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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다시 봄으로

[리뷰] 박정범 감독 신작 <산다>

15.06.08 16:50최종업데이트15.06.0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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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산다 '포스터' ⓒ 세컨드원드


계절은 돈다. 차갑고 매서운 겨울도 결국 끝이 난다. 꽃이 피며 봄은 찾아온다. 그 따뜻함이 거친 세상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한줄기 희망이다. 박정범 감독의 신작은 이러한 '삶의 원초적 순환성'을 우리에게 전한다. 차가운 겨울 생존을 위해 괴물처럼 모든 걸 파괴하던 '인간 정철'에게도 결국 봄이 찾아온다. '파괴하던 인간' 정철이 '용서하는 인간'으로 진화한다.

겨울은 춥다

무너지는 집의 기둥을 부여잡는 정철 ⓒ 세컨드윈드


정철은 건설 현장 일용직 노동자다. 그의 겨울은 춥다. 건설현장도 겨울엔 멈추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동료에게 돈을 떼이고, 중간에서 돈을 가로챘다는 의심을 받는다. 돈을 가로채고 아들만 남기고 떠난 동료의 집. 정철은 그에게 쏟아진 의심을 거둬내기 위해 그 집 현관문을 떼어낸다. 추운 겨울 바람이 더욱 냉랭하다.

그럼에도 정철은 살아간다. 무너져가는 집 속에서 기둥을 부여잡고 그는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버텨낸다. 하지만 그렇게 삶의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려고 할수록 그는 악하게 변해간다. 메주공장에 의지해 살아가던 늙은 노동자들을 쫓아내고, 부모님을 잃은 충격으로 미쳐가는 누나를 감금한다. 살기 위해선 독해져야 하고 독해져야 살 수 남을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 독해지는 정철. 그럴수록 그는 주변사람들을 파괴하게 된다. 그의 삶 역시 나아지지 않는다. 살기위해 그렇게 발버둥치지만 그는 깊은 늪에 갇힌마냥 점점 수렁에 빠진다. 삶은 끊임없이 그에게 과제를 던진다. 그가 책임지고 만들고 있던 메주가 다 썩어버고, 미처가던 그의 누나 역시 결국 사라져 버린다.

정철의 겨울은 춥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지 않다. 그의 친구 명훈과 한께 야반도주한 누나를 찾기 위해 그 역시 서울로 떠난다. 이미 즐거운 노래가 나오고 아늑하게 달릴 수 있던 오래된 화물차마저 팔아버린지 오래였다. 어렵사리 서울에 도착했지만 누나의 횡방은 묘연하다. 추운 겨울. 정철은 살아간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이름 없는 마을

가운데 정철. 나머지 정철의 친구들. ⓒ 세컨드윈드


정철의 누나. '승연'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자해한다. 산골짜기에 있는 메주공장에서 벗어나 매일같이 버스터미널에서 배회하며 외간남자와 섹스를 한다. 심지어 그에게 있는 딸의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죽은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정철의 삶의 목적이 '생존'이라면 그녀의 목적은 '용서'다.

그럼에도 그녀는 희망한다. 나비가 수놓인 옷을 입고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싶어 한다. 그런 그녀가 우연찮게 서울에서 배우 오디션을 본다. '이름 없는 마을'이란 연극이다. 오디션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내재된 슬픔을 치열하게 연기한다. 하지만 정신분열에 빠진 그녀가 캐스팅될 리는 없다. 결국 다시 돌아올 운명이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녀가 돌아온 메주공장 역시, 그 연극처럼 '이름 없는 마을'이다. 영화 속에서 그 메주공장의 어딘지 이름이 무엇인지 아는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관객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 '이름 없는 마을'이 우리네 세상의 축소판이란걸. 마치 '파리대왕'이나 '동물 농장'과 같이 우리 사회를 대변하는 작은 무대라는 걸 말이다.

그녀가 꿈꾸었던 그 연극 무대 위 배우처럼. 이 '이름없는 마을'에 살고있는 십수 명의 노동자와 강사장의 가족은 '삶'을 연기한다. 생존을 위한 암투와 배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철이 처음 늙은 노동자들을 내쫓았으며, 메주가 썩자 강 사장의 가족은 그 책임을 노동자에게 돌렸으며, 또 그 책임은 그 중에서도 가장 약자인 정철의 누나가 지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정철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고 일할 수 있었던 젊은 노동자들은 결국 돈 때문에 정철을 위협한다.

결국 이 무대 위에서 착한 주인공은 없었다. 겨울의 추위에 내몰려 우리는 타인들을 내몬다. 모두가 악하고 모두가 괴물이 된다. 그리고 영화는 그것이 우리의 삶이라 말한다. 정철은 외친다. '삶은 우리에게 겁을 잔뜩 주지만 이젠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그리고 봄

좌 조카(하나). 우 정철 ⓒ 세컨드윈드


극중 초반 정철은 희망한다. 따뜻한 필리핀으로 여행가는 꿈을 말이다. 그리고 정철은 결국 그 꿈이 자기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누나를 찾으러 떠난 서울에서 그의 친구 명훈은 처음으로 정철에게 외친다. '난 네가 제일 아파 보여. 어떻게 부모님을 잃었는데 넌 하나도 안 아픈 척 살아가니?'

고향으로 돌아온 정철은 가로등을 단다. 극 초반 광기에 어려 도끼질을 해 쓰러트렸던 나무들 위에 올라가 가로등을 단다. 어둡고 어둔 강원도 산골짜기를 밝힌다. 아직 찾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이 불빛을 보고 돌아올 누나를 위해서 말이다 이젠 더 이상 나무마저도 삶을 위한 땔감의 도구가 아니다. 삶과 생존에 대한 광기어린 집착을 접어둔다.

또한 그는 극 초반 자신이 떼어놓았던 현관문을 등에 진다. 마치 십자가를 등에 진 예수처럼 그는 십자 모양이 새겨 있는 그 문을 업고 길을 떠난다. 그 문이 있어야 할 제자리로 말이다. 저 멀리 그가 빼어 놓았던 나사가 다시 꽂아 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를 배경으로 영화는 화분 속 꽃봉우리를 보여준다. 결국 정철이 꿈꾸던 봄은 찾아왔다. 이제 저 문처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그가 애타게 찾던 누나 수연 역시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재홍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ddpddpzzz1.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산다 박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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