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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봉쇄된 결혼식장...신랑은 결국 성공했다

[리뷰] 국가보안법 수감자의 삶을 다룬 영화 <불안한 외출>

15.06.05 20:46최종업데이트15.06.05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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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불안한 외출> 스틸컷. ⓒ 다큐창작소


김철민 감독의 영화 <불안한 외출>은 2011년의 어느날 밤, 감옥에서 한 남자가 출소하는 모습을 비추면서 시작한다. 이 사람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0년의 수배생활과 5년의 수감생활을 한 윤기진씨다. 막을 올린 영화는 지난 15년의 시간을 되감아 짚어본다.

윤기진씨는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에 가담했다가 경찰서에 연행된 일을 회상한다. 그는 1994년 국보법 위반으로 1년 6개월을 복역했다. 출소 이후에는 1998년에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장연합) 의장으로 선출됐다. 그 때부터 윤씨는 특급 수배자로 지목되고 10년의 도피생활이 이어진다.

종편채널 프로그램에서 '종북 부부' 1위라고 불렀던 윤기진-황선 부부는 수배로 도피처를 옮기던 중인 2004년에 결혼했다. 스크린은 대학교 강당에서 열리던 그 날의 결혼식 장면과 일대를 포위한 경찰 병력, 체포를 막으려고 정장과 구두 차림으로 충돌한 하객들의 모습까지 당시 촬영된 영상으로 보여준다. 원천봉쇄된 결혼식장에서 신랑은 간신히 몸을 피하는데 성공한다.

10년의 수배 생활, 5년의 수감

영화 <불안한 외출>의 한 장면. 10년 수배생활과 5년의 수감 이후 15년 만에 딸들과 편안히 마주앉은 윤기진씨와 황선씨의 모습. ⓒ 다큐창작소


2008년 체포된 윤기진씨는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그 후 2011년 다시 자유의 몸이 된 윤기진씨와 황선씨는 드디어 '걱정없이' 서로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카메라는 조용히 그의 곁에서 가족의 모습을 담는다. 윤씨는 출산과 성장의 과정을 지켜보지 못한 미안함에 두 명의 딸에게 더 다가가려고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독방에서 보낸 수감 생활이 끝나고 출소했지만 불안함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윤기진씨가 옥중에서 아내에게 쓴 편지를 이유로 검찰이 다시 그를 기소했고 재판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에 따르면, 편지에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한 것과 "북한의 정세가 결국 동아시아에 도움이 된다"고 쓴 내용이 문제였다.

영화에서 인터뷰한 변호사는 "이미 간수들의 검열이 이루어진 편지의 내용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니 비상식적"이라고 말한다. 검열로 반려된 편지도 있었는데 기소된 내용은 이미 검열을 통과한 부분이 아니냐는 것이다. 극 중 윤기진씨는 무죄 판결을 기대하면서도 다시 얻은 삶이 구속으로 또 깨지지는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 초조한 나날을 보낸다. "아내, 딸과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싶었다"는 바람을 소박하게 이뤄가는 동안 점차 선고일이 가까워진다.

<불안한 외출>은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개인에게 생긴 크고 작은 변화들을 보여준다. 수감생활이 끝난 소회를 묻는 질문에 윤기진씨는 "지난 3년의 시간이 마치 싹둑 잘려나간 것 같다"고 탄식한다. 또한 수배와 도피로 생긴 균열이 개인의 삶과 가족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늘 사진으로만 보던 아버지를 출소와 함께 갑자기 만난 딸들은 어색함과 수줍음을 감추지 못한다.

돌아봐야 할 문제들

영화 <불안한 외출>은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없었던 윤기진씨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소재로 다룬다. 이어서 영화의 후반부 자막은 재심에서 나온 윤씨의 무죄 판결과 부인 황선씨가 신은미씨와 열었던 '통일콘서트'로 인해 구속된 최근 상황으로 연결된다.

윤기진씨가 아내나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이유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였다. 지난 2011년 UN의 프랭크 라 뤼 특별보고관은 인권 침해를 지적하며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죄)의 폐지 혹은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국제인권단체인 엠네스티도 국가보안법의 자의적 해석을 우려하면서 "이 법이 이견을 잠재우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러 사람의 회상으로 재구성된 15년의 기록이 <불안한 외출>에 담겼다. 영화가 보여주는 국가보안법의 영향뿐만 아니라 어쩌면 한국 사회의 검열 논란도 돌아봐야 할 문제들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지난해 <불안한 외출>이 <다이빙 벨>과 함께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상영된 이후로 영화제 예산 삭감과 외압 논란이 불거진 것을 보면 말이다.

관객이 영화에서 조명된 당사자들의 정치적 성향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은 남는다. 과연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은 발언들로 '민주주의 국가'로 불리는 한국에서 징역형의 처벌까지 받아야 할까? 이런 소재의 영화가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일 자체를 막아야만 하는 걸까? 감정을 기반으로 빠르게 결론을 내리려고 하기 전에, <불안한 외출>로 드러난 시대적 화두를 먼저 생각해볼 일이다.

불안한 외출 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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