영화 <산다>는 한 남자의 처절한 삶을 비춘다. 줄거리는 정철의 과거를 세밀하게 비추지는 않지만, 회상 장면이 없더라도 관객은 그의 대사를 통해서 점차 알게 된다. 정철의 삶이 어느 순간 나락으로 내동댕이쳐진 상태라는 것을. 한때는 번듯한 집이 있었고, 완전한 듯 느껴지던 가족이 있었다. 그러한 모든 것이 사고 한 번으로 힘없이 스러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철이 복구하려는 폐가는 자신의 삶과 꼭 같은 형상이다. 지난여름 홍수가 발생했을 때, 산사태가 집을 덮친 이후로 모든 것이 망가졌다는 그의 탄식. 영화의 시작부터 166분의 상영시간 내내 정철은 무너진 집의 잔해를 일으켜 세우려고 애쓴다. 나무를 베어와서 기둥삼아 내려앉은 지붕을 받치고, 곡괭이와 해머로 쌓인 벽돌더미를 치운다. 도끼로 장작을 패서 땔감을 만들고, 추운 집 안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잔다.

집과 인생, 도저히 다시 추스릴 수 없는 상태인 것은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다. 좀처럼 상황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질 않는다. 그렇지만 정철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연장을 손에 쥐고 공사를 해나간다. 체불된 임금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면서 일을 하고, 발작이 일어난 누나를 병원에 데려간다. 손을 대면 점점 잔해가 더 쏟아지지만 어떻게든 집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려고 발버둥을 친다.

"왜 난... 하나도 없냐. 왜 나는 하나도 가질 수 없냐."

가족은 죽거나 정신이 나갔고, 돈이 없어서 몸을 녹일 공간도 사치가 되어버렸다. 매서운 추위를 몰고 온 겨울은 길게 이어지고, 산간 지방에서 적은 수의 일자리를 차지하려고 사람들이 서로 눈을 흘기는 나날이다. 각박한 현실은 도무지 '저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싶은 상황을 연출한다. 영화 <산다> 속 정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각박한 현실,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

영화 <산다>의 포스터 사진. ⓒ 리틀빅픽처스


영화 <산다>는 한겨울의 차가운 느낌과 거친 숨소리로 가득하다. 스크린 속의 강원도는 때로 눈으로 뒤덮일 때도 있고, 희뿌연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서 흐릿한 시야를 연출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서 도끼로 나무를 베고, 폐가를 치우는 주인공의 모습은 더욱 고독하게 보인다.

영화는 발전을 거듭한 최근 한국에서 빌딩숲에 가려 시야에서 사라진 하층민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극사실주의로 묘사된 장면들은 치열한 일자리 경쟁과 소외된 일용직 노동자의 삶을 그려낸다. 적은 임금과 그마저도 체불되는 상황은 순식간에 등장인물을 위기로 몰아넣는다.

일감을 먼저 차지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지역 주민들의 모습도 일자리가 풍부하지 않은 현실에서 비롯된 안타까운 현실의 반영이다. 된장 공장 사장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계층의 경제적 격차가 드러난다. 딸의 혼수를 위해 3천만 원짜리 티비를 구매하느라 직원을 해고하는 결정에 누군가의 삶은 절벽에 내몰린다.

척박한 배경과 잔인한 현실은 정철의 태도와 대비된다. 한 줌의 희망도 없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재건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 말이다. 뺨을 맞고, 욕을 먹고, 절망한 뒤에도 정철은 살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를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정철의 조카 '하나'가 보여준 장면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앵무새학교에 들렀던 여자아이 하나는 굶주린 채로 "아빠"라고 되뇌이는 앵무새를 보고 모이를 준다. 그러다 앵무새학교의 어른으로부터 "먹이를 주지 말라"며 만류당한다.

"저녁에 묘기 공연을 해야하는데, 앵무새가 배부르면 말을 잘 안 듣는다"는 얘기였다. 결국 하나는 아무도 보지 않는 틈에 창문을 활짝 열고 앵무새를 날려 보내준다. 굶으면서 훈련을 받고 묘기를 부리는 앵무새를 보고서, 소녀는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가난한 정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었을까? 감독과 주연을 동시에 맡은 박정범은 1인 2역의 열정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담담한 연기로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산다 박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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