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사회와 신종 감염병 대응

기술관료형 대응에서 참여협의적 대응으로

등록 2015.06.24 16:22수정 2015.06.24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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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이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등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재난이 나타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위험'에 대한 각성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울리히 벡은 사회 변화의 과정을 전근대성, 단순한 근대성, 성찰적 근대성의 단계로 구분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즉 성찰적 근대의 시기에는 예측 불가능한 위험이 나타난다고 진단했다. 이 때 위험은 초국가적, 비계급적, 전지구적으로 나타나는데, 신종 감염병도 새롭게 부각된 위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위험 사회로 진입하면서 신종 감염병 등 새로운 위험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문제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위험은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둘째, 새롭게 대두되는 위험은 복잡성, 불확실성, 모호성 등의 특성을 가지므로 그 의미를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으며 사회적으로 재구성된다. 셋째, 위험은 반드시 부정적인 결과만 초래하는 것이 아니고 변화 가능성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넷째, 위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다양하므로, 위험의 대응에 있어서 다양한 이해 관계자를 참여시켜야 하며 소통과 신뢰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섯째, 위험은 다양한 요인들과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관련된 연결망을 폭넓게 이해하면서 성찰적 대응을 통해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신종플루나 메르스 등 신종 감염병은 위험 사회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모두가 참여하고 협의하면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근대적 대응, 즉 기술 관료적 대응에 치우친 것이 아닌가 싶다.

2009년부터 2010년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했던 신종플루 대응에 있어서 미국, 영국, 호주 등과 우리나라의 학교 신종플루 대응 방식을 비교해보면 성찰적 대응이 왜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당시 WHO는 학교 신종플루 대응에 있어서 모든 이해 관계자가 참여하는 참여형 의사결정 협의체 구축, 업무 지속 계획 수립, 감시(Surveillance) 및 전파차단을 위한 적절한 수단 사용, 정보공유·의사소통 방안을 수립하도록 했다.

이에 미국, 영국, 호주 등의 교육당국은 감염병 대유행 전부터 관련 부처 간 긴밀한 협조 체계를 갖추고 단위 학교가 신종 감염병에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단계와 상황에 따른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했다. 또한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 관련 기관과의 소통과 정보공유, 참여에 심혈을 기울여 명확한 의사소통 체계를 갖추는 데 주력했다. 특히 중앙 정부가 나서서 전국의 학교를 통제하는 방식보다는 지역단위에서 상황에 따라 자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면서 유연한 대처를 강조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중앙집권적 대응 방식을 고수하면서 단위학교 유증상자 일일 보고, 전체 학생에 대한 체온 측정을 통한 발열자 색출·격리, 전교생 예방 접종 등 전파 차단 기술을 우선 적용하는 데 집중했다.


미국, 영국, 호주 등이 신뢰를 바탕으로 참여·협의형 대응 방식으로 신종 감염병에 접근한 반면, 우리는 신종 감염병의 불확실성은 외면한 채 근대에서 통용되던 기술·관료형 대응 방식으로 일관하면서 제 문제가 불거졌다.

일방적인 지시로 시작된 전체 학생 발열 감시 정책 속에서 일부 학생들은 학교에 가기 싫어 일부러 열을 올리는가 하면 해열제를 먹고 등교해 정책에 혼선을 가져왔고, 신뢰에 바탕을 둔 의사소통·정보공유 체계가 미흡하다보니 출처가 불분명한 괴담이 횡횡했다. 법정 보건교육이라는 정책 수단이 있었지만, 학교가 입시에 매달리면서 보건 수업을 정규 교육과정으로 편성하지 않아 보건교육을 시행하는 데 어려움에 직면했다. 더구나 서류상으로만 비상대책반이 구성되면서 실제로는 환자를 돌봐야할 보건교사가 혼자서 일일보고, 물품조달 등 행정까지 떠안으면서 물리적 한계에 봉착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신종플루 대응 이후 감염병 대응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고 교훈을 탐색하는 성찰적 과정이 생략되면서 메르스 대응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여전히 학교는 무조건 전체 학생에 대한 일일 발열감시를 지시하고 있고, 일부에서는 보건 당국과 교육 당국의 이중 지시로 행정적 혼선을 겪고 있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감염병 대응 체계뿐만 아니라 대응 방식의 대전환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고민할 필요성이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위험사회 #메르스 #감염병 대응 #학교보건 #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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